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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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국사를 종조로 봐야 합리적”
월정사-본사 주최 수행학림, 현해 스님(동국대학교 이사장) '한암대종사의 종단관'
한 평생을 수좌로 살았던 한암 스님. 스님은 불교, 유교, 도교 등 동양사상 전반과 역대조사에 대해 두루 통달했다. 스님의 저서 <일발록(一鉢錄)>에는 매우 다양한 자료가 인용되고 있다. 생전에 많은 책을 섭렵했다는 방증이다. 4월 7일 ‘한암 대종사 수행학림’ 네 번째 주제인 ‘한암 대종사의 종단관’ 강의에 나선 현해 스님(동국대학교 이사장)은 “한암 스님은 어느 때는 매우 합리적인 면모를 보이고, 또 어느 때는 초합리적인 선사의 면모도 보였던 분”이라며 “스님은 특유의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생각에 근거해 조계종의 종통에 대한 통찰력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현해 스님의 강의를 요약한 것이다.

현해 스님.


우리는 평소에 종단이 실질적 문제로 안고 있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논의를 한 바 없어 혼란한 상태로 남아 있는 현 조계종 종통관(宗統觀)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한암 스님의 종통관은 어떠하며 이를 근거로 종통관이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암 스님의 ‘눈 밝은’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이를 근거로 보다 현실적인 종통을 세우는데 참고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일단 왜 법통(法統)을 종통이라고 부르느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혁명을 일으킨 후에 불교를 통합하려 했습니다. 그 전에는 태고보우 국사나 보조지눌 국사가 통일시키려 했으나 통합이 안 됐었지요. 흔히 5교 9산이라고 말합니다만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 시기에 약 13개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 종파마다 독립된 채로 따로 유지돼왔으며, 조선시대에도 실질적으로 이 종파는 유지됐습니다. 1950년 이후부터 각 종파가 독립하기 시작해 천태종, 태고종 등으로 갈라졌으며, 현재는 약 60여 개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법통이라고 말하면, 이 많은 종파의 법통을 어떻게 다 하나로 모으며 어떻게 따지겠습니까. 열반종은 열반종대로의 종통이 있고, 천태종은 천태종만의 종통이 있는 법입니다. 조계종 역시 종통이라고 해야 바로 쓰는 것입니다.

현해 스님.


그런데, 한암 스님 이전에는 조계종에 이른바 ‘종통관’이라는 관념도, 어느 쪽이 ‘법통이다’라는 정설도 없었습니다. 다만 1764년 송광사 채영 스님이 자료를 정리해 편찬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原流)>에 종통 계보가 적혀 있어 현재 이를 토대로 조계종의 일반적인 ‘종통설’이 수립돼 있습니다.

현재 조계종의 일반적인 ‘종통설’은 <해동불조원류>를 참고해 석옥청공→태고보우→환암혼수→구곡각운→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영관→청허휴정→부휴선수(이하생략)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한암 스님은 도의국사→범일→보조지눌→각엄→졸암연온→구곡각운→벽계정심으로 이어지는 종통관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한암 스님은 〈불교〉 제70호(1930)에 발표한 ‘해동초조에 대하야’를 통해 “근래 문학상에 태고보우 국사를 해동초조로 정하는 일이 간혹 나타나니, 이는 스스로 위배됨이 극심하다 하겠다.(중략) 신라의 모든 국사들이 처음 조문에 들어가서 법을 얻어 동(東)으로 돌아오신 것이 오늘날 태고가 초조라는 주장 때문에 허황하게 되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또한 연원계통을 정직하게 가릴 것 같으면 오늘날 우리 형제가 태고 연원이 아님을 단언하는 바이다. 왜 그러냐면 구곡각운 선사가 조계종 제13대 국사 각엄 존자의 손제자가 됨은 분명히 이능화 선생이 저술한 <불교통사>에 기재돼 있는데, 태고국사의 손제자라는 문구는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기록이나 또는 비명(碑銘)에도 도무지 없다고 하였은즉 무엇을 근거로 태고를 구곡의 스승으로 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당당한 해동 조계종 제13대 국사의 손제자인 구곡이 다시 임제종의 후손인 석옥에게 법을 얻어 온 태고의 손제자가 될 필요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목은 이색(李穡)이 찬한 <원증국사탑비>의 문도 명단에 환암혼수가 제일 먼저 기재 돼 있으나, 환암혼수가 태고보우의 법제자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금석총람 하권>에 실린 청룡사 보각국사비에는 환암혼수가 나옹의 법을 이었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또 전래의 종통설에는 구곡각운이 환암의 법을 전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방증은 없습니다. 다만 유방선이 지은 <봉증만우천봉>이나 고려말 이승인이 지은 <송우천봉상인유방서>에는 구곡의 제자인 만우를 환암의 계통으로 표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구곡이 환암의 법통을 이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한암 스님은, 태고를 종조로 세운 이유에 대해서도 ‘유교인이 정자ㆍ주자를 사모하는 것과 같이 중국의 연원을 계승하는 것을 그럴싸하다고 생각했거나 억불숭유의 시대에 승려가 살아남기 힘들어 해동 조계종의 연원이 단절됨을 애석히 여겨 제13대 국사 각엄 존자의 손제자였던 구곡을 멀리 계승하여 조계연원을 부활하게 한 것’으로 추론했습니다.

또 여기에 대해 스님은 “따라서 해동 조계종 보조국사로부터 제13대 국사 각엄 존자의 손제자인 구곡선사와 구곡을 멀리 계승해 조계종을 부활하게 한 벽계선사의 연원이요, 태고의 연원이 아님을 단언”하며 조계종 법통이 단절됐으므로 정심이 구곡을 원사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조계종 종헌을 보면 제1조에 ‘본 종의 기원을 도의국사에 두고 보조국사의 중천을 거쳐 태고의 제종포섭으로 조계종이라 공칭한 이후 그 종맥이 면면 부절한 것이다’라고 하고 다시 제6조에 ‘…태고보우를 중흥조로 하여 청허와 부휴 양법맥을 계승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제7조에서는 ‘본종의 법맥상승은 사자문의 입실면수 또는 전법게의 수수로써 행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헌상으로 보아 입실면수나 전법게의 수수는 중간 중간 단절된 것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도의→보조→각엄→졸암→구곡→벽계로 이어지는 한암 스님의 종통관은 상당히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옹 스님의 비문이나 환암 스님의 비문과 <동문선>을 종합해 봤을 때 한암스님의 법통관을 약간 수정해서 도의→보조→나옹→환암→각엄→졸암→구곡→벽계→벽송으로 보완한다면 보다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종통관을 수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창 월정사/ 글=이은비 기자·사진 박재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6-04-14 오후 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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