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 신행
여러분 한분 한분 태어난 게 그대로 화두며 태초
현대불교신문연재 - 길을 묻는 이에게
밝게 살고 싶어요!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선원의 큰 행사 중 하나인 정초 촛불재를 접수하면서 제 마음에 서원이 생겼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무명으로 어두워진 내 마음에 불을 밝혀서 저의 몸과 마음이 밝아지고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히 듭니다. 물론 조금조금씩은 저도 모르게 바꿔지고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은 들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밝히는 우리들의 서원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서 밝음을 주듯 그렇게 제 마음이 밝아져서 제 주위의 모든 사람들 또한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스님, 한 발짝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마음을 밝힐 수 있는 법문을 내려주십시오.


우리가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가면서 그냥 말로만 듣지 말고 뜻으로 들으시고, 말을 하더라도 함이 없이 하면서 행하는 그런 습을 길렀으면 합니다.

첫째, 부처님 법을 배우시는 분들은 법당에 와서 쌀이나 놓고 떡이나 놓고 비는 것이 불제자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성삼보(自性三寶)에 귀의해서 계발하고 증득하고 체험하고,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부처님 불씨를 키우는 보리(菩提)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그 망상이 전부 보리심을 길러서 꽃 피우는 과정입니다.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몸과 마음이 다 보리심이죠. 여러분 빼놓고 가정 빼놓고 사회 빼놓고 국가 빼놓고 세계 빼놓고, 부처님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분 한 분 한 분 태어난 게 그대로 화두며 태초라고 항상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말만 듣고 그냥 ‘내 주인공에 놓고 가면 되지.’ 이렇게 하면서 행을 못한다면 그거는 말하나 마나 건성 도는 일입니다. 부부지간이나 부모 자식 사이에 위로나 아래로나 항상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평등한 행을 하고 부드러운 말을 서로서로 같이 나눌 수 있는 말 없는 무심(無心)의 자비심이 있어야 된다고 항상 말씀드리죠. 그 자비심으로써 어떠한 악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떠한 괴로움이 온다 할지라도 거기에 맡겨 놓고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돼야만이 정말이지 부모 된 자격이 있는 겁니다. 부모 된 자격이 있어야 부처 될 자격도 있죠.

우리가 항상 집안에서 조그마한 꼬투리를 가지고 기분 나쁘다고 서로 싸우고 자식들한테도 부적당한 말을 하는 한편, 자기의 소견대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어긋나고 흩어져서 춥고 배가 고픈 것입니다. 여러분은 똑같은 그릇이 아니라 종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차원의 그릇이지만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하고 제가끔들 사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옳다고 그러는 것을 그르다고 할 수도 없고 또 맞다고 할 수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가정에서 살림살이를 잘하시려면 평등한 마음으로써 항상 부드럽게 말해 줄 수 있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행을 항상 자기 주인공에 맡겨 놓고 할 수 있게끔 하셔야만 말 없는 데를 통해서 서로 접견이 되는 겁니다. 말로 해서 말로 듣게 하지 말고, 뜻으로 해서 뜻으로 듣게 한다면 무심으로써 바로, 그 전달 없는 전달이 됨으로써 가정은 밝아지고 편안해지고, 이 마음 속 생명들도 같이 한마음으로 돌아감으로써 모두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대충대충 얘기하고 넘어갑니다마는 여러분이 지금 말로만 배워서 행을 못하고 가신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의 근본이 몸을 형성시켜서 이끌고 간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정신차려서 생활을 해 나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려운 지경이 많이 닥치리라고 봅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째는 내가 나를, 참나를 탄생시켜서 상봉하는 겁니다. 현재의 나가 과거에 살던 참나를 발견해서 상봉을 한다면 자유자재권을 얻어서 12대 종손을 건진다고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체 만물만생들에게 다 응신으로서 나투면서 어느 것 하나 나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또는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는 그런 모든 진리에 관한 섭류를 터득해서 바로 자유권을 갖는 겁니다.

둘째는 우리가 살다가 죽는다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현실을 살게 되고 현실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미래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차원에 따라서 과거도 현실이고 미래도 현실이니 오늘, 영원한 오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시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라는 마음이 있고 자식이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바로 전기가 가설돼 있듯이 마음의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모나 자식을 위한다면, 내 육신 안에 생명들이 잔뜩 들어서 더불어 같이 살고 있으니 그대로 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남을 원망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서 나를 밝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다못해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촛불재를 하면서, 또 마음으로 항상 불을 밝히면서 생활 속에서 닥치는 일체를 재료로 삼고 행주좌와로써 참선을 하실 수 있다면 더불어 밝아지는 겁니다. 지금은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자체가 부처님 법이요, 우리들 법이 부처님 법이요, 부처님 법이 우리 법이요, 우리네들 육신이 부처님의 형상이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대무변하고 묘한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서도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밝히면 둘 아니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밝혀야만 되는가. 자기가 나온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안의 섭류를, 정신계를 도저히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 육신이 태어났으면 정신이 다시 태어나야 진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나가서 어떠한 문제를 저지르기도 하고, 지금 현재 상황 속에서 별의별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불을 밝히고 마음공부를 하신다면, 생활을 재료로 삼아서 항상 하실 수 있다면 바로 아래 자손들은 마음이 화해서 바꿔지고, 바꿔지면서 화하게 됩니다. 그 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의식들이, 업식으로 남은 의식들이 다 착해지고 밝아지고 보살로 화해서, 말로 하거나 욕하고 때리지 않아도 스스로 밝아짐으로써 일이 풀리고 돌아가신 부모의 영령들도 밝아져서 스스로 천도가 되죠. 자기와 더불어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광대합니까.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것도 연구 재료죠. 우리가 꼭 연구를 한다 하고 연구를 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마음을 정돈하고 계발하고 발전시켜서 우리 생활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주적으로 내 마음 한생각에 모두 자유로이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촛불재라는 것은 이 모든 유위법이나 무위법에서 내가 형성되고 살아나갈 때에 컴컴했던 일을 다시금 내 깊은 마음으로 인해서 두뇌에 밝은 그 물리 지혜를 내기 위해서, 항상 뿌리가 깊게 밝음을 스스로 밝게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촛불재를 하는 겁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닙니다. 이건 촛불을 들고 켜고 하는 방편이라고 하지마는 방편이자 진실입니다, 이건.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거나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안된다거나 이런 것도 그것도 업에 속하는 거니까 그것도 본인이 촛불을 들고서 그렇게 하게끔 만들어 주거나 부모가 해 주거나 이래도 그건 훨씬 물리가 터지게 돼 있는 겁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조건이죠. 내가 해 놓지 않고 내가 무엇을 받을 게 있겠습니까? 내가 해야만이 한 것만치 받을 겁니다. 그러니까 촛불재라는 것이 아주 못났든 잘났든, 또는 업보가 많든 업보가 적든 하여튼 누구나가 다 해야 될 일이라고 봅니다.


지수화풍은 어디서 생겼나요?


미국 사회에는 기독교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하고 대화할 기회가 많은데 토론을 하다 보면 다른 모든 것에서는 불교 이론으로 대답을 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제가 막히는 것이 뭐냐 하면 모든 진화 과정이 지수화풍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수화풍은 무엇에서 생겼느냐 하는 질문을 합니다. 기독교 계통에서는 지수화풍을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교 쪽에서는 지수화풍을 만든 사람은 누구냐 할 때 그럼 ‘마음이다, 마음이 지수화풍을 만들었다’ 하게 되면 합리적인 근거가 없으니 거기서 좀 막힙니다. 큰스님께서 답변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수화풍이다 하면 지수화풍도 생명이 있는 겁니다. 애당초에 흙, 바람이 불어서 말리고 또는 비와 물기 이런 것이 다 혼합이 됐기 때문에 거기서 온기가 생기죠. 온기가 생겨서 생명이 생기고 그 생명으로 인해서 지수화풍이 점점 그게 커진 거죠. 그러니까 지수화풍으로부터 생명이, 생명으로부터 지수화풍이, 이렇게 돌아갈 수 있겠죠.

그러니까 모든 게 생명 아닌 게 없고 지수화풍 아닌 게 없죠. 그래서 지수화풍은, 즉 말하자면 인간의 생명과 둘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건 얼른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다. 생명과 마음, 이 마음 중도, 즉 말하자면 생명과 육신이 둘이 아니다.’라는 얘깁니다. 그러니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서 막힐 게 없습니다. 항상 둘이 아닌 그 까닭에 바로 생명이라고 하고 바로 지수화풍이라는 이 뭉쳐진 물질계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죠. 그러면 그 물질계의 지수화풍 자체가 아니라면 우리가 지금 연구를 해서 수소폭탄이니 핵폭탄이니 또는 인공위성이니 모든 이런 거를 우리는 개발 못했을 겁니다. 모든 게 그런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육식, 즉 말하자면 이 육근이 있으면 육진이 있고, 육진이 있으면 육식이 있어서 이 육식이라는 자체는 모든 의식 자체에서 나오는 전체, 전체라고 해도 됩니다.

그러니 그걸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한마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면세계의 한마음, 외부의 모든 것이 다 한마음, 생명 이 자체가 불(佛)이니만큼 마음내는 거는 한마음으로 돌아간다. 그 마음 내는 거를, 즉 말하자면 그 마음을 낼 수 있는 거를 영혼이라고 하고, 본래 자성불이라는 거는 바로 불입니다. 그래서 영원하다 하는 겁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걸 포함해서 우리가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 대천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냐?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이 인간의 마음 근본에 직결돼 있어서 둘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그 우주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여러분의 생명 근본의 마음에서 나온 겁니다. 여러분이 안 계시다면 그것도 없었겠죠. 여러분이 안 계시다면 가정도 없고 부처도 없고 종교도 없고 바로 나 자신도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거슬러 올라가서, 태초를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태초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론으로만 그게 꺼지지 ‘나’라는 자체의 그‘참’이라는 거를 느껴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바로 태초고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고, 바로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나’라는 게 있고, ‘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나’라는 게 공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은 만 가지 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신입니다. 그래서‘자신(自神)’입니다. 각자의 ‘자신’ 속에서 만 가지 신이 나오는 거죠. 예를 들어 먼 길을 떠날 때에, 부모가 빌어 주든 본인이 하든 ‘한마음 주인공! 당신이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니까, 바로 당신밖에 없어.’ 이렇게 믿을 때에 바로 지신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행이 나오고 만 가지 말이 나오고 만 가지 말을 듣기도 하고 만 가지를 보기도 하고 이러니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더할 수 없는, 부처 중생이 둘이 아니게끔 여러분은 그대로 실상이라는 거고 그대로 여여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그대로 안다는 겁니다. 만법을 그대로 들이고 내고, 한 군데서 들이고 내고 한다는 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그거를 안다면 여러분이 자유스럽게 살고 있으니 바로 자유인라는 뜻입니다. 그 도리대로 자유스럽게 못 산다면 바로 걸리는 겁니다. 우리가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이걸 떠나서, 하나도 걸리지 마세요. 이 몸은 작게 친다면 조그만 집이기도 하지만 조그만 혹성이기도 합니다. 이 혹성 속에는 세계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잘 쓰면 잘 돌아갈 것이고 못 쓰면 못 돌아가니, 그것을 말해서 모두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겁니다. 마음 먹기에 달려 있지 누가 갖다주는 것도 아니고 뺏어가는 것도 아니다. 이거는 누군가 신이 있어서 나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내 자성이 나를 이끌고 갈 뿐이고, 그 자성이 체가 없어서 바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을 갖기도 했지마는 천차만별로 일체 다 바로 광대무변한 그 마음이란 얘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죽는다 하더라도 그 생명이 죽는 거는 아닙니다. 지수화풍에서 와서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니 그 지수화풍마저도 생명이 없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한데 모아서 하나가 하늘을 받칠 수 있는 기둥이 되는가 하면 그것이 흩어져서 요런 졸개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모으는 공부는 마음을 모아서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고, 밀물 썰물이 되듯이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고정되게 있지 않으면서도 하늘을 받치고 돌아가고 있다 이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다시 또 출현을 하실 때에 그러한 마음과 마음이, 들이고 내는 그 자유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그냥 끝간 데 없이 가게 되니까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바로 대 보살이 돼서, 보살이라는 건 이름입니다. 어느 큰 회사를 운영해 나간다거나, 장관이 된다거나, 대통령이 된다거나, 큰 나라의 인군이 된다거나 이런 문제도 바로 그런 데서 오는 겁니다.

우리가 부처라는 이름 자체가 부처가 아니라, 자유스럽게 걸림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자유인이며, 바로 그것이 청정한 천백억화신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고, 모든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살기가 복잡해요!


스님, 너무 살기가 복잡해요. 보이고 들리는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어느 날부터 매체란 매체는 모두 국민적인 영웅이라며 모 교수를 치켜세우더니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희대의 사기꾼이었다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뉴스를 보면 그것 또한 거짓이고 음모였다고 하니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온통 거짓투성이처럼 느껴집니다. 진정 속고 속이는 것이 세상사라고 하지만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고 살아야 미망에 헤매지 않고 똑바로 보고 똑바로 듣고 똑바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지금은 상당히 복잡한 세상이 됐죠. 그런데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결정을 짓는냐에 문제가 아주 소소영영하게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을 해야 잘될지를 모르니까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하고 한용운 스님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자기가 모르는 거니깐 자기 주인공에다가 맡기는 겁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어.’ 하고. 또 그걸 아는 분들은 자기가 그냥 결정을 지어도 되고요. 그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법정의 길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가정에서 사시지만 여러분이 충만하게 돼야 가정도 충만하고 사회도 충만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 생각이 충만하기 때문에 충만하게 돌아간다 이 소립니다. 내가 충만치 못하고 충만치 못한 사람을 집안에다가 갖다 놓는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겁니까. 한참 고생을 하고 돌아가죠. 그러니깐 내가 충만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충만치 못한 사람을 갖다 넣어도 충만하게 돌아간다 이 소립니다. 일제시대 때에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도 그렇고 얼마나들, 돌부처도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고 사명 대사니 서산 대사니 어떤 스님이든지 다 나서서 군대를 이어 줬고 한국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생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애당초에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애당초에 물이 요렇게 조금 새는 거를 갖다가 탁 막을 수 있어야 되는데 그 지혜가 없어서 조금조금 흘러 내리는 거를 막질 못했기 때문에 확 터진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가난하지 않아 천에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면 저절로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가난하지 않습니다. 왜냐? 그렇게 하기 때문에 죽은 영령들도 다 한 공체가 되고 공심이 되니깐요.

우리가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고 그러는데 이 불법에는 20세기 21세기가 따로 없어요. 하지만 지금 현재의 물질세계에서 볼 때는 날짜도 20세기니 21세기니 사람이 기축(基軸)을 만들어서 우리가 질서를 정확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돌아가는 걸 똑바로 보고 똑바로 듣고, 똑바로 냄새 맡고 똑바로 움죽거려라 하는 얘기죠. 그러되 자기를 리드해 가는 자기의 주처를 무시하면 안 되죠. 그래서 이 세계의 진리는 하나지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진리라는 것은 내 하나의 마음이라면 우주와 은하계 모두, 북두칠성이나 모두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할의 뜻이 우리들의 근본처에 바로 바로 직결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나의 마음을 안다면, 아는 게 없이 너무나 아는 게 많아서, 아는 게 없다고 하고, 한 게 없다고 하고, 할 게 없다고 하고 말할 것도 없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달마 대사는 “내 마음이 복잡해서 복잡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일러 주십시오.” 하니까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내놓거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 주마.” 이랬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부처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어떤 성인들은 머리를 팍 때리면서 “아야!” 그러면 “야, 아야 그러는 놈은 누구냐?” 하고 야단을 쳤다죠.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도 틀림없는 모두 여러분의 그 부처를 아주 밝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좋을까요가 아니라 여러분은 삶의 보람을 느끼실 겁니다. 누가 행복을 갖다주는 것도 아니고 뺏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서 행복하게 사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안으로만 화살을 꽂는다면, 바깥으로 화살을 꽂으려고 애쓰지 말고 안으로 화살을 꽂아서 그 안에서 원심력에 의해서 모두 입자가 나가서 자기 일을 하게끔 만들어야 된다 이런 소리죠. 몸은 겉으로 보이지 않으면 상대가 안되니까 보여서 일을 하게끔 되는 시자 역할을 하는 것밖엔 안되죠. 그러나 자기가 시자 노릇을 잘한다면 자기가 행복한 거죠. 세상에는 나 하나를 세울 게 없어요. 나 하나만 이렇게 귀중하고 나 하나만이 할 수 있다, 이런 건 없어요.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이 천하와 우주를 얻을 수가 없어요.

하여튼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가시는데 내 앞에 닥치는 대로만 놓고 가시면 그렇게 많은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자꾸 도의 길을, 진리를 참구해서 알게 되면 더더욱 가정이 점점 맑아지는 겁니다. 사람은 마음이 벗어나질 못해서 이 중세계의 고난 속에 천차만별의 생명들과 더불어 같이 허허바다에 배 띄워 놓은 거와 같이 살고 있죠,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고요. 그 마음이 벗어진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하늘을 한 손가락으로 받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대행 스님 | 한마음선원 원장
2006-02-01 오후 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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