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방학이 끝나고 봄을 맞은 캠퍼스가 싱그럽다. 3월 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서울대 교수불자모임 불이회 회원들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개학을 맞아 올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 속속 모여드는 10여명의 교수들 표정도 유달리 밝았다.
서울대 불이회에는 독특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법담회(法談會)’라는 이름의 토론회. ‘법담회’란 교수불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맞게 주제를 선정, 불법에 입각해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교감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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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부터 시작된 이 자리를 통해 불이회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방학을 제외한 기간동안 계속 불심을 돋워왔다. 가끔은 법사스님을 초청해서 경전이나 불교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렇다고 법담회가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인사 나누고 불자회가 어떻게 꾸려져야 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은 여느 직장 불자모임과 똑같다.
이날의 발표주제는 ‘불자가 보는 생명조작’. 우희종(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여서 그런지 회원들의 표정도, 자세도 사뭇 진지하다.
우 교수가 이날 짚은 것은 △인간ㆍ동물 복제 및 이종장기 개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즉 유전자조작 작물의 필요성 △생명과학에 대한 불자로서의 재인식 등이다. 우 교수는 평소 그 누구보다 줄기세포 문제나 이종장기(종이 다른 생명체에서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키우는 방법)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 왔다.
“사회가 줄기세포 조작이나 형질전환 동물을 이용한 장기 개발에 너무 경제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인간이 자연계와 서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하는 자세라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은 본래 연기적으로 ‘흐름’이 있을 뿐인데, 어느 한 단계에 조작을 가함으로써 생명의 유일성을 침범하는 것이라 봅니다.”
우 교수의 발표에 소광섭(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 연구를 통한 난치병 치료를 꿈꾸고 있는데 이종 장기 등을 인간에게 적용시켰을 때 부작용은 없는지 궁금하다”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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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교수는 “모든 생명체는 이어져 있지만,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개체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면역 체계에 의해 거부당할 확률이 크다”면서 “만약 무균돼지에게서 인간의 장기를 키워 이식받아도 그 장기가 인간의 몸에서 또 다른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설명했다.
윤여창(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과학부) 교수는 전공분야인 GMO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에요.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개량 품종이 목적이지만 식물의 유전자 변형은 생각지도 못한 생태계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지요. 식물뿐만 아니라 그것을 먹이로 하는 곤충, 동물들의 유전자 변형에도 심각하게 관여될 수 있어요. 어떤 교수님들은 유전자가 조작된 콩을 자기가 직접 키워 먹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객원 자격으로 참석한 전재경(한국법제연구원 법제연구실장) 박사도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는다.
“사람이든 뭐든 너무 물질화 시켜 이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만 해석하거든요.”
우 교수도 전 박사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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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이 반성해야 할 점도 그 점입니다. 우리는 ‘쪼갬’에 익숙합니다. 사람을 장기나 분자, 원자로 쪼개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역방향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1+1=2’라는 공식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1+1’이 ‘0’이 되기도 하고 ‘10’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생명체 간 중요성이 제기된다. 임승빈(농업생명과학대학 조경ㆍ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가 입을 연다.
“철학도 현상학 같은 경우는 인간과 세계와의 진정한 관계 규명을 주창하고 있죠. 서양에서도 이제 동양적 사고로 계속 근접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 ‘불교’의 교리 즉,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존재한다(相依相存)’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불이회 법담회에 참석한 박세일(국제대학원) 교수는 복잡한 표정이다.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봤는데,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점을 모두 알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유전자 조작 장기를 이식받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생명윤리를 존중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네요. 또 이런 행위가 공동체·생태계 파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누가 판단 할 수 있을까요?”
“제 이야기가 이상론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러한 ‘생명조작’과 같은 문제는 언론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자꾸 경제적 가치와 효용론 쪽으로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생명조작이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알리는 사회운동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불자들이 불교 안에서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언제나 부딪치게 마련이다. 우 교수도, 참석 교수들도 그 점은 잘 알고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과 불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조율하고 그 안에서 살기란 어렵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교 안에서 살아가려는 노력, 생활과 학문 그리고 종교를 접합시키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져야 오롯이 불자로서 학문하고 사회 속에 내보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윤여창 교수는 “이렇게 법담회에 참여해서 서로의 생각을 교감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고 즐겁다”면서 “다양한 전공을 통해 불교를 바라보며 불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불교사랑’ 방법”이라며 웃음 지었다.
한편 불이회는 이날 새로운 회장단도 선출했다. 소광식 교수에 이어 부회장을 맡고 있던 임승빈 교수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임 교수는 “올해 못한 사업을 진취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법담회를 비롯해 불교 기념일 행사, 사찰 순례 등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꾸려 나갈 것”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