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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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획 한 획이 수행"
[산문밖의 선]금강경 삼매에 빠진 서예가 김복수 선생
“어느 날 제가 써 모아온 <금강경>들을 정리했습니다. 70여점 정도 되는데 정리하면서도 깜짝 놀랐어요. 어느새 이렇게 많이 썼나 싶더군요.”

절에 주기적으로 가서 교리를 공부하거나 신행을 다져온 불자는 아니었다. 유교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공부하며 서예를 배웠던 서예가 김복수 선생(65).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 손을 잡고 부처님오신날 절을 찾아 등을 달았고, 커서는 등산길에 절에 들려 부처님께 인사드린 것이 불교와의 인연 전부였다. 불자라 말하기에도 부끄러웠던 시간들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수행하듯 써내려간다


어느 날 평탄하게만 지내왔던 인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그 곳에서 골라온 책은 다름 아닌 <불교성전>이었다. 그 책 속에서 <금강경>을 발견했다. 오로지 <금강경>만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일과 시간 외에는 <금강경>을 쓰는 것에 매달렸다. 뜻을 몰라 해설집도 여러 권을 읽었다.

20년 동안 써온 <금강경>들


<금강경> 5000여 한자를 한 장의 한지에 담아내는데 보통 2~3개월이 걸렸다. 초기에는 실수도 많았다. 먹물의 농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쓰다가 다시 시작하고, 글자 획을 하나 실수해 또 다시 시작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서 시작한 <금강경> 사경이었다. 2년 전 97세를 일기로 작고한 노모는 생전 <금강경>을 쓰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들의 눈이 나빠질까 항상 걱정을 할 정도로 치열하게 몰두했다.

한 작품을 완성하고 확인하는 김복수 선생.


한 획 한 획이 김복수 선생에게는 수행의 걸음걸음이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108배도 했다.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잡념을 없앴고 붓끝에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는 108배를 하고 있어요. 정신건강 뿐 아니라 육체건강에도 너무 좋은 108배예요. 수행도 하고 건강도 지키고 일석이조”라며 자랑한다.

세필로 써내려간 <금강경>은 찍어낸 듯 정교하다


왜 <금강경>이었을까? 김복수 선생은 딱 떨어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정신적으로 끌렸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 상황이 자신 속에 움터있던 불교를 밖으로 끌어낸 것이구나 하는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그에게 <금강경>은 인연의 시작이자 필연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금강경>만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20년을 그렇게 지내보니 그냥 흘러지나온 것보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인생에 하나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뿌듯했죠.”

20여년 간 동반자가 돼 온 <금강경>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1997년 입선한 <금강경>


<금강경>의 여러 글귀 가운데서도 김복수 선생을 가장 사로잡은 매력적인 문구는 ‘항복기심(降伏其心)’이다. 자기의 마음을 항복받으라는 이 말이 가슴 속에 와 박혔다.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였다. ‘항복기심’ 해야만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는 것(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이 가능했다.

삶의 화두로 삼았다. 지금도 어디서 휘호 부탁이 오면 곧잘 ‘항복기심’을 써준다. 항복기심 네 글자에 <금강경>의 선지를 담는다는 생각으로 한 획 한 획 그으며 가진 필력을 전부 쏟아 붓는다.



<금강경>을 매일 매일 쓰다보니 몇째 줄에 무슨 글자가 있는지 머리 속에 다 들어왔다. 그래도 틀릴까봐 한자 쓰고 보고 한자 쓰고 보고 조심에 또 조심을 기했다. 20년 간 종이가 닳도록 들여다본 <금강경>에는 색색의 연필로 그려진 자국이 남아있다. <금강경>을 쓸 때마다 구성과 글씨가 다르기 때문에 한 글자라도 놓칠까 일일이 표시해 놓은 자국이다. 책에도 먹물이 잔뜩 배어들었다.

70여 점 남아있는 <금강경> 사경 작품들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순금을 녹여 10폭 8폭 병풍을 작업해 놓은 것도 있다. 일관되게 이어간 것은 <금강경>에 담긴 글이고 사상이었다. 원 모양의 사경작품은 일원상을 생각하며 작업했고 연꽃을 연상하며 팔각형의 화선지에도 썼다. 한 작업을 마치면 다음 사경은 어떤 모양과 크기로 어떤 글씨체를 선택해 쓸까를 생각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힘든 줄을 몰랐고 즐겁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세필로 써내려간 <금강경>들은 언뜻 보면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정교하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오른쪽 어깨가 아주 힘들어졌구나 하는 실감이 올 뿐이었지 한참 사경에 몰두했을 때는 아프다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는 김복수 선생은 자신의 사경에는 낙관을 찍지 않는다. 대신 불심(佛心) 두 글자만 남긴다. 불심이 곧 김복수 선생의 낙관이 된 것이다.

틈틈이 <금강경> 사경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가정관리에 소홀해지기도 했다. 그 빈틈은 부인 조옥순 여사가 맡았다. <금강경> 사경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뒤에서 부인은 싫은 기색 한번도 없이 묵묵히 뒷바라지만 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집안일 한 번 제대로 못 도와준 부족한 아버지요 남편이었는데 가족들 모두 제게 불만을 가지기보다 몰두하는 불심만을 받아들여줬어요. 현대불교에서 취재 온다고 하니까 집사람이 너무 기뻐했는데 둘째 며느리가 출산을 하는 통에 같이 오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했습니다.”

앞으로 보시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김복수 선생은 “인생에 답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금강경>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금강경>을 꼭 읽으세요”라며 신신당부했다.
글=강지연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6-04-11 오전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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