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날개를 잠시 접고 미륵대불로 유명한 보은 법주사를 찾았다. 회주 혜정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다. 선·교·율을 겸비한 선지식을 사리각에서 뵐 수 있었다.
스님의 처소에 들어서는 순간, 한지가 떠올랐다. 무서우리만치 흰색도 아니면서 적당한 흰빛을 머금은 종이. 만져보면 약간은 거친 듯한 느낌을 주지만 포근한 마음을 가져다주는 한지.
스님의 방에서도 이 느낌이 났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던 스님의 방에 있는 것이라곤 가사, 죽비, 탁자, 시계 뿐. 조사어록 등이 담긴 그 흔한 액자 하나 없었다. 잠시 후 들어온 혜정 스님의 모습에서도 그 느낌이 다시 났다. 자그마한 체구에 엷은 미소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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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스님의 일상사는 ‘단순’ 그 자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능인전에서 1시간 정도 예불을 드리고 30분 동안 정진을 한 뒤 다시 처소에 들어와 정진을 한다. 아침 6시 공양을 하고 사시마지를 올린 뒤, 오전 11시 30분 점심공양. 오후 6시 저녁예불 후 뒤 9시 취침.
특별한 건강 비결도 없었다. 참선이나 기도 그 자체가 건강 비결이기 때문이다. 다만 “난 참선이나 기도를 잘 못해 건강하지 않다”는 겸손뿐이었다. 스님의 이러한 생활태도는 은사 금오 스님의 영향이 크다.
스님은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 영향으로 책을 가까이 하던 중 우연히 불교잡지를 보게 된다. 그 불교잡지에서 “생은 어디를 좇아 왔으며 죽음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생은 곧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사라짐과 같으니라”는 대목이 가슴 깊숙한 곳에 꽂혔다. 그 가슴앓이는 김구 선생이 공부했던 마곡사 대원암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다.
스님은 행자로 있으면서도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를 붙잡았다. 그러던 중 어느 깊은 밤 이상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앉아있다는 의식도 없어지고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 무엇인가 확 터지는 느낌, 그리고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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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님은 수덕사에서 은사 금오 스님을 만났다. 금오 스님은 ‘참선 이외의 것은 외도(外道)’라고 할 정도로 참선을 강조했다. 행자가 울력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참선에 들고 있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 할 정도였다.
금오 스님은 또 무소유를 강조했을 뿐 아니라 계율을 중요시했다. 스님이라면 부처님 법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금오스님은 율장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철저히 배격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연스레 혜정 스님 몸으로 전이됐다.
“요즘도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은사스님은 어떻게 처리했을까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사스님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마음,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은사스님을 떠올리는 혜정 스님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혜정 스님은 1970년대 중반 법주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법주사 강원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강원에 유명한 교수를 초빙했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영어, 심리학, 비교종교학 등 내외전을 모두 교과과정에 도입시켰다. 이러한 교과과정과 함께 율반, 포교반, 외국어반, 편집반, 염불반, 미화반 등 6개 자율반을 편성해 활기를 띠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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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당시 종정이었던 서옹 스님의 부름으로 총무원장직을 맡았지만 곧 자리를 내놓고 월출산에 있는 토굴로 내려갔다. 도갑사에서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던 이 토굴은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만 있을 뿐이었다. 시계도 없어 새 우는 소리로 시간을 짐작할 정도였다.
바람 불면 월출산 전체가 흔들리고 비오면 월출산 전체가 온몸을 흠뻑 적셨지만, 겨울밤 달빛에 비친 순백의 세계는 아직도 스님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회향도 토굴에서 하고픈 마음이다.
“토굴이나 암자 수행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중 선원에서 기틀을 다진 수행자는 토굴에서의 집중 수행을 통해 더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요. 하지만 초심자가 토굴에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자칫 나태해지기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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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어떤 토굴이 열심히 정진하는 토굴인지 식별할 수 있는 방법도 귀띔해줬다.
“마당이나 부엌이 깨끗한 토굴이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토굴인 것 같죠. 아닙니다. 마당이나 부엌이 깨끗한 토굴은 수행자가 거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당에 풀이 우거지고 부엌은 더럽더라도 방에 좌복 하나 있는 토굴이 진짜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스님에게 법문을 청해 듣고 사리각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었다. 수많은 세월 비와 눈보라가 몰아쳐도 엷은 미소를 띤 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마애불. 조금 전 사리각에서 보았던 선지식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글=남동우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혜정 스님은
1933년 전라북도 정읍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19살 때 예산 수덕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62~83년 1~8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72년 중앙종회 부의장, 77년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법주사 주지와 율주 소임을 거쳐 현재 조계종 법계위원장, 원로의원이다. 이(理)와 사(事)를 겸비한 대표적 스님으로 수행자의 귀감을 보이고 있다.
혜정 스님의 가르침
불교는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적인 종교입니다. 대신 인간을 중심으로 마음을 닦아 깨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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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교에도 신이라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화엄경〉을 비롯해 여러 경전에도 나오는 신은 일종의 마음의 변형입니다. 즉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자립적이고 존재적인 신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종교라면 인간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인간은 이중구조로 돼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이요 또 다른 하나는 마음입니다. 육신은 사대(四大:地, 水, 火, 風)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환원됩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걸 우리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지만 가짜 나인 가아(假我)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 나입니까. 가짜 나와 상대되는 것,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마음을 찾아서 깨친다고 했는데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는 마음을 어떻게 접근해 깨칩니까.
그래서 고인(古人)들이 마음으로 마음을 찾으려고 하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비유컨대 물은 모든 것을 씻지만 물 자체는 씻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찾을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여기서 다른 학문이나 진리추구와는 다른 방법이 대두됩니다. 말도 문자도 생각도 일체 접근을 불허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관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3000년 전 직관의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역대조사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 것, 중국에 와서 달마대사가 재창조한 것이 바로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이라는 것은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두는 뭐냐, 의심덩어리입니다. 이 의심덩어리를 깨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깨치는 근본자리입니다.
화두는 양미간에 든다고 했습니다. 어느 노스님은 화두를 들면 산을 보되 산이 아니요 물을 보되 물이 아니요, 행하되 행하는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몸과 마음을 통해 오직 의심덩어리 하나만 끝까지 쉬지 말고 정진해야만 깨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두도 깨치기 전까지 공부하는 방법론이지 궁극에 가면 망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버려야합니다. 무심한 경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무심한 경지란 허공 같아서 막힘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고, 목석과 같아 움직임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것입니다.
버리는 경계를 무심이라고 했습니다. 무심한 경계에 도달하면 그것이 깨치는 것이고 우리의 구경처입니까. 아닙니다. 물이 흘러가다 멈추면 썩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한 경지에 안주해 이것이다 하고 주저앉게 되면, 비유컨대 깊은 귀신굴에 떨어져서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명을 바쳐 진일보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목숨을 바쳐 한걸음 더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요 깨치는 구경처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 어느 외도가 와서 “아주 훌륭한 성자라고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괴로우니 한 말씀 해 주십시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자 그 외도가 “제가 질문한 요지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말하고 갔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한마디도 안 했지만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설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의 인연이나 근기가 마주치면 가능한 일입니다.
화두를 들고 끝까지 정진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화두를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신심을 견지하고 꾸준히 정진하면 구경에 도달한다는 믿음 말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먼 길이요, 고달픈 길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막막한 사막을 걸어야만 합니다. 걸어가다 보면 회오리바람을 만나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독충이나 맹수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으며, 작열하는 태양에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문의 본분은 수행입니다. 수행을 위해 집과 가족, 모든 것을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쳐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란 무엇이냐. 부처는 최고의 인격경지를 수행을 통해 체득한 사람, 생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지를 체득한 사람, 모든 고통을 여의고 고통 없는 세계를 체득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마음을 깨쳐서 된 정신적인 대 혁명가입니다. 즉 부처님은 역사적인 인물이지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나무는 아래서 위로 자랐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습니다. 지금도 나무는 위로 자라고 물은 아래로 흐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인간이 부처가 됐다는 것, 마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깨칠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삼계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합니다.
요즘 위빠사나를 한다 요가를 한다 그럽니다. 안되니까, 답답하니까, 세월은 자꾸 가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으니까 방황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신심을 굳건히 해서 원력을 세운 다음 꾸준히 정진해야 합니다.
불교는 신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정리=남동우 기자·사진=박재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