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維摩經)>. 주인공은 유마 거사. 부처님도 10대 제자들도 여기서는 조연이다. 그럼, 수행에는 출ㆍ재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는데, 왜 출가자가 아닌 거사를 정면에 내세워 ‘출가’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3월 3일 오후 2시 서울 운현동 운현타워빌딩 107호 대한불교보림회 강의실. 보림회장 성상현 법사(72)가 <유마경> 제자품(弟子品)을 강의하는 동안, 경전 자체에는 출가가 바로 ‘마음출가(心出家)’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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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여기도 저기도 중간도 아닙니다. 모든 분별을 여읜 열반에 이른 경지가 진짜 출가입니다. 그런데 머리 깎고 안 깎는 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일체의 상(相)을 끊어낸 세계는 출가의 공덕이 많고 적음도, 있고 없음도 여읜 자리입니다. 무슨 출가의 공덕을 찾으려고 합니까?”
강단 있는 성법사의 어투. <아함경> <능엄경> <원각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등 7보(寶) 경전을 통째로 외워 강설할 정도로 간경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성법사의 강의는 단순한 경전 내용을 아는데 머물지 않았다. 읽고 왼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는 ‘여설수행(如說修行)’의 힘이 읽혀졌다.
“<유마경>의 핵심은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에 있어요. ‘자식이 병들면 부모가 병이 없어도 아프게 되는 것처럼, 보살은 병이 없어도 중생이 앓기 때문에 보살도 앓는다’는 경구지요. ‘둘이 아님’ 즉 불이의 가르침이 <유마경> 가르침의 고갱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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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 <유마경> 원문을 한 자 한 자 뜻을 새겨가는 수강생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연륜 만큼이나 다양한 수행을 해온 이들은 재가불자의 경전 <유마경>의 깊은 뜻을 절감하고, 재발심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13년째 성법사에게 간경수행을 지도받고 있는 이광노(62ㆍ서울 사직동)씨는 <유마경>을 ‘무협지’로 비유했다.
“<유마경>은 다른 대승경전과 달리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어요. 여기서 유마 거사는 어려운 이론을 이야기하지도, 엄숙하지도 않아요. 조금은 짓궂지만 너무도 강렬하게 상대방을 무너뜨리니, 재가불자로서 통쾌하기까지 해요. 재가자로서 수행에 자신감을 갖게 하니까요.”
성법사는 마지막으로 재가자가 간경 수행으로서 <유마경>을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유마경>도 방편입니다. 그 안에서 실상(實相)을 찾아야 합니다. 실상을 찾지 않고 말과 글을 쫓으면 곤란합니다. 말이 없는 자리를 가기 위해서 말이 필요한 겁니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출가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이치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출가자든 재가자든 불성 자리에는 본래 공덕이 이미 다 갖춰져 있는데, 출ㆍ재가를 왜 따지냐는 것이 성법사의 지론이었다.
보림회의 이 같은 간경공부는 매주 수요일 오후 1시45분(법화경), 금요일 오후 2시(유마경)에 열린다. (02)739-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