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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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명상과 정신과학
마음의 행복찾기 열풍 과학적 연구로 발전해야
사회의 물질화 기계화가 가속되고 급변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2003년 8월호 <타임>지는 ‘명상’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미국의 명상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한국도 최근 수년간 템플스테이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며 전국의 시민선원에서는 참선 수행을 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흐름들은 특히 종교적 차원의 불교보다 실존적 차원에서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내면의 과학으로서의 선(명상)이 현대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현대불교신문과 한별심리분석연구소는 이러한 참선(명상)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흐름에 맞춰 이에 대한 현상을 진단해 보는 정담회를 4월 18일 서울 목동 한별심리분석연구소(소장 최훈동)에서 열었다. 선(禪)과 명상(瞑想)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의 행복 추구’ 측면에서 명상과 정신과학의 지향점과 상호발전방향을 모색해 본 이날 정담의 내용을 소개한다.


참석자

미산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 인도 뿌나대학에서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바드대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조계종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다.

최훈동 원장(한별정신병원)
최훈동 원장 서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한별정신병원과 심리분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 경전 <니까야> 연구와 남방 불교 수행을 하면서 환자들에게 명상지도를 하고 있다.

권준수 교수(서울대 의과대학)
권준수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 교수로 하바드 의대에서 뇌영상을 중심으로 뇌와 정신의 상관관계를 집중 연구하고 있는 생물정신의학의 권위자.








최훈동 일반인들은 흔히 선(禪)과 명상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산 스님께서 명상 또는 선의 개념에 대해 정리해주십시오.

미산 명상(meditation)은 어느 초점에 몰입해 깊이 사유한다는 의미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육조 스님은 선(禪)이란 밖의 대상을 향하는 마음을 떠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 빛을 돌이켜 오감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집착하지 않고 순간순간 바로 자성청정심을 드러내는 것이 ‘선’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원래 선이란 말은 ‘선나’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참선(參禪)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죠. 참선이란 선에 참입(參入)한다, 혹은 선을 참구(參究)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출판되는 불교관련 서적들을 보면 ‘meditation’을 명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마음의 안락한 상태나 몸의 건강을 추구하는 통속적인 수련법을 명상이라고 하고 이것을 최상승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는 참선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명상과 선에 대한 개념 정리가 우선돼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상과 선은 이미 많은 현대문헌에서 혼용해 쓰고 있고 명상이란 말은 정신수련이나 수행을 나타내는 일반화된 말입니다.
언어는 사회성을 지니고 있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명상이라는 말은 이미 현대인들의 생활문화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으며 불교인들은 이런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바른 의미를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이 명상과 혼용되어 변질되고 오염될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명상의 의미를 깊이있게 심화시키고 명상의 방법을 광범위하게 확장시켜 불교에서 지향하는 선의 세계를 표현하고 새로운 수행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소화하여 새로운 선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선의 현대화일 것입니다.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보다 쓰면서 명상의 의미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 것입니다.

최훈동 원장.
최훈동 선과 명상은 본질 그 자체가 일치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오늘 정담회에서는 선(禪)의 개념을 포괄해 ‘명상’으로 통일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즘 <선과 두뇌(Zen and Brain)>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명상에 대한 연구가 상당 수준 진척되어온 걸로 아는데, 명상에 대한 현대의학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돼 왔고 연구 결과는 어느 정도인지요?

권준수 명상에 대한 연구를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인도 요기의 소위 신비한 능력을 생체신호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던 1950~60년대의 초창기, 1970~80년대 명상의 신체적인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던 시기 그리고 90년대 잠시 소강상태를 가지다가 최근 뇌영상 방법론의 발전과 더불어 명상을 신경과학적 입장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최근 연구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명상이 심혈관계나 면역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은 입증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신경계에도 앞선 연구에서 보듯이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도쿄대학교의 가사마쯔와 히라이는, 48명의 선승들과 명상 수행을 해본 경험이 없는 22명의 대조군의 뇌파를 비교해 선승들이 가장 깊은 명상의 단계를 경험할 때 베타파가 아닌 고진폭의 알파파와 세타파를 뇌파에서 보인다는 내용의 실험을 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수행한 다른 실험에서 딸깍거리는 소리(click sound)를 연속적으로 들려 주었을 때 일반인들은 뇌파에서 알파파의 중단이 관찰되다가 나중에는 습관화(habituation)가 일어나 더 이상 알파파의 중단이 관찰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하여 선승들은 계속해서 소리에 의한 알파파의 중단이 관찰되었고 이는 선승들이 선 수행동안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명료한 의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상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으로 매우 다양한 인지, 감정, 신체적 증상 등의 측면을 가지고 있고 또 이들 하나하나를 모두 객관화하기란 사실상 힘든 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명상에는 전통적인 선불교 이외에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인도의 요가, 중국의 태극권이나 기공, 서구의 초월 명상 등 방법상으로 다른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명상의 깊이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 연구를 어렵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통해 과학자와 수행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다 보면 이런 모든 문제도 하나씩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훈동 명상의 목표에 대해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과 정신과학에서 설정하고 있는 목표는 다른 것 같은 데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목표라는 점에서 과연 다른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산 정신과학의 최종 목표는 고통의 해결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목표, 즉 해탈이라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다면 두 분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학은 나름대로의 도구와 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불교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불교는 행복이라는 목표를 수행을 통해 성취해 가지만 과학은 연구자가 경험을 하지 않아도 객관화해서 연구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수행은 스스로 수행하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과학과 불교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수행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과학자가 실제 수행을 통해 자기의 경험을 객관화시켜는 경우는 다르겠죠. <젠 앤 브레인(Zen And Brain)>을 쓴 오스틴이 자기의 경험세계를 객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불교 경험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인데, 바로 자비를 통해 확산됩니다. 또 자비는 깊은 사유와 삼매를 통해 얻은 지혜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두 분야가 비슷하지만 실제 체험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두 분야가 가진 공통의 분모는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최훈동 명상 또는 선이 현대인들에게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정리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명상이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 것인지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미산 스님.
미산 사실 1990년대 이후 외국의 새로운 수행법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빠사나, 티베트 명상법 등입니다. 외국의 수행법이 소개되면서 우리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 수행도 적지 않게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조계종단 차원에서 수행체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최근에 나온 <간화선>이라는 책입니다. 대중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간화선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아직도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간화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간화선 입문>을 또 출간했습니다. 이와 함께 재가신도들을 대상으로 봉은사와 함께 간화선 수행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간화선이 보편화되고 재가신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종단에서 의지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반인의 호응이 좋으면 계층별로 세분화해서 후속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개발 보급할 방침입니다. 이런 간화선 프로그램이 정신의학과 결합되면 훨씬 과학적인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최훈동 정신의학에서 이룩한 뇌 연구로 말미암아 신경전달물질들을 조절하는 약제들을 개발하여 각종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있는데 그 한계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될지 그 전망이 궁급합니다.

권준수 현재 시중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정신질환 치료 약물들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켜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작용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연구보고는 명상을 하게 되면 선조체(striatum) 부위에서 도파민 방출이 60~70%정도 증가된다는 보고가 있는 데, 이 연구는 시냅스 수준에서 명상에 의한 변화를 측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뇌에서 단일 신경계가 단독으로 기능할 수 없고, 서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단순히 신경전달물질의 증·감으로만 복잡한 정신활동이나 마음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신경세포들의 조합이나 연결, 즉 물질이 그 원인이 되어 전혀 새로운 차원인 정신이라는 현상을 나타내는냐는 것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나 수용체 등등의 변화에 의해 복잡한 정신현상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훈동 현대 정신의학이 봉착하는 한계에 명상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또 정신의학계에서 명상치료에 기대하는 영역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권준수 지금까지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대부분은 뇌 영상 연구뿐만 아니라 약물 연구들도 포함하여 인간 한명 한명을 유일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집단으로 본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연구 결과들은 평균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 실험을 통하여 약물을 실험하고 이를 다시 인간에 적용하는 이유는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명상은 자기가 할 수 있고 자신이 치료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명상은 심장질환, 암, 불임, 우울증, 과잉행동, 주의력결핍장애 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치유하는데 가장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최훈동 명상과 심리치료와의 관계 또 명상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와 뇌파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

권준수 교수.
권준수 뇌파는 제일 빠르게 요동치는 감마파로부터 가장 느린 델타파까지 그 진동수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뇌파는 인간의 각성 상태 혹은 집중도, 인지기능 등에 따라 다른 진동수의 뇌파가 어떤 부위에서는 더 많이 나오고 또 어떤 부위에서는 적게 나오고 하는 것으로 어떤 진동수가 정확히 어떤 상태다고 규정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대부분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명상 중에는 알파파(8~13Hz)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세타파와 관련해서는 오랜 명상 수행자가 명상 중에 평화롭고 쾌적한 경험을 하는 동안에는 특징적인 세타파형이 전두엽에서 주로 많이 관찰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산 불교 수행체계를 보면 사선(四禪)에 들어가면 호흡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호흡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분도 있습니다. 일선 이선 삼선 호흡이 깊어질수록 호흡이 잦아든다고 합니다.
일단 선정과 삼매에 들었을 때는 마음이 균형잡힌 상태가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삼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매에 들어서도 망념이 들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삼매와 선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적절하게 균형잡힌 상태가 바로 삼매이자 선정인 것이죠. 선정의 기본 요소는 희열감과 행복감인데, 초기불교나 부파불교쪽에서는 희열감이나 행복감 등이 있어야 선정의 상태라고 여겼습니다.
대승불교에서도 삼매를 백천삼매(百千三昧)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삼매현상들이 있기 때문에 뇌파가 잘못 나왔다고 해서 삼매가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과학계와 함께 하는 공동연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가지 뇌파와 지관(止觀)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지(止)는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마음이 몰입되어 있는 상태이고 관(觀)은 집중된 상태에서 힘을 이용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죠. 지(止)와 관(觀)은 항상 함께 하죠. 수행 방법상으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같이 가야 합니다.
베타파는 각성상태이고 알파파는 깊은 마음 상태라고 하는데, 선정의 상태에서 성성하게 깨어 있는 상태를 사티(sati)라고 합니다. 어떠한 사물과 대상에 끊임없이 마음을 경주하는 것이죠.
사티의 힘으로 성성하게 깨어있는 상태는 아주 명료한 것인데 이때 아마 감마파의 상태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런 뇌파의 실험은 호흡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특히 남방수행의 경우 자연호흡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세해진 호흡을 알아차리려면 강한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태는 념(念)과 삼매와 혜가 동반돼야 가능합니다.

최훈동 명상자의 뇌파는 특히 좌전전두엽과 변연계가 활성화되고 전두엽과 두정엽 등이 비활성화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

권준수 아직까지 뇌파연구를 제외하고는 명상 수행자의 뇌를 찍은 연구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명상자의 뇌파를 찍은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은 어떤 인지기능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를 볼 때 유용한데 명상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인지기능을 수행하기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때문에 양전자 방출단층촬영이 시공간적 해상도가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연구가 이를 이용한 것들입니다. 이들 연구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일관되게 나오는 것이 두정엽의 비활성화 인 것 같습니다.
조금 자세히 보면 활성도가 떨어진 전두엽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는 외부의 감각을 처리하는 기능의 완화가 있다는 것을 뜻할 수 있고, 두정엽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지금 시간이 언제고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 지에 대한 시공간 개념을 담당해주는 곳이기 때문에 이 부분의 활성화 감소는 우리에게 시공간적인 분별을 벗어나 소위 우주와 하나되는 느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최훈동 명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시작해볼 수 있고 학제 간 협력으로 특히 불교의 협력으로 진행될 수 있는 세계적 연구의 가능성은 무엇입니까?

권준수 신경과학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달라이 라마의 등장은 매우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학이 지금까지의 과학이 가지고 있는 협소한 틀을 버리고 좀 더 과감한 도약을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 각종 뇌영상술이나 분자생물학적 연구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인 명상 연구에도 활발히 적용되어 좋은 연구를 많이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러한 결과가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 이용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한국은 이런 연구에 관해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의 전통이 있고, 또 명상연구만을 볼 때에도 훌륭하신 선수행자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말로 수행의 깊이가 충분히 객관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훌륭한 선수행자들의 이러한 연구에 대한 참여와 관심,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비 조성 등이 된다면 한국의 불교 선 수행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 속에 우뚝서는 한국 불교의 미래가 그려집니다.
가톨릭에서 성체줄기세포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참고한다면, 불교계에서는 명상 연구에 좀 더 과감하고 확실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훈동 명상이 뇌를 바꾼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에 의해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 물질의 풍요에 의해 얻어질 수 없다는 현대인들의 자각과 맞물려 있습니다. 오늘 나눈 대화를 통해서 난치병에 대한 줄기세포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체적 장애보다 마음의 고통을 더 중시한 부처님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 오신 참 뜻인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현대인들에게 안겨 줄 수 있는 선을 체계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명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불교계의 연구 지원 노력이나 관심은 아직 미미한 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한국 불교의 세계적 선양을 위해서도 수행자와 의학자가 함께 연구하는 명상의 과학적 연구는 불교의 현대화 사업 가운데 가장 먼저 눈을 돌려야 할 21세기의 주요 과제라 하겠습니다.
정리=노병철 유철주 기자 | 사진=박재완 기자
200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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