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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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마음 그림"
[산문밖의 禪] 재미 설치미술가 임충섭
충북 진천 한 마을에서 살고 있던 동네가 이 세상 전부인줄 알았던 9살 아이. 아이에게 동네 어귀에 있는 우물은 유일한 모험의 장이었다. ‘밤마다 우물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는 소문은 밤 12시마다 아이를 탐험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실패하기를 네 차례. 휘영청 보름달이 뜬 어느 밤 다섯 번째 탐험에 나선 아이는 달빛을 의지해 우물을 찾아갔다. 그렇게 찾아간 우물에는 두려워했던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달빛을 받은 아이의 얼굴만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작품 소실점 앞에 자리한 임충섭 화백. 전시실에는 황병기의 가야금이 은은히 울린다


아홉 살 아이가 또 다른 세상과 만났던 우물. 그 우물은 이제 예순 다섯 살 임충섭 화백의 작품으로 모습을 바꿔 세상과 소통한다.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재미 설치미술가 임충섭 화백은 작품 속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 우물 속에서 바라본 얼굴은 내 얼굴이면서 동시에 소문 속 아기의 모습이었겠죠. 돌이켜보면 두려움의 근본을 좇고자 했던 그 행위는 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던 불교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내 예술세계에서 하나의 양식이 되고 영양분이 됐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니까 절감합니다.”

현대미술을 ‘마음 그림’이라고 말하는 임 화백은 “looking and drawing(보고 그리기)이 아닌 thinking and drawing(생각하고 그리기)이 맞다”며 현대미술을 정의한다. 그래서 그에겐 사유가 곧 작품이요, 작품이 곧 수행이다.

2층 전시실에 설치된 작품 소실점은 수직수평으로 얽힌 실을 한 올 한올 해체했다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2월 19일까지 열리는 초대전에서도 그의 수행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중에서 임 화백이 가장 불교적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부처귀’도 ‘결가부좌’도 아닌 ‘채식주의자(vegetarian)’다.

“‘채식주의자’를 작업할 때는 두 달 동안 레진(resin알코올·에테르에 녹는 천연수지의 일종)을 액체로 녹여 매일 아침 불공드리듯 조금씩 떨어뜨려가며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든 채식주의자는 스님의 모습이자 채식을 실천하는 불자의 모습이기도 하죠.”

‘부처귀’는 하얀 벽면에 하늘거리는 그림자까지 작품의 영역이다. ‘부처귀’와 나란히 놓인 ‘결가부좌’는 참선하는 임 화백의 손과 발이자 부처님이 결가부좌를 틀고 수행하는 모습이다. 손과 발만 하얗게 표현된 ‘결가부좌’에서 몸이 빠진 것은 동양화가 추구하는 여백의 미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임 화백의 설명이 뒤따른다.

작품과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임충섭 화백


“우리는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부처이고 쌀도 그 자체가 부처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불교의 사상을 쌀이라는 소재로 표현했다”고 작품 ‘쌀’을 소개한 임 화백은 그래서 ‘쌀’은 바로 ‘쌀부처’라고 말한다.

2층 전시실을 통째로 채운 ‘소실점’은 나무와 실, 전동장치 등을 활용해서 작업했다. 인도에서 들여온 명주실은 그 자체로 동양적 정서를 내포한다. 때로는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전시실을 가득 매운 실들의 향연은, 천을 만들어내는 수직ㆍ수평의 반복을 한 올 한 올 해체한 작업이다.

작품 결가부좌는 손과 발만으로 표현했다


나무 창호지 천연수지 등으로 작업해 온 임 화백에게 실을 중심 소재로 작업한 ‘소실점은 “내 작업 속에서의 다른 재료의 선택(difference media choice)”이었다.

서울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 그것도 유화를 전공한 임 화백은 1973년 도미해 사각 캔버스의 감옥에서 과감한 탈옥을 실행한다. 사각에 갇혀 고통스러웠던 자신을 해탈시키는 작업이었다.

“예술은 자유입니다. 불교도 자유로운 종교 아닙니까. 제가 추구하는 자유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자 견성(見性)입니다.”
임 화백은 ‘견성’이라는 단어를 너무 좋아한다. 그에게 견성은 현실종교의 모토가 되는 말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시각예술처럼 언어학적 구조를 가진 간단하면서도 불교에 미칠 수밖에 없게 하는 화두이다.

부처귀는 벽면에 흔들리는 그림자까지 귀의 영역이다


원래 임 화백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그러나 도미 후 지난 30여 년 간 미국 평단은 그의 작품을 불교적이라고 평가했다.
“내안의 무엇이 불교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법문도 듣고 불교서적들도 탐독했습니다. 그러면서 불법의 세계에 빠져들었죠.”

임 화백은 작품 하는 과정을 스님이 목탁을 치며 기도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치열하기 때문이다. 근본을 잊지 않으려고 꾸준히 불교서적도 많이 봤다. 임 화백은 자신의 이런 생활 방식을 “가장 게으른 내 신행의 편린이어서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부르주아적이고 화려한 멋쟁이 신발이 아니라 거지발싸개 같은 것을 그리는 게 예술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임충섭 화백은 요즘 요가를 하며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챙긴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부처님의 가피로 조금 더 생을 이어간다면 다시 사각의 캔버스로 돌아가서 떠난 그 수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반추하고 싶습니다. 생의 기점에서 나를 재발견하고 싶고,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 불교적인 단순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습니다.”
글=강지연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6-02-10 오후 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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