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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에 멋·얼 녹여요
[산문밖의 선]한복명장 김복연씨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류 한복점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 화려한 옷감들로 눈이 부시는 한복골목은 평생 한복을 만들며 사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다.

김복연 한복명장(제2002-17호)의 연구실도 한복골목에 있다. 10평 남짓한 연구소는 문 입구에 명장의 연구실임을 알리는 작은 간판 하나가 걸려 있을 뿐이다. 주인은 그 작은 간판으로 ‘진정한 멋은 화려한 치장 속에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침모의 바느질 어깨너머 배워

“마음에 부족함이 없으면 부족하지 않는 법이지요. 누구에게 보일 것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오랜 시간 한 길을 그렇게 왔습니다.”

한복을 만드는 달인중의 달인 6명에게만 수여된 명장의 반열에 오른 김복연(72)씨의 꾸밈없는 한마디에 뭔지 모를 깊이가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두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에 마음이 끌려 한복만들기를 일생의 업으로 삼아온 김복연 명장. 자연스러움과 옛것의 아름다움을 작업의 화두로 삼고 있다.


1935년 성주의 양가집 둘째 딸로 곱게 자란 김복연 명장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 어린시절 침모(집에서 바느질일을 하도록 고용된 사람)의 바느질을 항상 어깨 너머로 배웠고, 비단에 수를 놓으며 비단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꾸밀 줄 알게 됐다. 단오절에는 창포로 머리를 감았고, 댕기를 휘날리며 그네를 탔다.

연지 곤지 찍고 시집가던 날을 기억하고 있는 김 명장에게는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삶과 멋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평생 우리 옷을 만들며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그 멋과 얼을 녹였다.

“한복엔 자연스런 멋이 있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면 옷고름도 자연스럽게 날리고, 빨간 댕기도 두루막도 휘날리는 멋이 있는 것입니다. 입었을 때 저고리 소매는 편안한 주름이 자연스럽게 잡히는 것입니다. 마치 수양버들이 편안히 늘어지듯이 말입니다.”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 알아야"

김 명장은 우리옷의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했다. 그 멋을 모른 채 소매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만들어 달라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또, 오래되어 빛이 바랜 무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모른 채 새것만 고집하는 현대인들의 조급함과 물질지향주의에 대해서도 걱정이 앞선다.

“새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랜 것이나 옛 것에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함이 스며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오래 된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눈에서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이 가늠된다. 또 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참된 멋임을 아는 그의 마음에서 흐트러짐 없는 격조가 창출되는 것이리라.
옛 선조들의 깊은 멋과 감각을 익혀 온 김 명장에게는 서양복식에나 적용되는 센티미터와 인치의 개념이 일상화되어 한복 기능대회에서까지 적용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현대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꽃문양 수와 비단들을 펼쳐보이며 얼과 멋을 이야기하는 김 명장.


김 명장은 한복에 서양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단국대학에서 늦은 배움의 길을 걸었다. 평생을 바느질로 살아왔지만 배울 때는 초심의 마음으로 홈질부터 배웠다. 하심의 도리를 알고 실천해 온 김 명장은 서양의 규칙을 우리 옷에 적용하는 방법까지도 모두 익혔고, 궁중복식 재현과 응용까지 두루 통하게 됐다. 그리고 명장제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바로 서류를 접수해 한번에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명장이 되기 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장인이었지만….

김 명장은 “어린시절 그릇이 큰 부모님에게서 받은 가르침 하나하나가 오늘날 명장에 오를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불을 끄고 서랍에 들어있는 중요한 서류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주변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지금도 김 명장의 삶을 이끄는 지침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김 명장이 바느질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부모님은 시집 간 딸이 바느질을 하지 못하도록 쌀가게를 차려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복연 명장은 오직 두 손가락으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바늘을 놓을 수 없었다.

고희를 넘긴 김 명장은 “마음을 살피고 바르게 뜻을 세웠으면 갈등하지 말고 한 길로 나아가라”고 충고한다. 인생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한 길로 나아가면 바람과 비가 그치고 해가 난다는 것이다.


뜻 세우면 갈등 말고 한길로

한때 남편이 운영하던 철물공장을 실패하면서 김치조차 담가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김 명장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즐겁게 살았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 웃음은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생생한 법문이다.

“세상 모든 일은 기본에 충실할 때 발전할 할 수 있다”는 김 명장은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찾는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몸과 마음가짐 기본 기술의 습득을 강조한다. 종이 한 조각도 함부로 여기지 않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은 한복을 소중히 여기는 기본자세며, 홈질을 통해 손 감각을 키우는 조각보자기 만들기는 가장 중요한 기본기술로 여긴다.


상설한복전시장 마련이 꿈

열일곱 나이에 수놓은 무궁화며, 국화꽃 문양 베개모서리를 소중히 펼쳐 보이는 김 명장의 얼굴에는 세월의 멋과 맛, 정성의 소중함에 대한 환희심이 가득 피어올랐다. 작은 비단조각을 통해 우리민족의 멋과 얼을 말하고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김 명장의 목소리엔 수행자의 거침없는 기상이 깃들어 있다.

불국사와 석가탑 문양을 본떠 창작한 십자수 베개피와 시집 올 때 친정어머니가 해준 비단이불조각을 펼쳐 보이는 김 명장의 얼굴에서 ‘오래된 아름다움’이 읽혀졌다. 그 아름다움을 읽는 사람은 더불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 질 것 같다.

김 명장은 비단이불조각의 꽃문양으로는 언젠가 수를 놓아 멋진 한복을 만들어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알릴 것이다. 할머니에게서 받은 방한모는 제대로 복원해 우리조상의 솜씨를 보여주는 증거로 삼을 참이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을 전하고,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알릴 상설한복전시장도 마련하고 싶은 김 명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확인시켜 주듯 김 명장의 손은 어느새 바늘과 실, 옷감들을 매만지고 있다.
대구/글=배지선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
2006-04-19 오전 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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