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간화선과 대자유·행복
법주:혜국 스님(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간화선 수행법이야말로 인류의 등불입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우주를 내 마음속에 담는 화두 수행을 벗 삼아 내 마음의 고향에서 노니는 행복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10월 2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0월 24일 오전 5시) 하와이 무량사 설법전에서 열린 선원장 초청 간화선 법회에서 혜국 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은 간화선 수행으로 우리의 마음 밭을 잘 가꾸어보자며 법문을 시작했다. 무량사 창건 30주년ㆍ문화원 준공을 기념하며 9월 25일부터 개최해온 간화선 법회를 회향하는 이날 법회에는 150여 명의 불자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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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죽는다면 가장 억울한 일이 무엇입니까?”
대중이 침묵하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만일 지금 죽는다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한 그 시간이 가장 억울할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빌어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내가 내 인격과 내 마음을 위해서 얼마만큼 마음 농사를 지었던가? 내가 내 인격과 내 주체를 위해서 살아왔는가 아니면 내 욕망과 번뇌망상, 감정이 하자는 대로 이 세상을 살아왔는가? 가만히 돌아보면 슬플 때는 슬픈 놈 하자는 대로, 번뇌망상이 올 때는 번뇌망상의 노예가 되어서 보낸 세월이 더 많을 것입니다. 내 욕망이 하자는 대로 이 세상 살아가는 그것, 그게 가장 억울하다 이 말입니다.”
희로애락, 탐진치, 시비분별의 크고 작은 파도에 이리 저리 휩쓸리며 살아오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대중들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거울 앞에 갑자기 세워진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내 몸뚱이가 나인줄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이 몸뚱이는 아프지 말라고 해도 아프고, 죽지 말라고 해도 죽어버리니 내가 진정 내 몸뚱이의 주인으로 산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몸뚱이로서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며 온갖 번뇌와 망상, 슬픔, 원망의 도둑놈에게 내 집을 몽땅 뺏겨 사는 꼴이니 지금이라도 마음 농사를 잘 지어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도록 간화선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왜 간화선 수행을 해야 하는가? 스님의 법문은 간화선 수행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며 대중들의 심중을 흔들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손가락을 연비하며 몇 백생을 거듭해도 이 길을 가겠노라 발원한 혜국 스님의 원력을 대하며 간화선 수행의 길에 지레 겁을 먹는다. 이런 대중의 마음을 짐작한 듯 스님 법문은 그 두려움마저 녹여버린다.
“처음 화두 참선을 한다고 척 앉으면 온갖 번뇌가 다 일어나요. 나도 처음 열 세살에 참선하겠다고 절에 왔을 때, 어찌나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망상이 일어나는지 무척 고생을 했어요.
부모 형제 다 버려두고 손가락까지 태웠는데 하도 공부가 안돼서 가야산 마애불 앞에 가서 부처님을 붙들고 엉엉 울고 내려오는데 성철 스님한테 들켜 불호령을 맞았어요. 공부가 안되고 속이 타면 그 자리에서 해결을 해야지 어떻게 석불까지 짊어지고 가느냐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느낀바가 많았습니다. 바로 화두 참선법은 모든 근심 걱정뿐 아니라 번뇌망상 모든 욕망을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길을 열어주는 공부입니다.”
간화선의 수승함을 일깨우는 혜국 스님의 법문이 이어지자, 대중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간화선 의 세계에 들어서고 싶은 발심이 꿈틀거린다.
“화두참선법은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게 하고 말하게 하는 주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누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수행해서 내가 내 자신을 구제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두란 뭡니까? 화두라는 것은 영어 일어 한국어, 인간 축생… 그러한 모든 것이 태어나기 이전 세계를 말합니다. 즉 우리 주인을 화두라고 합니다. 주인이 우리를 끌고 다니는데 우리는 그 주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주인을 찾아 내 마음을 스승삼고 내 마음을 연인 삼고 내 마음을 벗 삼고 걸어가는 길입니다. 화두참선법을 찾아서 들어간다는 것은 내 주인을 찾아간다는 말이거든요. 그럼 내 주인이 뭐냐? 그게 바로 화두입니다.”
혜국 스님은 “지구라는 별에 올 때 목적 없이 온 사람은 없는 만큼 이 몸뚱이를 빌려 쓰는 동안 화두 수행법으로 내가 지구별에 온 목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거듭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열세 살에 출가하여 화두 공부를 이어가는 동안 겪었던 일화 등을 들려주며 지극하고 간절하게 간화선 수행에 매진하라고 당부했다.
“머리로 따져서는 화두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화두 공부에 들어가려면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이 전제돼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믿는 신(信)이 철저해지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가 하는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며, 저승길 갈 때 화두만이 등불이 되어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니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대분심이 일어야 합니다. 몇 백 생을 태어나더라도 내 마음을 연인삼고, 스승삼고 벗 삼아 걸어가는 화두 정진을 하겠다는 마음이 깊어져서 ‘왜 정전백수자라 했던가? 어째서~ 어째서~’ 하는 의심을 깊이 낼 때, 정신 혁명의 길이 비로소 시작 되는 것입니다.”
혜국 스님은 “‘나’라는 그릇을 깨버리면 그 그릇 속에 있던 달은 사라지지만 하늘에 둥실 떠있는 달은 여전히 밝게 빛을 발하는 이치와 같아서 나라는 좁은 소견을 깨고 내 영혼의 한계마저 훌쩍 뛰어넘어 나의 마음을 태평양 바다처럼 넓게 만들어버리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대자유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화두 공부를 지어가는 과정에서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번뇌와 망상이 보여야 그것을 조복 받을 수 있으며 그릇속의 찌꺼기인 번뇌 망상이 가라앉으면 달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화두수행의 장애인 번뇌와 망상, 졸음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번뇌망상이 쉬었을 때 나타나는 달도 참나는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나라는 그릇을 깨어버리고 전체로 돌아가면 하늘에 있는 달 즉, 전체로서의 부처가 비로소 나타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공부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나갈 것을 당부했다. 영혼은 따로 따로 있지만 참나는 하나니 둘이니 하기 이전 자리이며 깨달음이란 영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업식까지 뛰어넘는 것임을 분명히 짚었다.
혜국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대중들은 행복해진다. 그렇게도 바라던 행복의 세계는 멀리 있지 않았다.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지금 여기에 행복은 충만해 있었다. 법을 설하는 혜국 스님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맞이한 까닭이다.
대중들은 원력을 세운다. ‘나’라는 그릇을 깨고 울타리를 벗어나리라. 나를 둘러싼 두꺼운 고정관념, 시비분별의 벽을 부수어 그 벽을 넘어 본래 둥실 떠 있던 밝은 달을 대면하리라.
“마음을 다해 화두 참선을 하십시오. 화두란 바로 내 주인이고 화두를 하는 것은 내 주인을 안고 사는 것이고 잠깐 동안 화두 참선하는 것이야 말로 내 주인 마음 고향에서 노니는 아름다운 일이라는 정립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 뒤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힘들 때, 고향 생각날 때,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날 때마다 고삐를 다잡아 주는 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내 마음의 울타리가 우주에 가득 차 결코 남의 밭에 들어가는 일이 없는 그 자리, 그것이 바로 선의 세계이며 그 걸림 없는 대수용의 맛을 볼 때 참다운 행복이 본래 우리 안에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혜국 스님은
1961년 해인사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범어사에서 혜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은 후 대승사 봉암사 칠불사 등에서 참선정진했다. 69년 해인사에서 10만배 정진을 마친 뒤 오른손 세 손가락을 연비했으며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 7개월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로 용맹정진했다. 현재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