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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법은 있다. 역대 조사어록에 실려 있는 기준에 따른 ‘자기 공부 점검법’이 바로 그 해답이다. 다만 전제조건은 있다. 결코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하고, 자기 공부를 냉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수행에 대한 ‘진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스님들의 어록에 따라 자기 공부의 옳고 그름과 깊고 낮음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자기 공부 점검법’. 간화선 수행을 체계화한 대혜의 <서장>, 나옹 선사의 <공부십절목> 영명의 <종경록> 등을 통해 자기 공부점검 방법을 살펴봤다.
# 철저하게 스스로 묻고 답하라
<서장> <공부십절목> <종경록> 등의 조사어록에서 내놓은 자기 공부 점검의 핵심은 ‘자문자답(自問自答)’. 자신의 수행현실을 정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 없고 간절한 마음으로 선사의 공부 점검법을 거울 보듯 하라는 의미다. 특히 의심이 지어 가는지, 경계에 끄달리고 있는지 등에 대해 낱낱이 점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럼, 말과 사유 그리고 경계를 초월해있는 깨달음의 세계를 어떻게 스스로 점검할 수 있을까? 또 공부가 잘 익어 가는지, 깨달음을 얻었는지 등을 식별할 기준이 있는 것일까? <서장> 등의 조사어록에서는 결국 스스로의 체험으로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 ‘자기점검 기준’ 제시하는 <종경록>
중국 영명(永明:904~975) 선사는 <종경록(宗鏡錄)>에서 “집착에 사로잡혀 ‘깨달음’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없애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스스로 마음의 장애를 일으켜 배움의 길을 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 가지 물음으로 기강을 삼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영명 선사는 ‘언제 어디서든 생각 생각마다 깨어있어, 한 순간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또 ‘일상에서 옷 입고 밥 먹을 때, 일을 맡아 처리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가’ 등의 자기점검 기준도 제시한다.
동사섭 수행을 지도하며 ‘마음관리법’을 강조하는 용타 스님도 “재가불자들은 습관적으로 일상사에 반응하며 살지만, 그 습관을 뛰어넘으면 역경계든 순경계든 ‘이 순간 나의 최선은 무엇인가?’하고 자문하라”며 자기공부 점검법을 제안한다.
# 관념의 옷 벗고, 일상의 언어로 입은 <서장>
<서장>에서는 △유유히 한가롭게 소요 자재할 때에 온갖 마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 등의 6가지 자기공부 점검법을 제시한다.
이 같은 <서장>의 공부 점검법은 재가불자들이 관념의 지뢰에서 빠지기 쉬운 점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상적인 언어로 지침을 던져주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적인 자기점검이 이뤄질 수 있다.
20년 넘게 화두참구를 해온 이상호씨(44ㆍ한강홍수통제소)는 <서장>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 ‘마음과 경계가 모두 한결같은가’란 점검법이 일상에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이정표가 된다고 한다.
특히 이씨는 “자기공부 점검이 마음 안팎으로 일어나는 온갖 경계와 상황들에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게 해, 평상심을 유지하는데 큰 힘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상세한 ‘체크 포인트’ 짚어주는 <공부십절목>
나옹 선사가 공부점검을 10가지로 나눠 밝힌 <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은 재가불자들의 자기 수행점검에 지표가 된다. 수행 단계를 순차적으로 자가 평가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공부십절목>은 단계별로 자신의 수행 정도를 판단할 중요한 잣대가 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이후 벗어났다고 확신이 들면, 곧장 공부를 시작할 것을 종용하면서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라고 되묻게 한다. 철저하게 스스로 묻고 답하게 하는 방식이다.
10년 넘게 ‘일일수행점검법’을 작성해오고 있는 김의식씨(57ㆍ국토연구원 연구원)는 “<공부십절목>은 일상생활에서 닥쳐오는 경계의 문제, 병통에 걸렸을 때 대처하는 방법, 화두를 깊고 면밀하게 드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자상하게 일러주고 있다”며 “바쁜 현대인들에게 화두 참선의 재미를 붙이게 해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는 소지를 사전ㆍ사후로 자기점검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 주의할 점은?
태고 선사는 어록에서 “깨달음의 소식이 있게 되면,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 자신의 살림살이를 다 털어내 보이도록 해야 한다”며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열이면 열 모두 마군이 될 것이니 진심으로 조심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공주 학림사 조실 대원 스님도 같은 지적을 내놓았다.
스님은 “집이든 직장이든 혼자서 공부를 스스로 점검하되, 화두를 타파하기 전에 어떤 알음알이와 경계가 일어나도 ‘모든 것은 아니다’고 부정하면서 다 떨쳐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오직 화두를 반석처럼 움직이지 않게 붙잡겠다는 자기 다짐이 올곧게 서면, 화두에 간절한 의심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지 제대로 자기점검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김철우 기자
▤【도표】
1. <서장>의 자기 공부 점검법
① 유유히 한가로울 때에 온갖 마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가
②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
③ 움직이거나 고요할 때에 헤아려 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가
④ 꿈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일치하는가
⑤ 이(理)와 사(事)가 회통 되는가
⑥ 마음과 경계가 모두 한결같은가
2. <공부십절목>의 자기 공부 점검법
①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
② 이미 소리 등에서 벗어났으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③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④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떠한가
⑤ 자취가 없어지면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⑥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나 깨나 한결같아진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당 한가
⑦ 갑자기 백이십 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인가
⑧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⑨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죽을 때)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⑩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사대는 각각 흩어지니 어디를 향해 가는가
3. <종경록>에서의 자기 공부 점검법
1. 견성해 마치 대낮에 물건을 보듯,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는가
2.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는 등 모든 경우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3.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들의 말을 모두 살펴도 의심스런 곳이 없는가
4. 온갖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진 뒤, 능히 사변을 갖춰 모든 의문을 풀어낼 수 있는가
5. 언제 어디서든 생각 생각마다 깨어 있어, 한 순간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6. 일체의 순경계와 역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알아차려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가
7. 본체가 일어나는 곳을 알아 생사의 뿌리에 어지럽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가
8. 옷 입고 밥 먹을 때, 일을 맡아 처리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가?
9. 부처와 중생이 있다 없다, 칭찬과 비방의 말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10. 어떤 성인의 말에도 의문이 없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