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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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으로 보는 한암 스님의 인간미
21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해 23세때 경허 선사에게 ‘인가’를 받아 깨달음을 얻은 한암 스님. 한암 스님의 제자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떨친 탄허 스님이 있다.

탄허 스님은 20세 이후 3년에 걸쳐 한암 스님과 간절한 심정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침내 발심해 출가하게 된다. 구도열정과 더불어 스님들의 인간적인 면모 역시 놓칠 수 없는 대목. 제자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스승의 모습, 그리움과 진솔함이 그대로 드러난 서간문을 통해 제자의 구도를 간절히 기원하는 스승의 애틋한 마음도 느낄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불교사에 걸출한 족적을 남긴 3대에 걸친 사제지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은 서신과 한암 스님 말년기록인 <일생패궐(一生敗闕)>을 통해 살펴본다.


● 은사(경허)스님이 제자(한암)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건넨 글

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삽살개 뒷다리 같은 너절한 삶을 44년 간 살아왔는데,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한암을 만나게 됐다. 그의 성행은 순직하고 학문은 고명했다. 함께 추운 겨울을 서로 세상 만난 듯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중략) 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후략)


● 한암 스님이 세상을 떠난 스승(경허)을 그리워하며 한탄하는 글

(전략)갑진년(1904) 통도사에서 지내던 중 마침 돈이 생겨 병을 치료했지만 고치지 못했다. 그럭저럭 6년 세월이 흘렀다.(중략) 하지만 당시는 말세인지라 불법이 매우 쇠미하여 명안종사의 인증(印證)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화상(경허)께서도 머리를 기르고 유생의 옷을 입고서 갑산, 강계 등지를 왔다 갔다 하다가 이 해(1912)에 입적하시니 참으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이 한 토막글을 써서 스스로를 꾸짖고 스스로 맹서하노니 한 소식 분명하기를 기약하노라.


● 은사(한암)스님이 제자(탄허)의 첫 편지를 받고

보내온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만족하게 도에 향하는 정성을 보겠노라. 장년의 호걸스러운 기운이 넘쳐 업을 지음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를 때에 능히 장부의 뜻을 세워 위없는 도를 배우고저 하니 숙세에 심은 선근이 깊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리오. 축하하고 축하하노라.(중략) 반드시 시끄럽다고 고요한 곳을 구하거나 속됨을 버리고 참됨을 향하지 말지니라. 매양 고요함은 시끄러운데서 구하고 참됨은 속됨 속에 찾는다. 구하고 찾는 것이 가히 구하고 찾음 없는데 도달하면 시끄러움이 아니요, 참됨도 참된 것이 아니니라. 부르면 꺾어지고 고함지르면 끊어지느니라.
평창 월정사/ 글=이은비 기자·사진 박재완 기자 |
2006-04-15 오후 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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