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이 흐르는 목소리가 연수생의 마음을 파고든다. ‘고통 나누기,’ 고집멸도(苦集滅道) 명상상담이 진행된다. 개인마다 가지는 집착의 성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가슴에 담아 뒀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어지면서 명상상담의 밀도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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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은 본래 동양 수행법"
4월 29일 오후 7시, ‘에니어그램을 활용한 고집멸도 명상상담’ 연수회가 열린 서울 약수동 목우선원.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3일간 정기적으로 연수회를 지도하는 인경 스님이 자기 고통 탐색과 경험나누기에 서툰 연수생 12명을 상대로 상담을 했다.
‘에니어그램’과 ‘고집멸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서양 성격이론과 불교의 만남이 어떤 자기변화를 이끌어낼까? 연수회 입제에 앞서 이들 관계에 대한 인경 스님의 설명은 이랬다.
“에니어그램이 본래 수행프로그램이란 것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철저히 동양에서 수행자들에 의해 계발된 수행법입니다. 즉 환경, 인간관계 등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일정한 패턴의 습관화된 행동과 성격을 자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죠. 불교적으로 말하면 바로 업의 인식입니다. 때문에 그 업의 이해가 곧 성격의 이해가 되는 것이고, 업을 고친다함은 개인마다 갖은 본성인 불성에 도달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탈윤회법’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스스로에게 성격을 진단케 하고, 사성제와 명상상담 등은 치유의 기능을 한다는 의미다. 행법은 에니어그램을 방편으로 하고, 수행원리는 초기불교 사성제를 기초한 ‘알아차림’에 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고통 드러내기
이튿날 오후 1시, ‘고통 원인 탐색시간’이 되자 집단 상담이 진행된다. 각자가 드러낸 아픈 경험의 성격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표출해내기 위해서 갖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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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애인에게 3번씩이나 배신당했던 사연, 어렸을 때 부모가 싸울 때면 의자 밑으로 숨었던 이야기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속살까지도 제한없이 오간다. 일상 속에 겪은 고통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된다.
집단 상담이 마무리 되자,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을 찾는 시간이 진행된다. 연수생들은 각자가 지닌 고통과 그 발생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인경 스님이 정리한 ‘명상상담 에니어그램 성격유형 검사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사지는 감정형, 사고형, 의지형 등 3가지 유형으로 구성됐고, 각 유형별로 3가지 세부 유형에 12개 질문항목이 담겨있다.
나는 어떤 성격유형에 속할까?
‘평화지향적’ 유형 9번에 가깝게 결과가 나온 나성민군(동국대 선학과 2년)은 연신 신기한 듯 검사항목을 보고 또 본다.
이후 연수회는 명상요가 실습, 호흡명상, 인경 스님의 ‘고집멸도’ 강의로 이어진다.
앞서 시간이 개인마다 가지는 집착과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고(苦)의 자각’, 성격에서 발생된 집착의 내적인 동기로서 원인을 이해하는 ‘집(集)의 파악’의 단계였다면, 이제부터는 일상 속에서 성격패턴을 인식하고 벗어나도록 돕는 ‘멸(滅)의 확신’과 개인 성격에 상응하는 명상법을 개발해 수행하도록 하는 ‘도(道)의 안내’의 순서다.
“이 연수는 잠재된 애착, 번뇌, 욕망 등의 씨앗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데 목표가 있어요.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습관화ㆍ행동화된 성격 패턴을 읽어냈으니, 이제는 치유법을 알아야겠지요? 그 방법이 바로 사성제와 명상, 호흡관찰입니다. 이것들은 마음의 본질인 ‘알아차림’을 강하게 해요. 명상과 상담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행동의 변화도 야기하기 때문이죠. 불교에서 자기변화의 밑천을 마련하는 셈이지요.”
"나에 대한 이해 깊어졌어요"
연수회가 끝내고 참가자들의 소감을 물었다. 중앙승가대 학인 보관 스님은 “애니어그램 명상상담 연수는 나를 이해하고 맨몸으로 진리를 찾아 나선 수행 길에서 만난 훌륭한 도반이 됐다”며 “이 연수회를 통해 이야기가 있는 또 하나의 스승을 만나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스스로를 구속하는 경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좀 더 넉넉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진다라양(동국대 선학과 1년)도 “억지로 파묻어둔 나의 아픔을 치료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고집멸도에 맞게 나를 찾는 과정에서 내면적인 성격을 정확히 알게 돼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02)2236-5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