<관무량수경: 유리로 된 땅을 생각하는 관(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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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의 땅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천상의 악기에서 저절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 평화롭고도 애틋한 금빛 극락조의 지저귐, 금강석이 가득 깔린 개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 물줄기, 허공에 흩날리는 꽃송이, 진주그물 휘장사이로 부는 청정 바람 속의 그윽한 향기, 피어오르는 꽃구름 속의 찬연한 보석 누각…, 비단 극락의 대지뿐만 아니라 극락의 나무ㆍ물ㆍ누각 등 경전을 따라 극락의 정경을 관(觀)하다보면(그림2ㆍ3), 그 상상을 초월한 화려함에 눈이 멀고 귀가 먹을 정도입니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가 묘사되어있는 아미타삼부경(<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을 처음 접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어로 번역된 경문을 통해서였습니다. 런던대학 유학 시절 동양학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범본(梵本)-영문번역판 <관무량수경>을 접하며 그 성스러운 아름다운 문구에 감동 받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한문번역 경전이 주는 문학적 상상력에 전혀 뒤지지 않는, 원문의 울림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왔던, 이 영문본이 의아스러울 정도로 신통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막스 뮬러(Max Müller, 1823-1900 현대 종교학의 대가)의 역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많은 대승경전들은 색깔 소리 향기 맛 촉감 등의 거짓된 감각의 세계에 전도되지 말라고 역설합니다. 오온(五蘊,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즉 모든 육체적 감각과 감정 및 지적 인식 작용 등 일체가 모두 공(空)하니, 이 현상계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계하고 또 경계합니다. 그런데 여기 묘사된 극락은 시각ㆍ청각ㆍ후각 등 감각의, 그것도 아주 감각의 극치인 천국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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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지은원에는 고려본(1323년, 충숙왕 10년) <관경16관변상도>가 보존되어, 거의 7백년에 달하는 세월을 견디며, 고려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천국의 모습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근거가 되는 소의경전인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연유는, 주지하듯이,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왕위를 놓고 벌어지는 부자 사이의 비극에서 비롯됩니다. 자리에 눈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 않는 아들의 횡포에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 상황, 막다른 위기에 처한 위제희 왕비는 깊은 비애감 속에 ‘괴로움도 번뇌도 없는 곳’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구원을 호소하게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무상한 행복의 땅(서방 극락정토)’을 약속하고 불가사의한 방편으로 왕비를 안내합니다. 그리고 극락정토로 갈 수 있는 열여섯 단계의 관상(觀想)법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 바로 이 ''관경16관변상도''입니다.
물론 이 ''관경16관변상도''는 한ㆍ중ㆍ일 등지 불교문화권에서 매우 유행한 아미타신앙과 더불어 즐겨 그려진 불화 중 한 장르입니다. 이 장엄한 극락의 세계를 어떻게 그림으로 구상화할 것인가는, 매 시대의 화가에게 난제 중의 난제이자 또 도전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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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려시대에는, 제1관(일상관)부터 제13관(잡상관)까지는 그림 좌우 측면에 구획을 지어 원 또는 사각 구획에 종렬로 조그맣게 묘사하고, 화면 중심을 구품왕생의 세 구획(상품 중품 하품)으로 크게 나누어 ‘왕생’하는 장면을 강조한 남송(南宋)본 형식이 유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려 말에 제작된 이 지은원 소장 ‘관경16관변상도’에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남송 형식의 관경변상도와는 매우 다른 구도를 보여, 한국적 ‘관경16관변상도’의 정립이라는 점에서 그 기점을 마련하는 작품입니다. 즉 일몰(日沒)관ㆍ수상(水想)관ㆍ지상(地想)관ㆍ수상(樹想)관ㆍ총(摠)관을 작품 가장 위의 천공 공간에 같이 어우러지게 연출하여(그림3), 마치 아래에 바야흐로 펼쳐질 장엄한 정토 세계의 막을 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줍니다. 그리고 중심에 가장 강조된 것은 아미타불의 모습과 그 광명을 관(觀)한 ‘신관(身觀)’입니다. 왕생장면은 가장 하단에 세 구획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고려 말의 정세는 원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주적 실권을 잃은 상태였고 또 권문세족과 환관이 판을 쳐서, 나라는 토지 잃은 유민들로 넘쳐나는 형세였습니다. 이러한 혼탁한 말세적 경향 속에 아미타신앙이 불붙듯 일어났으리라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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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화기에는 정업원(淨業院) 주지 등의 이름이 명기되어, 이것이 고려말 개경에 위치했던 정업원에서 발원된 귀중한 작품임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작품 속 제단 및 왕생 연못 등지에는 실제로 당시 이 작품발원과 관련되었을 법한 고려왕실 여인들 및 비구니의 모습(그림4)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작품처럼 금빛 반짝이는 고급안료의 왕실작품은 아니지만, 같은 해(1323년)에 그려진 유사한 형식의 ‘관경16관변상도’가, 한 점 더 일본 아이치현 인송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다수의 여성 시주자 이름과 ‘양주여향도(楊洲女香徒)’라는 묵서명의 화기가 작품 하단에 발견되어, 민간층에서도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정토결사’가 고려 말에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즐거움만으로 넘쳐나는 이러한 환상적인 극락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생(生)과 사(死)의 고통의 바다를 건너 저 서쪽 어딘가 피안에 있는 것일까요? 이를 찾는 과정에서 앞에서 품었던 감각의 천국이라고만 느꼈던 제 우문(愚問)이 해답을 찾는 듯 듯합니다. 고통 속의 위제희 부인에게 부처님은 말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눈만 감고 마음만 모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경전 속의 많은 암시와 비유가 그 이전에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요.
‘수행자의 마음의 눈이 열릴 때’, ‘계행의 향기가 몸에 배일 때’, ‘눈을 뜨거나 감거나 한결같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바로 ‘주변 만물이 하나같이 미묘한 법문을 설하고 있음을 알게 되느니라’라고 설파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마음으로 극락을 이루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바다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 즉 서방정토와 유심(唯心)정토는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 제게도 극락의 미풍이 한 줄기 불어오길 일심(一心)으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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