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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불자들은 경전을 읽을 때 문장이 가지런히 정리되지 않았거나 용어가 다소 적절치 않아도 한문을 번역한 탓이라 여기고 불편해 하지 않는다. ‘과연 이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바른 경전읽기의 자세인가’ 라는 의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전은 그 시대의 언어로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단이지 ‘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현춘 교수(경북대 심리학과·58)가 지난 10여 년 동안 붙잡고 씨름해 온 숙제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의 언어로 쉽게 경전을 읽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최근 숙제의 결과를 내놓았다. ‘한글독송용 불교경전 시리즈’. <지장경><관음경><불유교경><아미타경><예불문천수경><일반법회><매일법회><금강경><백팔대참회문><보현행원품> 등 불교의 정수가 담긴 10권의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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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와 무비 스님과 화화회 회원들. 이들의 ‘삼각관계’는 우리 시대의 언어질서에 맞는 경전 시리즈를 펴내는데 환상적인 콤비다.
조 교수는 경전을 번역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을 먼저 세웠다. 경전이 설해지는 부처님 당시의 상황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첫 번째 원칙. 예를 들면, 부처님이나 제자들이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정황을 재현한 것이다. <금강경>의 장로 수보리는 부처님보다 40년 연장자다. 과연 부처님은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을까?
또 하나의 원칙은 ‘새천년육하원칙’으로 육성취(경전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원칙, 6하 원칙과 유사)를 구성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교수는 “누가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시는 것을 누가 보고 들었는가의 순서가 지켜져야 하고 이 육성취는 한 문장 안에 있어야 오해나 혼란이 없다”며 <금강경>의 첫 문장을 예로 들었다. ‘부처님께서 1250명이나 되는 많은 스님들과 함께 어느 때에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다음과 같이 하시는 것을 제가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라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우리말이 갖는 리듬을 최대한 살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한 것이다. 경전의 흐름을 장과 절로 구분한 것이나 결집자의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은 흐린 글씨로 인쇄하여 이해를 도운 점, 간단한 설명은 각주로 긴 설명은 용어해설로 따로 정리한 점 등도 돋보이는 작업의 원칙들이다.
조현춘 교수는 10권의 한글 독송 경전들을 보이며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명호만을 염하기보다는 <관음경>이나 <아미타경> 독송을 통해 불교를 먼저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경전 독송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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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동양정신을 좇았지만 나이 50을 앞두고도 불교를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조 교수는 1993년부터 <금강경>을 화두삼아 잡고 늘어졌다. 3~4년 후 자신이 정리한 <금강경> 해석본을 가지고 무비 스님을 찾았다. 그러나 무비 스님은 대뜸 그를 ‘미친놈’ 취급했다. 그 당시 무비 스님은 법거량을 해보자며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때였다.
조 교수 또한 막무가내로 해석본을 놓고 갔다. 3주후 다시 스님을 찾았을 때 스님의 태도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스님은 원고를 책으로 펴내야 한다고 그를 독려했다. 그로부터 무비스님은 조 교수에게 가장 친절하고 든든한 스승이요 감수자가 됐다. 1998년 <금강경>을 출판하며 ‘한글독송용 경전 시리즈’로 이어졌다. “저는 그저 정리하고 스님께 점검받는 심부름만 했을 뿐, 화화회원들이 모두 같이 의논해 만들었습니다.”
조현춘 교수는 한글독송용 경전 시리즈를 화화회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화화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진다. 안형관, 강수균 교수 등 9명의 주 회원과 그 밖의 임시 회원들로 진행되는 화화회는 공의와 점검을 통해 이미 나온 한글 독송용 경전들을 놓고 비교 검토하는 데도 한 몫을 했다. 학자들 특유의 치밀함은 글자 한 자, 오자 한 자 넘길 수 없었다. 경전 한 줄을 놓고도 몇 시간씩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반야심경>의 경우 몇 달의 고민을 거쳐 발표하고, 신랄한 비판과 반대의견에 봉착해 한바탕 토론을 하는 등 연구·발표·점검이 15번이나 반복됐다.
이렇게 화화모임에서 일차 점검이 끝나면 이제는 무비 스님과의 담판이 남았다. 스님과의 담판도 치열했다. 꼬박 3시간 40분을 자세 한 번 흐트리지 않고 논의한 적도 있다.
5년 전 등산을 하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조 교수. 그 후유증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지 오래다. “이미 생사의 문턱에 갔다 왔기에 어떤 욕심도 없다”는 조 교수는 사는 날까지 부처님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경전 번역의 원을 세웠다. 조현춘 교수는 오늘도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 ‘허허허’ 웃음을 지으며, 불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경전을 넘기고 독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