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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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뿔에 털난 소식. 이 이치를 아는가?"
【탐방】‘도심수행도량을 찾아서17’ 안성 청원사 불식(不識)선원
20여 재가불자들이 11월 5일 안성 청원사 불식선원에서 토요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이뭣꼬!”
“네? 여보세요. 불식선원 맞죠?”
“이뭣꼬!”
“…?”

취재 일정 확인 차, 걸었던 휴대폰에서 들려온 외마디였다. ‘생뚱맞은’ 대답에 순간 당황했다.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 곱씹었다. “‘여보세요’ 하고 물으니, 돌아온 답이 ‘이뭣꼬’라. 이거 뭐지?”

선원 문에 들어서자마자, 선원장 본적 스님에게 곧장 물었다.
“왜 그렇게 말하셨어요?”
“불식(不識)!”


#선원 가풍(家風), ‘그런 거 없다!’


11월 5일 오후 7시. 토요철야정진에 앞서 안성 청원사 불식선원의 선풍을 묻자, 본적 스님은 “그런 거 없다!”며 미소 짓기만 했다. 잠시 후 다시 물으니, 내놓는 대답은 맥을 풀리게 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거지. 그 뿐이야.”

지난해 이곳에서 동안거를 났다는 선원 신도 정돌뫼씨(57ㆍ서울 상계5동)에게 다시 질문했다.

“불식선원의 가풍은 어떻습니까?”
“사랑방 같아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스님이 달여주시는 차 한 잔과 함께 법문을 듣죠. 불자들이 부담 없이 자기 공부 경계를 드러내면, 스님은 근기에 맞게 차근차근 길을 일러주시죠. 동네 아저씨처럼 말이에요.”

지대방에서 본적 스님과 불자들은 자연스럽게 차담을 나눴다. 수행상담은 기본. 구수한 옛날 얘기, 요절복통하게 하는 재담까지, 여느 집 안방에서 오갈 법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조의 말씀을 목전(目前)에 놓고 참선정진하라고 강조하는 본적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정진과 문답은 ‘서릿발’ 같이 치열하게



차담이 끝나자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다. 20여 불자들은 자기 방석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었다. 치열함이 선방을 가득 메웠다. ‘50분 참선-10분 포행’,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정진은 빈틈없이 진행됐다.

자정을 넘으면서 본적 스님의 간화선 참구법에 대한 법문이 이어졌다.

“팔만사천법문은 말과 생각 이전의 자리로 이끄는 안내서입니다. 병을 고치는 처방전인 거죠. 하지만 처방전은 병을 본질적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약을 직접 먹어야겠죠. 화두가 바로 약입니다. 그럼 화두란 무엇일까요?”

대중들의 대답은 없었다.
“화두는 토끼 뿔에 털 난 소식입니다. 화두는 말과 생각의 길을 끊어지게 합니다. 객 밖의 도리를 참구하는 격외구(格外句)지요. 일어나는 의심 그대로 궁구해서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겁니다. 알겠지요?”

문답도 계속 됐다. 3개월 째 선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성원씨(31)가 먼저 물었다.

“돌솥에 약수를 정성스레 담은 것과 세 발 달린 금붕어가 하늘로 솟구치는 이치와 같습니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스스로 알아야 하는 건가요?”
“억!”

안성 청원사 불식선원 전경. 사진=김철우 기자


이어 한 거사가 화두 간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냈다. “화두를 받으면 바꾸지 말라 하는데요.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누구인가’와 ‘염불하는 이 놈이 누구인가’는 같은가요, 다른가요? 모두 생각과 말 이전의 자리를 가리키는 미끼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 같은데요.”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부모가 주신 송장을 하루 종일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가 긴 화두고, ‘염불하는 이 놈이 누군인가’가 짧은 공안인 거죠. 만약 이를 더 줄이면 ‘이뭣꼬’가 되는 겁니다. 간화선은 ‘이~’하는 놈이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거예요. 불조의 말씀을 목전(目前)에 놓고 바로 보는 것이 참선공부임을 잊지 마세요.”

이뭣꼬 화두를 들고 정진 중인 재가불자들. 사진=김철우 기자



#알음알이를 내려놓다


불자들은 참선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왕초보 불자’라는 성윤선(38ㆍ오산시 오산동)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고시학원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돈도 떼였지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 숨을 못 쉴 정도로 가슴을 치면 살았죠, 그러다 시작한 참선은 가슴 구석구석에 맺힌 원한과 미움들을 구멍구멍에서 터져 나오게 했지요. 여유 있게 내 마음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거죠. 늘 찡그렸던 얼굴도 조급했던 마음도, 환하고 너그럽게 바꿔놓았죠.”

‘이뭣꼬 보살’로 불리는 박경임씨(56ㆍ서울 송파 방이동)도 수행체험담을 풀어냈다.

“시골집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 두 마리를 보면서 내 모습을 봤죠. 집에서 직장, 직장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제 생활에서 무미건조함을 발견했어요.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심까지 생겼죠. ‘과연 생사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의심은 화두참구에 밑천이 됐어요. 아는 체하는 알음알이도 단번에 내려놓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힘을 참선수행에서 얻게 된 거죠.”

본적 스님을 3년간 시봉했다는 여운정씨(29ㆍ서울 응암동)도 마찬가지였다. 10년간 참나를 찾는 여행 중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알음알이’를 내려놓는 지혜였다고 말했다. 세상에 대한 편견, 좀 안다는 자만심 등을 버림으로써 청정한 본래모습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토요철야정진과 경전 독송 병행


본적 스님은 1997년 불식선원의 문을 연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행자에게 가장 큰 맹통(盲通)은 아는 체 하는 ‘알음알이(識心)’에 있기 때문에, 이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알음알이를 두지 말고, 텅 빈 마음으로 선원 문지방을 넘으라고 늘 말합니다. 입을 열면 모든 것이 거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비로소 참선수행의 눈이 열리기에 그렇죠. 그래서 선원의 이름도 불식(不識)이라 지은 겁니다.”

때문에 불식선원에서는 자율정진과 차담을 통한 담선(談禪) 시간을 강조한다. 매일 새벽 4시~6시 참선정진, 10시 30분~11시 30분 <금강경> 독송, 오후 2시~4시 참선정진 등으로 나눠 자율적으로 수행을 한다.

선원에서는 특히 초심자의 근기에 맞게 지대방에서 수행상담을 한다. 매일 오후 2~4시 지대방에서 본적 스님은 차담을 통해 참선 초보자들의 근기에 따라 절, 염불 등의 수행법을 권유한다. 화두에 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참구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서다.

이곳에서는 참선정진과 더불어 <원각경><금강경> 등의 경전 강의도 병행한다. 사시불공 전에 <금강경> 1품씩을 반드시 독송하게 한다. 대승불교의 정수를 담은 <금강경> 독송이 불자들에게 신심을 굳건하게 만들게 하기 때문이다. (031)655-7121
글ㆍ사진/안성=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5-11-13 오후 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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