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새벽 6시. 강력범죄수사팀 반장 김두식 형사는 서울 길음동 자택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틀 전, 절도범을 잡고 나서 취조하고 조서를 꾸미느라 밤을 꼬박 새워 몸이 불편하다. 그래도 김 형사는 10분 동안 명상에 들어간다. 그렇게 해야만 하루 일과가 차분하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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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지능범죄수사팀 권원하 형사도 몸을 일으켰다. 권 형사는 아침에 늘 피로함을 느낀다. 전날은 특히 힘들었다. 오후에는 전남 목포에서, 새벽에는 전북 무안과 광주에서 범인을 쫓았다. 그렇지만 자리에 누운 채로 약 5분간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다 보면 이내 잠도 깨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난다. 권 형사의 마음속에는 “오늘 하루도 경찰로, 가장으로 충실하게 일하겠다”는 발원이 가득하다.
명상·관음정근으로 하루 시작
이들은 7시 20분이면 성북경찰서에 도착해 ‘으랏차차’ 체력관리에 들어간다. 늘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범죄 현장.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단련된’ 자신뿐이다.
이어지는 각 팀의 조회. 관내에서 일어난 범죄, 신고ㆍ접수된 사항을 확인하고 팀원들과 어떻게 업무를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후 특별한 사건이 없을 때는 오전 10시 경, 약 20분 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두 형사는 이 ‘틈새 시간’을 놓치지 않고 법당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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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 형사는 법당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관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하나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다. 7개월 전 발생한 ‘명문대졸 여성 이모(31)씨 피살 사건’의 증거가 잡히지 않아 마음이 조급하다. 부처님 가피로 원만하게 사건을 해결했으면 해서 평소 주 2~3회 정도 법당을 찾았지만 요즘은 더 매달리고 싶다.
“피해자 가족, 특히 어머니가 통사정하며 전화를 할 땐 참 미안합니다. 범인을 잡아야 그 분들이 좀 편해지시겠죠.”
법당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김 형사의 머릿속에는 지난 사건의 피해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대부분의 사건이 우발적이라 ‘앗’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가끔 살인사건 피해자들이 눈을 감지도 못한 채 현장에서 발견됐을 때, 김 형사는 살며시 다가가 눈을 감겨주고 ‘극락왕생’을 빈다. 처음에는 피해자만 눈에 밟혔는데 이제는 남겨진 가족들이 더 걱정이다. 그래서 김 형사는 이제 가족을 위한 기도에 더 열심이다.
김 형사가 법당에서 기도하는 동안 권 형사가 들어온다. 권 형사도 수사계에 있다 보니 별반 고민이 다르지 않다. 경찰관이기 이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지만 현실은 늘 그를 달리게 만든다. 권 형사가 맡고 있는 카드 및 보험사기가 요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화 치솟아도 세번 생각하고 행동
이렇게 법당에서 시작되는 하루, 두 형사의 업무태도가 달라진다. 부하직원의 실수 등으로 인해 단번에 성낼 것은 세 번 생각하게 되고, 범인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게 되는 것이다.
김 형사는 이날 성북구 사찰들도 둘러보기로 하고 모 사찰을 찾았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대웅전에서 10대 청소년 한 명이 불전함 투입구에다 꼬챙이를 집어넣고 있다. 사찰 불전함을 노리는 범죄가 늘어났다는 사찰 신도들의 귀띔이 있었지만 현행범이 눈앞에 있을 줄이야. 바로 체포도 가능하다. 하지만 김 형사는 ‘어린 도둑’의 어깨만 툭툭 친다. 초범인지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굳어버리는 표정을 보니 김 형사는 슬쩍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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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붙잡아 구치소에 보내는 것 보다는 교화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철없는 청소년까지 경미한 범죄 때문에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들어있는 곳이거든. 네가 꺼낸 그 돈을 넣은 사람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을 거야.”
그 시간, 경찰서 내에 있던 권 형사는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이미 100여대 피해사례가 신고 된 “‘오토바이 사기꾼’을 잡았다”는 전화다. 부리나케 출동이다. 검거된 범인은 28세 한모(28)씨. 편모슬하에서 자라 모친의 고생을 덜어주겠다며 카드 사기는 물론 오토바이 절도 및 매물까지 손을 댔다.
“자네가 훔친 오토바이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인 것은 알고 있나?”
순간, 오토바이를 잃어버려 배달을 할 수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동네 중국집 주인의 얼굴이 떠올라 한씨가 미워진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권 형사는 한씨가 되려 딱하다.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 훔친 물건을 팔아서는 살림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만드는 원인이 될 뿐. 그것을 알기에 권 형사는 피해자도 범인도 모두 측은해지는 것이다.
일 잘하는 형사보다 불심깊은 사람되고자
검거하는 범인의 숫자가 늘어갈 수록 경력이 쌓여 승진하는데도 보탬이 되고, 또 보람도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착잡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두 형사 모두 주변에서 공인된 ‘일 잘하는 형사’, ‘부지런한 형사’지만 항상 스스로 ‘불자’로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고민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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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악랄하다’고 생각되는 범인도 있지만 부처님 법 안에서 보면 언제나 ‘측은지심’의 대상이다. 도박을 끊지 못해 범죄를 일으킨 가장,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칼을 든 소년, 빚쟁이가 가족을 괴롭혀 홧김에 일을 저지른 청년 등 범인들도 저마다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김 형사와 권 형사. 다음 날, 다시 또 다른 범인을 잡아야 하고 미해결 사건과 씨름해야겠지만 발걸음이 무겁지 만은 않다. 범인이든 피해자든 모두 부처님처럼 대하려는 불심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