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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심이 깊지 않았던 내게, 1시간 넘게 걸리는 대구영남불교대학을 수시로 가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내가 살고 있는 경산에 분원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1기생으로 입학을 했다. 공부는 기초교리부터 다시 시작했다. 강의도 한 번 들은 내용이라 이해가 쉬었고, 스님께서도 재미있게 설명해줘 조금씩 불교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사시예불도 자주 동참하게 됐다.
영남불교대학 관음사는 1년 365일, 수백 명의 신도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08배와 함께 사시예불을 올린다. 보통 초하루와 재일 정도 절에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불교대학에 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매일 절에 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수행은 하지 않고 1년에 몇 번 절을 찾고선 불자라 한다”고 나무라는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했고, 이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시예불에 참석했다.
이후, 수행체험은 절 수행에서 얻기 시작했다. 퇴행성관절염에도 3천배를 거뜬히 회향하는 예순의 노보살님의 정진력이 경책이 됐다. “절을 많이 하면, 다리를 못 쓰게 될 줄 모른다”는 자식들의 걱정에도 3천배를 회향하는 노보살님의 수행열정은 이내 도량의 도반들에게 용기와 힘이 됐고, 이내 3천배는 경산도량의 전통이 됐다.
사실 108배 정도를 하던 나는 3천배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무릎이 아파 모임을 가면 앉아 있다 일어서서 나올 때는 맨 나중에 나와야 했고, 그것도 ‘아야야~’ 하는 신음과 함께 일어나야 했기에, 3천배는 아예 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봤다. 곧장 3천배를 했다. 하면서도 아픈 무릎을 많이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무릎은 멀쩡했고, 오히려 안 아픈 다리가 아파왔다. 물론 안 쓰던 근육을 쓰다보니 1주일동안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지만, 이내 다리의 통증은 사라졌다. 마냥 신기했다.
그렇게 기도의 묘미를 조금씩 느껴가면서 제대로 기도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스님께 말씀드리니 ‘신묘장구대다라니’ 1자 1배를 21일간 해보라고 했다. 나는 매일 3시간에 걸쳐 다라니 1자 1배를 정성껏 했다.
마지막 날,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던 나였는데 꿈에서 사랑스런 아들이 없어졌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데 결국 화장실에서 발견했다. 그런데 아들이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울며불며 아들을 부르니 아들이 눈을 떴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반가워 “너 왜 이런 짓을 했니?” 하니 “엄마를 바뀌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선 꿈을 깼다.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아들이 목을 맸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왜 내가 이런 꿈을 꿨나’ 한동안 생각해보니, ‘부처님께서 세속에 물들어 살던 나를 바꿔 주시려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다라니 기도한 사경지를 가지고 스님을 뵀다. 스님은 잠시 보시더니 “며칠 쉬다가 기도가 하고 싶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스님은 “<법화경> 사경을 해보라”고 했다. 3천배 기도와 다라니 사경기도에 이어 <법화경>과 인연. 그렇게 시작이 됐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