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많은 불자들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찬탄하고 공양하는 일을 합니다. 또 법회에서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발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참회(懺悔) 또한 참다운 불자로 거듭나기 위해 행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참(懺)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며, 회(悔)는 이 다음에 오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그 죄를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참회를 이야기 할 때 업장을 참회한다고도 하는데, 이 업장 참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남자여,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으로 내려오면서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악한 업이 한량없고 가이없어 만약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리니, 내 이제 청정한 삼업으로 멀리 법계 극미진수세계 일체 불보살 전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되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계행의 일체 공덕에 머물러 있으오리다’하는 것이니라.”
업은 인간의 행위를 말합니다. 행위가 있다는 것은 행위를 하는 본체가 있다는 말입니다. 참된 인간의 본성, 즉 다시 말해서 본래 자리인 진리에서 벗어난 착각된 자아를 본체로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본래의 밝은 자성을 잊고 자성을 어긴 행위는 그 모두가 업으로서 인간 본분과 어긋납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무한하고 일체와 더불어 조화되고 창조와 환희가 있는 것인데, 이러한 인간 본성을 어기고 착각을 일으켜서 그릇된 자아를 설정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회는 참다운 수행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참회하였으면 마땅히 일체 죄업이 소멸될 것을 믿고 스스로 청정광명심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바르게 행하고 쉼 없이 수행한다면 어두운 업장은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는 더욱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불법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불교를 올바로 신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불교를 바르게 생활속에서 실천하고, 궁극에는 해탈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은 걸림이 없고 멈춤이 없으며, 부처님과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불보살님이 세우신 ‘고통 받는 중생을 반드시 건지겠다’는 행원력에 의지하면서 수행해야 합니다.
수행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참선 수행은 마음을 닦는 공부로 부처님 당시부터 매우 중요시 하는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불자들에게 참선 수행을 권합니다. 참선은 마음속의 온갖 번뇌와 망상을 깨끗이 하고 일념에 머물기 위한 수행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삼매(三昧)라고 하는데, 마음을 한 자리에 머물게 하여 움직이지 않고 또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을 여의는 것을 뜻합니다. 삼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숙면 상태가 아닙니다. 지혜 광명으로부터 다시 이 세상 본래의 모습을 비추어내는 적극적인 활동이 그 가운데에서 펼쳐집니다. 이전의 상식적 견해를 넘어 깨침의 입장에서 세계를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육조 혜능스님은 “지혜로 관조하고 일체의 법에서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것”이 견성(見性)의 도라고 하였습니다. 삼매에 들기 전에는 불법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모두 기복 불교입니다. 수행하는 불교를 믿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참선 수행 하십시오.
최근 선(禪)에 대한 관심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진리의 영원성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고대의 종교사상에 귀의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식혀주는 선의 위대성은, 그러나 무문별한 선 관련서와 단전호흡법 등의 범람으로 올바른 부처님의 깨달음에 다가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가끔 진정한 선 수행은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불자들을 대할 때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참선 하는 데에는 여러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옛날에 조주스님은 무(無)자를 생각 생각에 이어서 걷고, 서고, 앉고, 누울 때 눈앞에 마주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금강 같이 굳은 뜻을 세워 한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간혹 광채를 보게 되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해 살피고 다시 관찰하다가 혼침이나 산란이 생기면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천번 만번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삼매의 경지에 들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는 마치 흐르는 물 같이 마음과 경계가 고요해서 쾌락하고도 편안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소질을 충분히 움직여서 치우침도 바름도 없게 하고, 다시 수행 정진하여 깨달음의 묘한 법을 증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에 조금 익었다고 자만하거나, 잘 되지 않는다고 자꾸 책을 찾아보고 그것에 의지하려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중단하고 하다보니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많은 이들이 참선을 어렵게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중단하지 마십시오. 쉽게 삼매를 체험하겠다는 욕심도 버리십시오. 마음이 흔들릴 때 마다 말없이 참회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고 그 본래 자리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천번, 만번이라도 해 나가야 합니다. 하다보면 저절로 길이 열립니다. 비록 이번 생에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불자가 걸어가야 할 수행의 길입니다.
정리=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
사진=박재완 기자 jwpark@buddhapia.com
기자가 본 범룡스님
금강·구월·지리·묘향산서 수행한 선승
범룡 스님은 올해 세수 89세이시다. 1914년에 평안북도 맹산에서 태어나서, 35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해 만허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해방되기 몇 해 전 오대산 상원사를 시작으로 수덕사, 범어사, 해인사 등 전국 제방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했다. 예전에는 동쪽의 금강산, 서쪽의 구월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묘향산 등 네 곳의 산에서 방부를 튼 수좌만 인정을 했다는데, 스님은 파계사 고송 스님과 더불어 네 곳 모두에서 참선 수행을 한, 몇 안되는 선승이시다.
“법문 안한지 오래 됐어요. 외출도 않고 거의 매일 비로암에서 지냅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나이 드니까 그저 기운이 조금 조금 줄어들 뿐이예요. 매일 밤 10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3시 쯤 일어나요. 실컷 자는 겁니다. 한창 수행 정진하던 젊은 시절에는 3시간도 못 잤어요. 3시간 자면 딱 좋은데, 옛날 스님들은 2시간만 자라고 했거든요. 2시간 자고 눈을 떠 보면 잤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렇게 수행을 했습니다.”
범룡 스님은 1977년부터 비로암에 주석하고 계신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바로 앞의 논밭에서 일하시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백장선사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셨다. 예전처럼 직접 일 하지는 못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요즘도 매일 참선하고, 경전을 읽으며 수행 정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젊어서 배운 것은 평생 머릿속에서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50만 넘으면 모래에 글 쓰는 것처럼, 처음엔 잘 되다가 바람 불면 그 자취가 싹 없어지듯이 한다니까요. 또 70이 넘으면 물에 글을 쓰는 것과 같아서 쓰는 동시에 지워져 버린다는 비유가 있는데,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그게 참말입니다.” 범룡 스님은 요즘 탄허스님이 강의하신 내용을 CD에 수록한 ‘동양 사상’ 시리즈를 듣고, 불자들이 갖다 주는 책도 읽는다. 그런데 공부하는 일이 예전과 같지 않아 듣고 볼 때는 다 아는 것 같은데 책을 놓고 나면 뭘 배웠는지도 잘 모르겠단다. CD플레이어 조작도 쉽지가 않아서 신도들이 올 때면 배워서 사용하다가 또 하루 이틀 지나면 조작법을 잊어버리곤 한단다.
범룡 스님은 한암 스님에게서 받은 ‘무(無)’자 화두를 평생 참구하며 수행자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깨달음에 대한 스님의 구도열은 대단하여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을 걸어서 찾아다녔다.
범룡 스님의 방에는 독특하게도 세계지도, 대한민국 전도가 나란히 걸려 있다. 왜 그걸 붙여놓으셨냐고 여쭈었다.
“예전에 인도도 가보고, 중국 돈황, 캐나다도 가보았어요. 그때 샀던 건데, 그냥 붙여 놨지요. 사실 내 어린시절 꿈이 세계 일주 였거든.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가끔 바라보노라면 다 가본 곳 같아요. 아이구, 오늘 정말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했네요. 그게 어느 스님 말인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하고 생각하면 안한 것만 못 하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