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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화두’
조계종 중신회, 동안서 수행논강 '간화선으로 본 <금강경> 입제


조계종 중앙신도회원들이 11월 24일 서울 조계사 극락전에서 열린 동안거 수행논강 간화선으로 본 금강경 입제식에서 원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깊은 밤, 스승 홍인은 늙은 행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금강경>을 설해줬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 혜능은 한번 듣고 말끝에 문득 <금강경>의 큰 뜻(大意)을 깨달았다. 그날 밤, 홍인은 혜능을 선종의 제6조로 정하고 믿음의 표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해줬다.”

육조 혜능 스님과 <금강경>과의 기연이 담긴 <육조단경>의 한 구절이다. 선종과 <금강경>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혜능 선사가 <금강경>에서 깨달음의 단초를 얻은 사연. 오늘날 조계종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정해 선 수행의 나침반으로 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간화선으로 <금강경>을 말하다

이처럼 선 수행의 지침이 되는 <금강경>. 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김의정)가 올 동안거를 맞아 내년 2월 25일까지 특별한 수행논강을 마련했다. 주제는 ‘간화선으로 본 <금강경>’. 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선으로 공부해보자는 취지에서다.

논강은 이 같은 <금강경>의 선적인 공부열기를 반영해 무여 스님(축서사 선원장)을 증명법사로, 지관 스님(조계종 총무원장)과 고우 스님(각화사 선덕)을 특별법사로 초빙했다. 법문 내용도 ‘조계종의 간화선과 소의경전 금강경’으로 해, 논강의 주제를 분명히 했다. 또 진명 스님(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무각 스님(서울 공생선원장)을 강사로 초대, 재가불자들에게 매주 수요일 오후 7~9시 서울 조계사 극락전에서 <금강경>의 구절 하나하나를 풀어줄 예정이다. (02)733-7277 laybuddhist.net

11월 24일, 논강 입제식 현장을 찾았다. ‘<금강경>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입제 법문에 나선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은 이날 ‘<금강경>과 간화선의 관계가 어떤지’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 등에 대해 1시간 넘게 법문했다.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원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 중앙신도회원들. 사진=김철우 기자
# <금강경>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화두’

원철 스님은 먼저, <금강경>의 모든 구절이 경전의 내용인 동시에 화두가 된다고 강조했다. ‘경전에서 이 말이 과연 무슨 뜻인가’가 자연스럽게 수행자에게 의심을 일어나게 하고, 결국 화두가 된다는 것이다. 간화선이 <금강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셈이다.

그 예로 원철 스님은 <금강경>의 ‘삼세심(三世心:과거ㆍ현재ㆍ미래) 불가득(不可得)’이란 구절이 <벽암록> 제4칙으로 화두화 됐다고 설명했다. <금강경> 주석의 대가인 덕산 대사가 시장에서 만난 떡장수 노파에게 “<금강경>에서 삼세심이 불가득이라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心)에 점(點)을 찍으려 하는가”란 질문에 말문이 막힌 사연이 바로 그것. 즉 <금강경>의 이 구절이 ‘마음에는 실체가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밝히려 하는가’란 화두가 됐다는 것이다.



# 선 수행의 안목 열게 해

원철 스님은 <금강경>이 선 수행의 안목을 열리게 하고, 수행을 하기 위한 경전이라고 강조했다. 즉 <금강경>이 ‘모든 상(相)이 있다는 것은 허망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오조 홍인 대사가 법당 벽에 <능가경> 법상도를 그리려다 그만 둔 것도, 신수의 게송을 인정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원철 스님은 홍인 대사의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있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룬다”는 말을 인용, <금강경>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일체 존재가 조건의 모임이기에 모두 실체가 없다는 공사상을 체득하게 할 뿐 아니라, 이런 경험이 바로 연기법의 이해로, 반야의 지혜로 이어지게 한다고 설법했다. 즉 <금강경>은 선 수행을 이 같이 할 수 있도록 안목을 갖게 하고, 나아가 초기불교의 정견(正見)과 선종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갖추게 한다는 것이다.

원철 스님은 또 <금강경> 공부가 선 수행자에게 자기반조의 계기 내지 수단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수행자 스스로가 ‘심불반조(心不返照:마음으로 되돌아보지 않고) 간경무익(看經無益:경전을 보면 이익이 없다)’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자로 얽매여 <금강경>을 읽지 말고, 선적인 눈으로 보라’고 원철 스님은 당부했다. 때문에 스님은 <금강경>을 수시로 계속 읽을 것을 조언했다. 만약 수행자가 한 구절 한 구절 끊임없이 읽으면, 어느 순간 그 뜻을 알게 돼, 전체를 알게 되는 능력이 생겨 다른 경전도 선적인 안목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은 모든 상(相)이 있다는 것은 허망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기에 선수행의 나침반이 된다고 강조하는 원철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 간화선 수행에, 왜 <금강경>인가?

일체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버리고 무주상보시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금강경>. 왜 간화선 수행에 <금강경>이 중요할까? “한 곳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양으로 부처를 찾거나 보지 말 것”을 강조한 <금강경)의 정신 때문이다. 또 인욕ㆍ보시바라밀 등을 강조한〈금강경〉실천행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럼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일까? 혜능 스님은 <금강경해의>의 머리말에서 <금강경>의 핵심이 무상(無相), 무주(無住), 묘유(妙有)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금강경>은 무상으로 종(宗)을 삼으며, 무주로 체(體)를 삼고, 묘행으로 작용(行)을 삼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치를 깨닫게 하고 성품을 보게 했던 것이다”라는 글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금강경>의 이 같은 중심사상은 수행자에게 선적 깨달음의 단서를 제공한다. 깨달음의 힌트가 <금강경> 곳곳에 배어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금강경>이 선 수행의 소의경전이 되는 까닭도, 선 수행자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재가자가 <금강경>에서 얻을 선의 가르침은?

단연 무주상 보시행에 있다. <금강경>에서는 ‘마땅히 상이 없는 마음(無相心)으로 보시한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구체적인 보살수행으로 꼽는다.

또 수행자 스스로 마음을 항복받을 수 있는 힘을 던져준다는 점이다. <금강경>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항복 받는(降伏其心)’ 문제를 주된 테마로 다루면서, 밝고 맑은 본성에 물든 잘못된 판단을 자기 부정으로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사물에 탐욕심과 분별심을 내지 않으므로 참된 보시행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글ㆍ사진=김철우 기자 |
2005-11-25 오전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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