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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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제대로 알아야 선시 접근 실마리 생겨"
【기획 인터뷰】이원섭 시인에게 듣는 ‘선시(禪詩)’로 마음공부하기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때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거나, 곳곳에 ‘분별의 지뢰’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선(禪)은 말길도 생각의 길도 끊어진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을 살림살이로 한다.

그럼,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선시(禪詩)는 어떨까? 홀연히 깨닫는 순간에 튀어나오는 찰나의 깨침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말하되 말하지 않고, 쓰되 쓰여 지지 않는 선시는 깨달음의 속살을 내보인다. 그래서 선시는 수행자의 살림살이를 비춰내는 거울로 불린다.

"선시 읽는 안목을 키우는 제일 덕목은 무아 체득"이라며 선사들의 사고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원섭 시인. 사진=김철우 기자.
12월 5일, 선시 연구의 대가 이원섭 원로시인(83)을 찾았다. 5년 넘게 매월 둘째 주 월요일에 숙명여고 교사재직 시절 가르쳤던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선시공부모임 ‘민들레’를 이끌고 있는 이 시인에게 ‘선시로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깨달음의 내밀한 세계를 상징과 함축의 언어로 표현하는 선시. 과연 선시로 마음공부가 가능할까?

“가능해요. 마치 선어록으로 마음공부하는 이치와 같아요. 하지만 위험부담이 따르지요. 선시를 방편이나 수단으로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수행의 장애가 되기도 하니까요. 선은 불립문자에 서 있어요. 언어를 초월한 진리의 세계를 체득하려는 것이 선의 취지지요. 옛날 선사들은 제자들이 선의 이치를 물었을 때, ‘뜰 앞의 잣나무’ 등이라 답했어요. 사실 이조차도 선의 본지에서 볼 때, 이미 언어로 표현됐기에 빗나가 있는 것인데….”

이 시인은 말끝을 흐렸다. 대답을 재촉했다.
“아무리 적절하게 선을 시로 표현할지라도, 그것은 정답이 아니에요. ‘뜰 앞의 잣나무’라 답한 것에 선사의 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죠. 그 세계를 언어로써 ‘깨달음의 힌트’를 준 것에 불과한 거죠. ‘뜰 앞의 잣나무’라 말한 선사의 심경을 파악해야지, 언어 표현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아무 것도 안 돼요.”
이 시인은 ‘선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것부터 강조했다. 황벽 선사가 중국 당대 재상이었던 배휴 거사의 선시집을 받자마자, 보지도 않은 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일화를 들며, 그 까닭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마음공부에 있어 선시가 왜 중요할까?
“깨달음에 가까워지려는 인연을 지을 수 있지요.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도 있습니다. 선은 지극하고 당연한 말이라도 모두 배격하죠.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의 말조차도요. 그러니 부처님 말씀의 이면에 깔려있는 침묵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선시를 통해 자기 자신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갔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순간, 궁금증 하나가 툭 올라왔다. ‘선시를 읽는 것도 화두 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중국 위산의 제자인 영운 선사가 쓴 선시에서 ‘어느 날 복숭화 꽃을 보고 깨달았다’는 구절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선시에서는 ‘복숭화 꽃을 한번 본 뒤로 다시는 위심하지 않는다’란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또 ‘그 뒤에 어떤 경지가 들어있는지’는 무엇일까요? 이 구절의 뜻을 알아차리는 것은 화두를 깨치는 것처럼 어려워요. 선시에는 우리가 보통 시에서처럼 지성이나 감수성으로 명확하게 찾기 어려운 무엇이 들어있지요. 선시 공부하는 것이나 화두 드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선시공부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선시에서는 모든 분별을 넘어선 입장에서 바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 한번에 부처님의 세계로 뛰어 들어간다는 돈오(頓悟)의 가르침이 현저히 나타나 있지요. 그래서 선시는 일종의 화두처럼 되지요. 영운 선사의 선시에서 ‘복숭화꽃이란 무엇인가’ ‘한 번 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지고 들어갈 때, 선시는 화두가 된 거죠.”

그럼, 선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안목은?
“선사들이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려면 스스로 선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가는 방법 밖에 없어요. 사실 선사들이 쓰는 언어는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언어하고는 달라요. 마치 처음에 화두를 대할 때 누구든지 놀라는 것처럼 말이에요. 화두가 수행자의 지성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스스로 깨달으라고 경책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렇게 화두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비로소 선시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길 수 있게 되죠. 그래서 화두를 떠나 선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논리로 따져들면서 읽지 않아야 선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가는 겁니다.”

‘선적인 사고방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이란 말은 꽉 막혀 있는 상태를 의미하죠. 그럼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에요. 스스로 분별을 일으켜 은산철벽이 돼있는 거죠. ‘나’란 존재를 깨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의미죠. 선시 읽는 안목을 키우는 제일 덕목은 무아를 체득해야 해요. 선사들의 사고방식이 이래요. 처음부터 언어를 포기해야 하는 사고방식인 거죠.”

이 시인은 “선시의 참뜻을 헤아리려면 한문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부단히 선시를 한문으로 읽어야 그래야 말뜻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선종사에 대한 이해해야만 선시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인이 이와 함께 남의 집 담장 안으로 넘겨짚듯이 선시를 읽으면 안 된다고 했다. 스스로 찾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시를 해석으로 따져 지적으로 해부하면, 살아 있는 사람을 잡아서 생체 해부해 죽이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인은 재가자들이 마음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시 하나를 소개해줬다. 중국 임제종 오조 법연 대사의 스승인 백운(白雲) 수단(守端)의 선시를 예로 들었다.

‘일권권도황학루(一拳拳倒黃鶴樓黃鶴樓) 일척척번앵무주(一척척飜鸚鵡洲)’
한 주먹으로 황학루를 때려 부수고, 한 발길질로 앵무주를 걷어차 뒤집는다.

“황하루는 양자강이 흐르는 중국 무창에 유명한 유곽이고, 앵무주는 그 유곽이 있는 모래섬이에요.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들이죠. 그런데 ‘한 주먹으로 황학루를 때려 부수고, 한 발길질로 앵무주를 걷어차 뒤집어엎는다’는 것은 화두와 관련돼요. 황벽 선사에게 30방 얻어맞고, 대우 스님에게 깨달음을 얻은 임제 선사와 관련된 선시죠. 이 선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선기를 표현했어요.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선시죠. 기성의 가치세계를 전부 때려 부수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세속의 가치는 물론 불교의 가치체계를 전부 부순다는 거죠. 재가자들이 일상에 허덕거릴 때마다 수단 선사의 호탕한 선기를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하는 겁니다.”


▥ 이원섭 시인은?

192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혜화전문학교(동국대 전신) 불교학과를 나온 후 숙명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48년 <예술조선> 제2호에 ‘기산부(箕山賻)’가, <문예> 제2호에 시 3편이 서정주 시인에게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전국불교신도회 부회장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현대시인협회장을 지냈다. 500여 편 선시를 간결하고도 정교한 언어로 풀어낸 <깨침의 미학>를 발간했다.
글ㆍ사진=김철우 기자 |
2005-12-14 오후 4:58:00
 
한마디
맘 속의 모든 집착을 함 버려 보시것습니까요?????
(2005-12-13 오후 1:31:48)
56
어떻게하면 잘 걷게 됩니까?
(2005-12-08 오후 3:25:51)
57
형형한 눈빛이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선시구는 참선자들에게 광오함을 줄까 걱정되는군요!!!!!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지 않을까요?????????????????????????
(2005-12-07 오전 12:44:58)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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