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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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지키며 살아야 행복"
안성 석남사 회주 정무(正無) 스님
사흘 전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그대로다.

서운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석남사는 해가 짧은 탓이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석남사는 안성의 대표적 전통사찰로 높지도 깊지도 않은 서운산의 산세를 닮아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단아하다.

조용한 겨울 산사. 정무(正無ㆍ76) 스님과 눈길 위를 걸어가는 동안 ‘뽀드득 뽀드득’ 소리 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과 함께 걷는 산행은 녹녹치 않았다. 대뜸, 기자에게 “날이 풀리면 대청봉을 같이 오르자”고 하신다. 세수 일흔 여섯인 스님은 젊은 기자가 따라 걷기에도 벅찰 만큼 빨랐다.

“경찰대학 법사를 시작(1987)하면서 매년 졸업생들과 대청봉을 오르는데, 이놈들은 아직도 나를 못 쫓아와, 허허.”
“그래도 스님 너무 무리 하시면 안 됩니다, 연세가 있으신데.”
“내 여든이 되면 그때는 좀 늙었다고 인정해 줄까? 아직은 젊어, 괜찮아.”

제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스님.


언뜻 봐도 스님의 건강은 남다르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님의 건강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때 생식을 잘못해 곤혹을 치른 뒤 정말 건강하게 잘 사는 법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자연건강법을 만났다. 수십 년 연구 끝에 자타가 공인하는 자연건강법의 대가가 됐다. 몸이 아파 고생하는 이들을 만나면 언제나 스님만의 건강법을 설파하신다.
의외로 스님의 자연건강법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가 보기에 아는 게 병이여, 요즘 사람들은 어설프게 아는 게 문제야. ‘피식지심(皮食肢心)’만 잘 살펴도 건강 때문에 큰 고생은 안 혀. 사람 몸의 피부는 ‘산득산득’하니 자연바람이 통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껴입으면 그게 곧 병을 불러. 먹는 것도 아무거나 잘 먹으면 좋지만 매 끼니는 오곡밥(곡식의 종류에 상관없이 5가지 곡물이면 된다고)을 빠뜨리지 말아야해. 운동은 사지를 흔들고 걷는 것 만한 것이 없지. 마지막으로 정신은 ‘양능선(良能善)’을 무장해야 건강의 기본이 지켜져.”

스님은 빨래를 손수 하곤 한다.


산을 내려와 경내를 둘러보던 정무 스님은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보물 제823호 영산전 보수공사를 못마땅하다는 듯 “몇 달이면 끝날 것을 시간만 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문화재청이 발주한 보수공사는 사찰의 의지와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를 진행 중인 기술자들은 스님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기 그지없다. 삼보를 호지한 불사의 정신은 빠진 채 단지 죽은 건축물을 복재하는 왜곡된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행정의 이면을 지켜보는 듯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스님이 석남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6년 남짓. 그동안 석남사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무허가 슬래브 건물 8동을 내손으로 헐어 냈다”는 스님은 대웅전과 영산전 주위로 아무렇게나 지어진 요사들을 부수고 가람의 틀을 새롭게 정비했다. 지난해 석남사는 분뇨를 퇴비화 하는 전통 해우소로 주목을 받았다. 불교환경연대가 사찰환경의 모범사례로 지정할 만큼 잘 지어진 해우소다. 스님도 “목재만을 이용해 지어진데다 통풍과 채광이 뛰어나 수세식 못지않게 냄새가 적다”며 자랑을 곁들였다.

작은 법당을 겸한 스님의 처소로 들어섰다. 평생 검약이 몸에 배인 탓에 웬만해서 난방도 잘 하지 않는다고. 심야전기로 온기를 채우는 스님의 방에는 겨울 내내 두꺼운 요가 깔려있다. 요 밑으로 발을 파묻고 스님과 마주 앉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장과 작은 침상. 조만간 출간을 준비 중이라는 스님의 설법집 원고가 놓여있는 낮은 책상까지 방안 구석구석에서 스님의 빈틈없고 단정한 성품이 그대로 배어 있다.

“천정 좀 봐.” “어! 전등이 없네요.”
“우리 절에는 천정에 불을 안 켜, 머리위에 그런 게 있으면 안되니께.”


정말 그랬다. 스님의 방뿐만 아니라 법당, 공양간 등 석남사는 어디에도 천정에 조명이 달린 곳이 없었다. 한쪽 벽면에 사람 가슴높이로 전등이 달려 있는 것이 신기했다. 늘 같은 생각, 같은 행동에 얽매이는 어리석은 기자에게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경책하는 것 같아 머쓱해졌다. 하루 종일을 따라 다녔지만 귀찮은 기색도 없이 하나라도 더 일러 주시려는 듯, 어떤 때는 오히려 기자가 묻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안성석남사 회주 정무스님


기자가 조심스럽게 “정초가 다가오는데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하고 말을 꺼냈다. “어리석은 소리 말어. 사주는 주역을 근거로 하는데, 주역은 기계론이야. 기계는 사람이 움직이는 거 아냐?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불자가 기계에 의지한다는 게 말이 돼나?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야.”매사가 낙천적인 스님이지만 삿된 생각에는 거침없이 일침을 가했다. 해박한 교리를 바탕으로 한 스님의 말씀은 한참을 이어졌다.

“부모노릇, 부부노릇, 자식노릇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먹고 세상은 갈수록 어지럽기만 한데 이유가 뭘까?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바꿨어. 유식을 공부할수록 태교의 중요성이 절실하더라고. 그래서 올해는 포교전략을 태교로 정했지. ‘8식’이 아이의 머릿속에 깃들기 시작하는 뱃속에서부터 지극정성으로 키워야 세상이 변할 거야.”

기자와 스님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짧은 해가 꼬리를 감추려 할 무렵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님은 후원의 아궁이 앞에 앉아 손수 군불을 지폈다. 도회에서는 버튼만 누르면 온수와 난방이 한번에 해결되지만 스님은 “시주를 아끼기 위해서라면 이정도의 번거로움은 얼마든지 감내 할 수 있다”며 기꺼워하신다.

가마솥에 김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 기자에게 떡국을 대접하겠다며 공양주 보살이 뜨거운 물 한 솥을 퍼갔다. 잠시 후 스님도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양동이에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세수를 하고 그 물로 다시 발을 씻었다. 밖으로 나온 스님의 한손에 양말이 들려있다. 스님은 아무런 말없이 발 씻은 물에 양말을 손수 빨았다.

저녁때가 돼 스님을 취재하기 찾아온 송광사 강원 학인들과 떡국을 공양했다. 기자의 떡국 그릇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갑자기 스님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눈을 비볐다.


정무 스님은

정무(正無) 스님은 1931년 전북 군산 임피면 축산리에서 태어났다.

불교정화가 한창이던 1958년 전북대 수의과를 다니던 스님은 “나라를 되찾았으니 불교도 되찾아야 한다는 ‘분심’에 뚝섬에서 배를 타고 봉은사를 찾아가 불문에 귀의했다”고 말할 만큼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곧바로 그해 1월 엄동에 군산 은적사에서 전강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전강 스님에게 ‘초발심자경문’과 ‘사집’을, 관응 스님에게 ‘사교’를, 탄허 스님으로부터 대교를 마쳤다. 이후 65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기까지 김제 흥복사와 대구 동화사 등지에서 참선 수행에 몰두했다.

1968년 안거를 나기위해 범어사 선방으로 내려가던 중 주지가 없는 영주포교당에서 하루밤을 묵은 것이 인연이 돼 본격적인 대중교화에 뛰어들었다. 신도회 조직과 수련회에 탁월한 면모를 보여 1971년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주지를 맡았다. 오늘날 용주사가 ‘효행본찰’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이 무렵 정무 스님의 폭넓은 활동 덕분이다. 2000년부터는 안성 석남사 회주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일러주고 있다.



정무 스님의 가르침

계율은 왜 지켜야 하는가?

불교공부는 ‘계정혜’가 핵심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ㆍ행(行)ㆍ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참선에 들어 바른 지혜를 얻으려 제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이유는 계행이 청정하지 못해서입니다. 이것은 마치 파도가 일렁거려 달그림자가 안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파도가 그쳐야 비로소 달빛이 강물위에 비치듯 계율로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어야 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무 스님은 인성에 효순하는 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계를 지키면 마음을 고요히 집중할 수 있고, 정에 이르러 혜가 그대로 구족해집니다. ‘막행막식(莫行莫食)’하면서 지혜를 얻겠다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만큼이나 헛된 짓입니다. 조선말 불교가 어지러워지면서 일부에서 ‘구두선(口頭禪)’만 떠들면서 계를 함부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될 말입니다. 다행히 오늘날 불교 스스로 자정력이 생기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계율이 청정하고 맑아야 지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음주가 5계의 기본

출가하지 않은 세속의 불자들도 마찬가집니다. 가정이 먼저 평화로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는 인성(人性)이 회복돼야 합니다. 율사들이 계를 주면서 ‘살도음망주(殺盜淫妄酒)’를 지키라고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술을 마지시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계를 받고도 불음주를 못 지키는 사람들이 많으니, 율사들조차도 조금만 먹으라고 사정을 하는 모양인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건 말도 안되는 겁니다. 부처님도 맛도 보지 말라 했어요. 오죽하면 오백세에 손가락하나 없는 인과를 받는다고 했을까. 왜냐하면 살도음망이 모두 술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주막에서 술을 먹고 있었답니다. 술을 먹다보니 기운이 뻗치고 몸이 근질근질한데 마침 마당에 닭이 지나가고 있어요. 앞에 있던 돌을 던져 닭에게 던졌더니 닭다리가 똑 하고 부러졌습니다. 주인이 알면 큰일이다 싶으니 이놈을 부엌으로 몰래 들고 가서 잡아먹어 버립니다. 이내 닭 주인이 나타나 지나가던 닭을 못 보았냐고 묻습니다. 그러니 딱 잡아떼고 못 봤다고 거짓말까지 해버립니다.

이것 보세요, 술 한 잔으로 ‘살도음망주’ 5가지 계율을 거침없이 파해버리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계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성입니다. 그러면 인성이란 뭔고 하니 ‘본원(本願)ㆍ청정(淸淨)ㆍ광명(光明)ㆍ환희(歡喜)’가 핵심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좀더 알아듣기 쉽게 ‘자비ㆍ봉사ㆍ순결ㆍ지혜’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어렵다면 ‘진선미(眞善美)’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그 지금은 본성조차 일 그러 진겁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계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비ㆍ봉사ㆍ순결ㆍ지혜’를 실천해야 한다는 겁니다.


계는 인성에 효순하는 것

그런데 저는 계율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계율은 삼보(三寶)에 효순(孝順)하고, 부모에게 효순하고, 스승에게 효순하는 것이 계율이라고 말입니다. 부처님이나 자기 부모나, 남의 부모나 똑 같이 공경해야 한다는 겁니다. 계를 받은 날로부터 부처님의 제자로 인생이 새롭게 태어나는 겁니다. 신라의 자장 율사는 인간이 목숨을 잃으면 일생이 끝나지만, 계를 잃으면 세세생생 만겁을 악도에 헤맨다고 했어요. 공자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노후대책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준비 없이 노후를 맞아 고생하지 않으려면 10억원은 있어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나만 뒤쳐지고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토지나 상가에 투자를 해서, 주식을 해서 10억을 모을 수 있다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 그런 방법으로 그런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지금 35살 직장인이 정년퇴직을 할 때 까지 저축을 한다면 얼마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둑질을 해서 10억원을 모을 수 있을까요? 이 역시 어림도 없습니다. 적어도 ‘강도’는 되어야 겨우 그 돈을 모을 수 있겠다 싶어요. 모두들 제정신이 아닙니다. 어쨌든 무슨 방법을 써서 10억을 모았다 칩니다. 그런데 55세 정년이 되어서 이것을 쓰면서 편안히 산다는 보장이 있어요? 실제로 내가 보아온 이런 사람들의 말년은 그렇게 행복하지가 못했습니다.

아까워 10억원을 다 써보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롭게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평생 그 큰돈을 모으기 위해 주위사람들에게 몹쓸 짓하고 손가락질 받아가며 살았을 테니 누가 그 사람을 동정하고 걱정해 줍니까? 결국 한을 먹고 가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이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올바른 인성을 가진 아들과 딸, 즉 내 후신이 사회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간은 남을 위해 살 때 삶의 만족을 얻습니다. 본래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살의 정신이 있는 탓입니다.


본성을 지키며 살아야 행복

무한 경쟁사회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자꾸만 본성에서 멀어져 갑니다. 예의염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낭비입니다.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봅니다. 인간의 본성을 해치는 4가지 악업이 있습니다.

첫째, 본성을 모질게 하는 직업, 즉 생명을 도살하는 직업입니다. 두 번째, 인성을 거칠게 하는 직업 가운데, 남을 못살게 만드는 깡패 같은 일입니다. 세 번째, 인성을 어지럽게 하는 술장사, 마약장사도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인성을 타락시키는 직업입니다. 흔히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수익을 제공한다는 말로 유혹해 여성들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 직업은 절대 안 됩니다.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약이 독해 병은 나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만큼이나 덧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앞장서서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계를 지키면 어떤 공덕이 있느냐 첫째 불보살이 옹호를 해줍니다. 두 번째, 가는 곳마다 착한 사람만 만나집니다. 세 번째, 항상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네 번째, 자원이 구족해집니다. 낭비를 하지 않으니 자연히 재물이 풍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번째, 내생에는 착한 세상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니 불자 여러분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행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안성/글=조용수 기자ㆍ사진=고영배 기자 |
2006-01-26 오전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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