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제 16세 종정 혜초(慧草) 스님이 태고총림 순천 선암사 방장으로 추대된 11월 30일. 깊어가는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조계산에는 아직도 붉으스레한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단풍도 마지막 남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혜초 스님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조계산 능선을 바라보며 “영산작법(나비춤, 바라무, 법고무, 타주무 등 여러 가지 의식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의 아름다운 모습이로고”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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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방장추대식후 종정 주석처인 선암사 무우전(無愚殿)에서 혜초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청해 들었다.
선지서천위골수(禪旨西天爲骨髓)
교담동토작생황(敎談東土作笙簧)
최사현정귀황도( 邪顯正歸黃道)
오엽일화계만방(五葉一花啓萬邦)
선(禪)이 가리키는 바는 서천(西天)에서 골수(불법의 진리)를 이루었습니다. 선은 곧 부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동쪽 나라의 생황(피리)이 되어 중생에게 진리를 전하는 도구이었습니다.
삿됨을 부수고 바름을 세워 황금색 몸을 가지고 계신 부처님께 돌아가면 다섯 잎사귀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 만방에 만발할 것입니다.
인도 남천축국의 세 번째 왕자였던 달마선사가 선을 전하기 위해 동쪽으로 건너왔습니다. 그후 6조 혜능에 이르러 선이 활짝 피었습니다.
선종은 조동종, 임제종, 운문종, 위앙종, 법안종등 다섯 종파로 나뉘어 발전하였습니다. 참선하는 이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다섯 종파의 가르침 속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섯가지 잎사귀는 다섯종파를 말하는 것으로 그 안에서 선의 꽃이 피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선문 오종을 나누고, 정맥이니 수승하니 따지지만 본질적인 교의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따지는 것은 각 종파의 역사와 본령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논증하고, 가풍만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
선암사 부도전에 가면 ‘방출조계 일파청(放出曹溪 一派淸) 벽개남악 천봉수(劈開南岳 千峰秀)’라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선암사는 도의 국사를 비롯해 태고보우 국사, 그리고 육조혜능(六祖 慧能) 스님의 제자인 남악회양과 법을 계승한 마조도일까지 선의 양대선맥이 둘다 전해진 곳입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물줄기를 막아놓았다가 한번에 터버리는 것처럼 힘차게 조계선풍의 명맥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렇듯 선암사가 한국불교의 독특한 선풍을 간직한 사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육조 혜능 스님과의 인연이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만세루에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현판을 보면 선암사 가풍이 확연해집니다. 육조(六祖) 혜능 대사가 살던 곳이라는 뜻에서 육조고사라 했다 합니다. 글씨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인 김익겸이 썼다고 전해집니다.
‘말이 없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혜능 스님의 수행가풍을 따르고자 선암사는 기둥에 주련(柱聯)을 달지 않습니다.
혜능 스님이 어떤 분입니까. 스님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 시장에 팔아서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奉養)하고 지낸 일자무식(一字無識)의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혜능 스님은 나무를 팔고 집으로 가다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ㆍ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라는 구절을 듣고 크게 발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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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구절(句節)은 풀어서 설명하면 ‘아무조건 없이 중생을 구제해주고 보살행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모든 대상이나 나의 존재 어디에도 내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하면 새로운 실천행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선의 진정한 모습은 결국 중생과 하나가 되어 그 아픔과 함께하는 출세간적 보살행의 세계를 지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을 생활속에서 실천 할 때 깨달음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들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어렵고 힘든 사람은 갈수록 늘어만 갑니다.
이런때 일수록 불교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돕는 실천행과 더불어 의식의 세계를 충만하게 해주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내 것, 네 것이라는 분별을 여의고 사람들이 잡아야 할 삶의 방향이나 영원히 함께 공존하는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것도 없고 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함께 생존하는 삶을 살아갈려면 서로 나눠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대도사인 부처님은 이땅에 오신것도 아니요 안오신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욕계(欲界)의 중생들 앞에 화현한 것은 생사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생사가 둘이 아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않는 사바세계 불자들을 제도하고자 이곳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천상(天上)은 물론, 지옥계(地獄界)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구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삼계를 나누어 차별하여 보시지 않는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한국불교는 이제 대승행을 해야합니다. 즉 사회에 환원하는 불교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모든 중생이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나와 남이 다 함께 부처를 이룰지어다)’를 지향해야 합니다.
나와 남이 함께 부처의 길에 이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자리 그 자리가 곧 불국토인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誰知王舍一輪月(수지왕사일륜월)이요
萬古光明長不滅(만고광명장불멸)이로다.
부처님이 계시던 왕사성의 둥그런 달이
만고에 꺼지지 않는 광명인 것을 알겠는가
부처님은 왕사성에서 성도해 모든 중생들에게 진리의 빛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그 빛은 부처님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부대중들이 이 진리의 빛을 갖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합니다. 수행을 근본으로 삼아 열심히 정진하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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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으로 추대된 혜초 스님은 평생을 철저한 지계와 수행, 그리고 효행으로 일관해와 태고종 스님들의 사표로 존경받고 있다.
조계종 비구 대처 분규 당시, 은사인 前 종정 덕암 스님을 따라 비구의 몸으로 태고종에 남은 혜초 스님은 평생 돈을 만지지 않고, 대중들과 발우공양을 하는 등 흐트러지지 않는 수행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벽 2시면 일어나는 스님은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고 목욕을 한다음 금강경, 원각경 보안장, 법화경 약찬게, 화엄경 약찬게를 차례로 독송한 후에 도량석 목탁이 울려퍼지면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진 칠전을 시작으로 나한전, 원통전 불조전, 조사전, 지장전을 모두 들러 참배한 후 대웅전에서 대중들과 아침예불을 올린다.
낮에는 참선과 독서, 포행등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스님은 지난해 6월 종정에 추대된후 9월부터 선암사에 주석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여 대중들과 함께 적묵당에서 아침 발우공양을 하고 있다.
1932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난 혜초 스님은 14세되던 45년 진양 청곡사에서 양택(良澤) 화상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53년 해인사에서 인곡(仁谷) 화상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불교전문강원과 해인대학(현 경남대) 종교학과, 일본 화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60년 현 태고종 종정인 덕암 스님을 법사로 건당, 태고종 중앙종회 의원, 총무원 사회부장, 포교원장 등을 거쳐 총무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