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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위빠사나 수행, 외국 고승에게 묻다
알아차림만 해도 지혜 얻고 열반 vs 사마타 거쳐야만 선정 들 수 있어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모든 대상들을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하는가?”

남방불교 초기수행법의 두 축을 이루는 사마타(정신집중ㆍ止)와 위빠사나(알아차림ㆍ觀). 최근 잇따라 방한한 미얀마 고승 우 자띨라 스님과 파욱 아친나 스님에게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는 어떤지, 대상을 관하는 마음은 둘인지 하나인지, 간화선 수행법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등에 대해 물었다.

우 자띨라 스님은 10월 31일 한국위빠사나선원에서, 파욱 아친나 스님은 11월 1일 서울 홍원사에서 각각 만났다.



# ‘북과 피아노’ vs ‘외발수레와 두 바퀴 수레’

두 스님에게 곧장 물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가 어떤지,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먼저 자띨라 스님은 “한 곳의 북에만 계속 몰아 칠 것인가, 주변 악기와의 화음을 고려하며 음역이 다른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사마타가 ‘북’이라면, 위빠사나는 ‘피아노’라는 것이다.

‘사마타’ 수행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거쳐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파욱 아친나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자띨라 스님은 “사마타 수행은 한 가지 대상을 갖고 몰입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대상을 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마디(삼매)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위빠사나는 육근으로 드러나는 모든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일어나는 대상 모두를 관하는 사미디와 정진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북은 한 곳만 계속 치면 되지만, 피아노는 주변 악기의 음률과 순응해야만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친나 스님은 “불안한 외발수레(위빠사나)를 끌지 말고, 안전한 두 바퀴 수레를 몰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빠사나 수행의 전제조건으로서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사마타를 닦는 이유는 선정을 얻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지혜란 빛을 볼 수 있다. 선정의 힘으로 빛이 나온다. 그 빛을 갖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가는 것”이라며 “사마타를 통해 초선(初禪)에 들었을 때, 위빠사나가 그 때 구성하는 선정의 요소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게 한다”고 말했다.




# 초기수행법 ‘마하시’와 ‘파욱’, 어떻게 대상을 알아차리는가?

마하시 사야도 계열의 위빠사나 수행자인 자띨라 스님은 육근(六根,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의식)에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대상을 칸니까 사마디(찰나삼매)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사마타 수행을 거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자띨라 스님은 “순수 위빠사나 수행법으로써 법을 얻는 수행자에게 칸니까 사마디가 일어나야 한다. 어떤 하나의 대상에 고정해 긴 시간을 바라봐야 하는 사마타를 거치지 않고, 육근에서 일어나는 대상들을 위빠사나로 알아차려야 한다”며 “위빠사나는 칸니까 사마디로 지혜를 얻게 하고, 결국 열반의 상태로 이끈다”고 강조했다.

파욱 사야도 계열의 아친나 스님은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사마타 수행이 열반을 얻기 위한 선정의 힘을 기르게 하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아친나 스님은 “물질과 정신은 위빠사나의 대상이 된다. 실재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위빠사나라고 할 수 없다. 선정을 닦고 난 뒤 실재하는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을 봤을 때, 비로소 진정한 위빠사나라 할 수 있다”며 사마타 수행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럼 ‘사마타’ 자체로 궁극적인 열반에 이를 수 있을까? 아친나 스님은 사마타가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을 보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친나 스님은 “사마타 수행 없이 위빠사나에 들어가면, 근접 삼매에까지 갈 수 있지만, 그 경지는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며 “사마타 수행을 통해 선정을 닦으면, 집중력이 깊어져 빛이 생긴다. 그 빛의 도움으로 작은 물질도 보게 돼 열반에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 알아차리는 마음은 둘인가 하나인가?

자띨라 스님은 ‘하나’라고 말했다. 만약 탐심이 일어났다면, 바로 그 뒤에 있는 평정심이 탐심을 알아차리기에 앞에 탐심이나 뒤에 평정심은 똑 같다는 설명이다. 앞에 탐심을 위빠사나로 관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다르고 저 마음은 다른 상태가 아니다’라는 의미다.

순간적 정신집중인 ‘사마타’를 통한 찰나삼매를 거치지 않고 지혜로 곧바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우 자띨라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아친나 스님은 ‘하나일 수도 둘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어떤 대상이 일어났을 때, 그 대상을 아는 마음 역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다는 셈이다.

아친나 스님은 “‘마음을 관찰할 때, 뒤에 마음이 앞에 마음을 관찰하느냐, 아니면 생멸하는 마음 이면에 다음 마음이 관찰하는 것이냐’의 문제”라며 “만약 수행자에게 욕심이 일어났을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뒤에 마음이 오온(五蘊) 가운데, 수(受:받아들이는 마음작용)일 수도 식(識:의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마타’, 화두일념과 같은가 다른가?
아친나 스님은 ‘다르다’라고 단언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하나의 대상만을 갖고 선정을 닦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간화선이 화두 하나의 대상에만 매달린다 해서, 이것을 사마타라고 말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아친나 스님은 “부처님은 ‘청정도론’에서 사마타로 닦는 대상을 몸의 32가지 구성부분과 뼈 등 40개로 정해줬다”며 “그 대상에 들지 않으면 사마타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자띨라 스님은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우 자띨라 스님은?

한국 위빠사나 수행자들 사이에서 고승으로 통하는 인물. 현재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에서 수행지도를 맡고 있는 스님은 순간적 정신집중인 ‘사마타’를 통한 찰나삼매를 거치지 않고 지혜로 곧바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욱 아친나 스님은?

남방불교의 사마타 수행 전통을 되살린 고승. 이번 한국 방문이 처음인 스님은 ‘사마타’ 수행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거쳐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24년째 미얀마 ‘파욱 숲속 수행처’에서 정진 중이다.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5-11-13 오후 2:06:00
 
한마디
화두선이 하나의 대상에만 매달린다고 보면 아니지요. 화두참구를 할 때 의심을 통해 변화하는 만법을 이미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부차적인 것이고 오히려 역관합니다. 사마타나 위빠사나는 역관을 못하지요. 화두선은 사마타나 위빠사나 이후에 발전된 역관법이지요...
(2005-11-15 오후 10: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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