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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목탁소리에 가야산 해인사가 깨어난다.
극락전에도 불이 밝혀졌다. 해인사 동당 수좌 금성도견(錦城道堅) 스님의 오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극락전에는 나처럼 나이 많은 스님들이 살아요. 우리는 더 이상 대중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이 자유롭지요.” 노스님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일러준 스님의 ‘자유로운 생활’은 새벽 3시부터 어김없이 이어진다.
뎅 뎅 뎅! 범종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스님은 방에서 예불을 시작한다. 대중들과 함께 하지 않을 뿐 엄숙하고 경건한 예불로 시작하는 노스님의 하루는 한 치의 허술함도 용납되지 않는 수행자의 시간이다.
새벽 6시. 예불과 정진으로 숙연해진 극락전 뜰에는 아직 어둠이 두터운데 아침 공양을 마친 도견 스님이 포행에 나선다. 바람이 매섭지만 아랑곳없는 스님의 ‘자유로운 수행’은 휘적휘적 걸음 속에 쉼 없이 이어지고 시나브로 날이 밝아온다.
오전 10시 40분, 점심 공양시간이다.
“원래 대중들과 발우공양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노스님네들만 따로 공양을 합니다.”
일일이 설명하는 스님의 자상함이 따뜻하다. 스님의 인자함은 후원에서 공양 찬을 준비해온 보살에게도 이어졌다.
“보살, 오늘은 사진 찍는 날이야. 보살도 같이 찍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를 가리키며 불쑥 내민 스님의 한마디가 천진난만한 동자승을 연상케 한다.
“스님,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있습니까?”
“밥 먹으면 그게 제일 좋지. 찬 가운데는 김치가 제일 좋아. 마냥 먹어도 좋아. 그래서 평생 먹지.”
괜한 질문이었다. 오직 하나를 향한 수행자에게 중생의 분별심은 관심 밖의 일인데 말이다.
도견 스님의 포행은 오후 1시에 다시 시작됐다. 스님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 포행을 통해 건강을 챙기고, 뭇 중생들과 소통한다. 새벽에는 일주문 쪽으로 나가 한 바퀴를 돌아오고, 점심때는 극락전 뒤쪽으로 나 있는 포행 길을 따라 지족암 희랑대 암자 주위를 거쳐 성철스님 사리탑을 돌아온다.
혹 날씨가 좋을 때는 일타 스님이 주석하던 토굴에도 올라가는데 45분가량 걸린다. 육각형으로 만들어진 토굴은 가야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일반인의 출입이 없어 정진하기 안성맞춤이다.
“스님, 포행을 하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마음이 어디 있나 살피지.”
스님과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것을 보기 위해 용을 쓰며 따라나선 길. 스님의 대답에서 서릿발 같은 서늘함이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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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화를 내십니까?”
“진심을 내지 않아야 수행이 되는 것이지. 간혹 가르치기 위해 야단을 치지만 진심이 나서 야단치는 것은 아니지.”
“스님도 발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부처님 제자가 발원이 없을 수가 있나. 해인사에는 ‘속성 정각하여 중생제도하여지이다’하는 좋은 발원문이 법당에 있어요. 광범위한 발원인데 모든 강원스님들이 새벽예불에 교대로 나가 읽지요.”
“포행하면서 못마땅한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까?”
“공부만 하고 다니는데, 그런 여유가 있나?”
“찾아오는 수행자들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물어오는 것에 대답을 해주지.”
스님을 따라 나선지 1시간 여 만에 다시 극락전으로 돌아왔다. 방 입구에는 주장자가 여럿 있다. 방 안에는 스님의 자취가 어린 일상의 물건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주장자는 노스님들이 방문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몇 개를 비치해 둔 것. 스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스님의 작은 눈이 반짝 빛났다.
“물건? 한 물건이 있지. 푸른 것도 검은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닌데…”
스님의 목소리엔 단호한 힘이 실렸다. 또, 얼굴엔 싱그러운 기운까지 감돈다.
“스님, 그 물건 저에게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가져갈 것이 아니지. 자기에게 있는 것인데. 감춘 것도 아닌데 뭐. 동 서 남 북, 또 그 사이사이 상 하 이렇게 시방세계에 다 있는데 물질을 주장하는 사람들하고는 그런 말이 통하기 어렵지.”
스님이 귀한 물건을 내 놓았는데 볼 줄 아는 눈이 없어 보지 못했다.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대답할게 그것 밖에 없어요.”
스님은 다시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다. 스님을 졸졸 따라다닌 하루, 스님을 많이 괴롭혀 드렸다는 생각에 죄송함이 가득하다.
“누구든지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면 만나주고 또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이 스님이 할 일입니다.” 죄송함과 감사함조차도 둥글려 부처님 전에 내려놓으라는 듯 스님은 다시 본래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루 종일 움직인 바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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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견 스님은
도견(道堅) 스님은 1925년 인천시 강화군 화전면 부곡리에서 태어났다. 백련사의 화주보살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백련사에 다녔던 스님은 뭔가에 이끌리듯 발심하여 1944년 오대산 동관암에서 지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45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3년간 교학공부에 몰두했다. 나이 25세에 해인사에 온 후 해인사가 좋아 지금까지 머무르게 됐다는 스님은 순천 송광사, 선산 도리사, 부산 범어사 등 전국 각지 선방에서 수행했다.
스님은 80년대 중반 중앙종회의장과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고,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을 지냈다. 해인사 율원에 주석하면서 <금강경> 1천부를 인쇄해 해인사 율원 교재로도 사용하게 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며, 해인사의 큰어른으로 눈푸른 납자를 이끌기도 했다. 현재 스님은 해인사 동당수좌로 극락전에 주석하고 있다.
#도견 스님의 가르침 - 내 마음의 부처를 만나자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이여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로다
本來非俎白(본래비조백)이로대
隨處現靑黃(수처현청황)이로다.
이것은 중국 송나라때의 야보(冶父) 스님이 <금강경>을 풀이한 <금강경송>의 서문에 해당하는 구절입니다. 마하대법왕이란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언어로도 표현 못하고 문자로도 표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으며, 본래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닌데, 푸른 것 있는데 가면 푸르게 나타나고, 누런 것 있는데 가면 누렇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예전 육조 스님의 법문도 그랬습니다.“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한사람도 대답을 못했지요.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8년 만에 다시 와서 “한 물건도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한 물건’이라고 했지만 ‘한 물건’이란 말도 석연치 못한 말이죠. 이 자리는 입만 떼면 잘못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기 몇 년, 몇 년 하는데 역시 맞지 않습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설법하신 때를 그저 ‘한 때(一時)’라고 했는데 시간을 초월한 시간이기에 ‘한 때’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년, 몇 년이라는 말은 중생들이 다 자기네 소견을 붙인 것입니다. 또, 형상 있는 것은 모두 업보대로 나온 것이니 형상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마음을 찾으라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런데 간혹 법을 물으러 오는 수행자 중에 ‘비결(秘訣)’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결이라면 스님네들이 일러준 예언 같은 것인데 <정감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비결에는 장차 사람의 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말도 있는 모양입니다. 다 죽어도 죽지 않는 도리가 있는데, 비결을 믿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사가 물거품이고 하잘 것 없는 것인데 형상에 집착하는 중생심을 따르니 비결을 믿고 잘못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부처를 찾으면 불교를 다 안 것이니 참선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부모 형제 다 버리고 견성성불 하겠다고 출가했으니 땅에 눕지 않은 채 일주일 용맹정진도 하고 3년결사도 하는 것입니다. 나도 스물다섯 살에 오대산에서 해인사로 와 3년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효봉 스님도 함께 결사에 들었는데 좀처럼 끄덕이지 않아 ‘절구통수좌’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 3년 결사는 한국전쟁으로 끝까지 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범어사에 갔는데 동산 스님이 입적하시는 통에 또 이루질 못했습니다. 결국 송광사에서 3년결사를 했습니다. 3년간 이불과 베개 없이 하루 3시간만 자고 정진했습니다. 어렵지만 부모형제 버리고 견성성불하겠다고 출가했으니 부처님 법을 알아야겠기에 계속해서 3년결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3년결사를 하는 동안 부처님 법문이 저절로 알아지는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자동적으로 그 뜻이 자꾸 알아집니다.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무슨 물건인고?’라는 법문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물건도 맞지 않지만 당처를 말하기 위해 한 물건이라 한 것이니 알고 모르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물건이 있는데 곳에 따라 푸르고 흽니다. 모든 것은 보는 대로 물이 들고 하는 것입니다. 잘 공부해 마음을 깨치면 도인이 되고 중생의 나쁜 경계를 자꾸 따라가면 나쁜 업을 많이 짓게 되고 사람구실을 못하는 그런 도리에 듭니다.
그래서 보통 수행자에게는 율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계율 말입니다. 해인사에는 율원이 따로 있는데 조선조 500년 동안 없었던 것을 성철 스님이 율을 잘 알아 말씀하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계율은 첫째, 절에 들어오면 사미 십계가 있고, 비구 250계가 있고, 비구니 348계가 있습니다.
또 마실(마을)에는 보살계와 오계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모두 율문에 나오는 계율입니다. 수행자가 생활에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일반 재가자에게는 <범망경> 보살계가 있는데 10중대계(10가지 무거운 계)만 지켜도 부처님 말씀을 다 지키는 것이 됩니다. 48경계(48가지 가벼운 계)는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 낱낱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을 먹지 말라는 계가 있고 술그릇을 들어 한 잔을 권한 행위로 500생을 손 없는 과보를 받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비구계에도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가 있지만 환자인 경우 스스로 죽은 고기, 죽이는 소리를 안 들은 고기, 세 사람의 손을 거친 고기는 부득이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범망경> 보살계에는 세칙도 많고, 물건을 훔치는 것, 훔치라고 시킨 것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집안이나 사회에서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움도 많은 모양입니다.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법은 없는데, 간혹 TV 프로그램을 보면 가족이 서로를 존중할때 가정이 평화로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해도 무조건적으로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씩 양보도 해야 해요. 요즘 사람들은 부처님 법문을 해주면 재미없다 하고 우스갯소리 따위를 들려줘야 좋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마음을 이르는 부처님 법문이 참법문인데 말입니다.
이런 부처님 법문이 모두 <금강경>에 있어요. 그래서 예전에 금강경을 한권으로 엮어 율원과 선원 스님들에게 모두 나눠준 적이 있지요.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세상의 진리가 다 있지요. 선방스님들은 걸망에 이 책 한권만 넣고 다니면 의심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쉽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모쪼록 내마음의 부처를 찾으면 불교를 다 안 것이니 열심히 정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