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다. 세계는 자본의 우위에 따라 구분되며 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나라마다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ㆍ갈등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2005년 한국 또한 남과 북 뿐만 아니라 동과 서로 나뉘어져 있고, 다시 지연과 학연 혈연으로 구분 짓는다. 화합이 필요한 때다.
서울 한복판 종로 5가에 있는 보명선원을 찾았다. 저잣거리 한 가운데서 ‘통화(統和)불교’를 주창하는 각성(覺性)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평소 부산 화엄사에서 주석하는 스님은 여기에서 격주로 퇴직 교수나 장성 등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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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란 ‘통일’과 ‘화합’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통화불교를 주창하는 이유 중 하나도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화합시키고 통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통일하면 범부가 성인이 되고 보살이 되며 부처가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거품같이 일어나고 혼란이 오며 윤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님은 우리 모두 일불제자이고 불법 또한 하나지만 나라마다 모양새가 다르고 서로 다른 불교를 믿는 현실을 지적했다. 한국 사람은 한국불교를, 중국 사람은 중국불교를, 일본 사람은 일본불교를 믿기 때문이다. 토착화 때문에 몸만 바꾼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바꾼 몸을 믿는다. 이제 몸 안에 있는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름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립하고 갈등했지만 이로 인해 새로운 결과물이 생성된 것은 것은 아닐까. 스님에게 통화의 개념으로 본 역사관에 대해 질문했다.
스님은 사람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사람은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지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되풀이한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우주의 시공간이 춘하추동(春夏秋冬)과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궤도 속에 있는 것처럼 역사 또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스님은 지난 역사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웠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전 역사를 소홀하게 생각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단지 그 시대에 맞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었던 것이다. 스님은 이를 ‘여름이니까 모시옷이 나오는 것이고 겨울이니까 솜옷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스님은 통화를 ‘화쟁(和諍)’과 비교하며 설명하기도 했다.
“원효 스님은 화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화쟁은 중론(中論)과 달리 여러 가지 쟁론 속에서 높은 가치를 이끌어내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21세기에 와서는 화쟁보다 통화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투는 것을 하나로 통일시키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승가(僧家)의 원래 의미도 화합이라고 부연설명하며 모든 중생들이 행복과 평화를 누리도록 하는 것, 그것이 도를 닦는 목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불교계 내부를 보더라도 종단과 종단끼리 불협화음을 표출하고 있고, 종단 내에서도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특히 입으로는 불자라고 말하지만 우리들 마음 또한 분열돼 있다. 스님에게 ‘너무 이상적인 말씀이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부처님도 이 세계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했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 거리가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이상이라고 한다면 현실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보면 오탁악세가 극락이요 천국일 수 있습니다. 생각에 따라 관념을 바꾸면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뀝니다. 어떻게 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스님은 비관도 낙관도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자재(觀自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관세음보살처럼 걸림 없이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눈으로만 보는 것 아니라 말해 본다, 맛을 본다, 맡아 본다, 들어 본다, 생각해 본다 처럼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공부도 관자재보살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미륵부처님이 오는 시대는 오물이 저절로 정화된다고 하지만 그 이전까지 현실과 이상은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극락세계를 조금이라도 빨리 오게 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악한 마음을 버려야 하고, 두 번째 착한 일을 행해야 하며, 세 번째 착한 일을 행하되 상을 내지 않고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며 선악과라는 열매가 있는 것으로 봤지만, 선과도 따먹지 말고 악과도 따먹지 말하는 뜻입니다. 즉 악을 버리고 선을 하되 선을 한다는 상(相) 없이 하다보면 자연히 정화가 되고 불국토가 되는 것입니다.”
스님은 경전을 소홀하게 여기는 한국불교 현실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스님은 “한국불교는 탄허 스님 말씀처럼 무식불교”라며 거침없이 말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잘못 받아들여서 그래요. 대학원 나오고 박사 과정 밟은 사람이라도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요즘은 불교교양대학을 비롯해 불교계 신문, 잡지 등이 발달해 있어 스님들도 공부하지 않으면 뒤쳐집니다.”
어릴 때에는 작은 옷을 입어야 하지만 커서도 작은 옷을 입을 수는 없다. 성장하면 작은 옷은 버리고 큰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죽어봐야 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죽기 전에 알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스님은 평생을 강당에 서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해왔다. 서돈각 박사를 비롯해 불교계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구도의 길을 걸었다. 그들에게 스님은 ‘초지일관(初志一貫)’을 강조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밝아지게 됩니다. 촌놈이 서울에 오면 청계천이 어딘지 종로가 어딘지 모르지만 오래 살다보면 구석구석 골목길까지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래 공부 하다보면 결국 터득하게 되듯이 초지일관이 제일 중요합니다.”
스님은 또 불교공부는 항상 마음을 비우고(虛) 밝게(明)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염불할 때나 참선할 때 기도할 때도 생각을 거두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마음이 원래 비고 밝은 것이기 때문이다.
40여 년간 불법에 진력한 스님에게 어떻게 정진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참선이나 진언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제일 쉬운 것은 염불입니다. 용수보살은 염불로써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며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 ‘이행품(易行品)’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즉 어려운 정진방법을 선택하는 난행도(難行道)와 쉬운 방법인 이행도(易行道)로 구분했습니다. 용수보살은 그 중에서 이행도인 염불로서 현세에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배(염불)를 타고 가는 것이 빠르지 나무를 심고 배를 만든 다음 타고 가면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힘듭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보살의 사명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개인의 성불이고 다른 하나는 불국토 장엄이다. 성불이 개인의 인격 완성이라고 하면 불국토 장엄은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다.
분열의 시대, 보살의 사명을 지니고 가없이 정진한다면 개인의 성불 뿐 아니라 불국토 장엄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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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전남 장성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다. 1954년 〈5천년 조선역사〉란 책에서 율곡 이이 선생이 절에 들어가 공부했다는 대목을 읽고 백양사를 찾는다.
55년 18세 나이로 해인사 백련암 도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이후 당시 3대 강백이라는 관응·탄허·운허 스님 밑에서 배움을 길을 걷기도 했다. 탄허 스님에게는, ‘제자에게 월급을 주고 원고 교정을 맡기기는 처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대강백 각성 스님이 꼽는 최고 경전은 무엇일까. 스님은 〈능엄경〉을 최고 경전으로 꼽았다.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논리적 과학적 철학적으로 설명을 잘해 놓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능엄경〉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육조단경〉이나 〈유마경〉을 권하기도 했다.
스님은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의 “당대에 법의 이익을 끼치려면 설법을 해야 하고, 후대에 법의 이익을 끼치려면 설법한 것을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지금껏 강의한 것을 책으로 보급하고 싶다는 원력을 보였다. 스님은 현재 집필중인 〈통화총서〉 300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성 스님은 부산 화엄사에 전강원을 개설해 후학양성을 하고 있으며, 탄허불교문화재단 부설 삼일선원 원장, 통화불교전강원 원장, 화엄학연구원 원장, 등을 맡고 있다.
정리=남동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