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소개하는 ‘치성광여래강림도’는 천상의 모든 별자리를 한 폭의 불화에 가득 옮겨놓은 매우 이채로운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존불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는 조금은 생소한 명칭의 부처님 같이 느껴지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칠성각에 모셔진 부처님이 바로 치성광여래이고 또 칠성탱화의 주존불이기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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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의 정체는 바로 하늘의 '북극성'입니다. 북극성은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별로, 방위의 지침이 되고 또 무수한 별자리의 기준이 되는 축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더 나아가 북극성은 절대불변의 진리, 우주의 중심 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천계의 중심에 대응하는 지상계의 중심으로 천자와 동일시되어, 그 신격화의 유구하고도 다양한 종교적 천문학적 전통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불교에서 이 북극성은, 본 작품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치성광여래로 신성시되어 숭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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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사찰의 거의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칠성각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북극전 또는 북극보전(北極寶殿) 등의 현판이 확인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답니다. 본도의 치성광여래 좌우로는 해와 달에 해당하는 일광(日光)보살과 월광(月光)보살, 그 주변으로는 북두칠성에 대응하는 칠성보살, 또 그 주변으로는 오성(五星) 등이 주존을 보좌하며 중심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 이 중심군을 한 번 더 외곽에서 둘러 협시하는 것은 28수에 해당하는 28성수신(星宿神, 그림3)입니다. 이 성수신의 머리 위에는 해당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이들은 도교의 성군(星君)의 복장인 조복에 홀(笏)을 들고 있어, 도교적 성수신앙이 불교와 습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치성광여래가 천공의 모든 다양한 별자리를 거느리고 지상으로 왕림해 내려오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기에 ‘치성광여래제성강림도(熾盛光如來諸星降臨圖)’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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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장 윗부분에는 좌우 6개의 원 안에 12궁(그림1)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래 바빌로니아에 그 기원을 두는 그리스의 황도 12궁체계가 동점되어 중국으로 전파된 것인데, 본래 서양 전래의 별자리 도상이 참으로 긴 세월 동안 그대로 유전되어 중국을 거쳐 결국 조선전기 16세기 작품(1569년)인 본 그림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상과 그 성립 전거에 있어서의 필연적 상관성과 역사적 유구성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본존불의 바로 우측에는 북두칠성의 별자리와 함께 칠성신(보성과 필성을 더해 합 9성, 그림2)이 따로 강조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북두칠성의 존재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 쉽게 찾을 수 있어 예로부터 항로나 육로 여행자들의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했고, 또 그 위치변화는 사계절을 알려주는 지표였습니다. 특히 한국 불교에서는 칠성여래로 신격화되어 생명을 주관하는 신으로서 ‘대중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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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도‘치성광여래강림도’에 나타나는 북두칠성신은 조선전기 어느 시점부터 그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여래형’으로 승격하여, 특히 조선후기에는 칠성불 또는 칠성여래로, 민간과 가장 친근한 부처님 중 한 분으로 대대적으로 유행합니다.
이러한 칠성여래의 강조 현상과 더불어 조금은 부르기 어려운 ‘치성광여래도’라는 명칭에서 ‘칠성탱’으로의 전이가 옵니다. 또 치성광여래와 칠성여래의 신앙적 기능은 충첩되고 서로 보완적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치성광여래강림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불화장르인 칠성탱화의 모태가 되는 귀중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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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소제일체재다라니경>(약칭, 고려대장경 권34-95)에는 ‘별자리의 운행(또는 천체의 운행)에 의해 생겨나는 지상의 일체의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이 치성광법 다라니를 독송하면 일체의 재난이 소멸된다’라고 쓰여 있어 그 신앙적 기능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성수의 변화에 의해 지상의 변화가 야기되고, 또 개인 및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운명속성설’ 또는 ‘생명속성설’은, 본래 하늘과 땅이 서로 감응하여 움직인다는 ‘천인감응설’에 그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은 천공의 별들의 운행으로 점쳐지기도 했고, 천재지변 및 자연재해 등은 하늘과 땅을 잇는 군주의 부도덕한 소치로 읽혀지기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천지가 합일하고 일월이 빛나며/ 사계절이 순서에 따라 찾아오고/ 별들이 운행하고/ 강물이 흐르고/ 만물이 창성하고/ 좋아하고 싫어함에 절도가 있고/ 즐거움과 성냄이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리하여 백성된 사람은 순종하고/ 왕이 된 사람은 명철해 진다.’
사마천의 사기 <예서>의 한 구절은 이 천인감응설을 매우 유려하고도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의 앞에는, 말하자면, ‘體(내용ㆍ본질)와 用(형식ㆍ수식)을 겸비한 예(禮)가 갖추어 지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즉, 지상의 예제(풍속과 제도)가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와 하늘의 뜻에 부합하여 잘 운영되었을 때 저절로 얻어지는 지상의 아름다운 평화를 읊은 것입니다. 고전들을 살펴보면 옛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하늘에 훨씬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에 덜 오만하고, 천체의 운행에 다시 한번 하늘의 뜻을 가늠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지는 기회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요?
특히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별자리신 중에서도 가장 민간에 친숙했던 칠성여래가, 그 많은 신앙적 기능 중에서도 생명을 주관하는 ‘수명 연장의 신’으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어 숭배되어 졌습니다. 여기 소개한 치성광여래강림도는 우리에게 친숙한 칠성탱의 연원적 유래를 보이는 작품입니다. 칠성탱은 반드시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하기 때문에, 그 정식 학술적 명칭은 치성광여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오늘날에도 이 칠성각에서 기도되는 수많은 염원들, 지병을 낫게 해달라는,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는, 아이를 점지해 달라는, 재난을 소멸케 해달라는, 공부에 진보가 있게 해달라는, 제짝을 만나게 해달라는 등의 이 지상의 갖가지 간절한 소원들이, 불화 속에 왕림한 별자리 부처님을 통해 하늘에 가 닿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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