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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남산동, 돔 형식의 지붕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외형미로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산의 고저에 거스름이 없이 앉아 있는 이 건물의 둥근 지붕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른다.
역동적인 선(禪)의 미학을 잘 살려낸 이 건축물은 2003년 봄 착공, 2년 6개월의 불사를 끝내고 11월6일 이전개원한 부산 안국선원(선원장 수불)이다. 평소 정진 대중이 400~500명에 이르고, 안거 대중은 700~80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안국선원이 도심 속의 선(禪) 수행처를 지향하며 완공된 것이다. 11월 6일 개원식을 시작으로 대중들의 마음눈을 뜨게 할 수행공간으로 문을 활짝 연 안국선원은 독특한 외형만큼이나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사찰 건축의 새로운 불사 모델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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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쉽게 찾아와 편히 수행할 수 있는 곳
건물 안이 밝고 환하다. 환기와 채광에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천정높이를 기존보다 1m 이상 높여 실내의 갑갑함을 느낄 수 없다. 총 건평 2100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이지만 지나치게 개방된 감이 없고, 편안한 동선을 따라 이어지며 수행자들의 고요함을 지켜준다.
또한 동시에 2천여 수행자들이 한꺼번에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번잡하지 않도록 동선을 처리했다. 3중 유리로 된 창은 완벽한 방음으로 정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안국선원엔 담장이 없다. 곧바로 한 길과 이어져 오가는 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하다. 산의 경사를 이용한 자연스러운 가람 배치와 건축물을 억제한 주변환경과의 조화가 한눈에 읽힌다. 전통적인 사찰건축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도심속에 되살려냈음을 알 수 있다.
세 개의 건물이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며 가파른 등고의 흐름을 따라 독립적으로 배치됐고, 유기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시공(時空)의 초월과 통합을 건물 배치로 시도한 것이다.
본래의 지형 지물을 최대한 살리며 조경은 주위의 나무들이 주를 이뤘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거나 조작한 흔적이 없다. 거대한 바위를 깨지 않기 위해 건물을 들여서 지어, 그 바위는 건물 뒤를 감싸는 병풍처럼 자연 조경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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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선이 주는 편안함과 여유
부산 안국선원에 가면 가장 먼저 외벽과 실내의 곡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이 부드럽고 유려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건물의 아웃 라인은 부처님의 눈을 그려낸 듯 하다. 우주와 통하는 눈을 형상화한 것. 그 선 때문에 안국선원 불사에서 가장 고생을 한 사람들은 콘크리트 외장을 담당한 이들. 실이 중력을 받아 만들어내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곡선을 건축 설계의 핵심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에 시각적, 건축학적으로 가장 편안하면서도 완만한 곡선을 콘크리트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어떠한 외장도 없이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시공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시공 후 원래의 곡선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유려한 곡선앞에 시공자들조차 감탄을 하며 자부심을 느꼈을 정도.
그렇게 만들어진 베란다는 넓지 않은 마당을 대신해 전통 가옥의 마루 역할을 하며 먼 산을 조망하는 여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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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적 설계로 살려낸 건축의 완성도
안국선원의 가장 큰 특징은 불상, 조명, 음향 전문가들이 설계의 첫 단계부터 공동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의 틀을 완성해 놓고 조명이나 음향, 불상 등을 거기에 맞추는 것과는 달리 불상, 조각, 조명, 조경, 음향 등이 유기적으로 설계에 참여함으로써 보다 편안하고 편리한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단 한번의 설계 변경도 없이 진행되던 불사가 불상 조각의 높이를 고려, 지붕의 돔을 이중으로 변경했을 정도로 상호 유기적인 배려와 조화로 예술성과 기능성을 고루 살려냈다.
특히 음향의 경우, 1000명 이상을 너끈히 수용하는 250평 규모 대법당의 어느 위치에서도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계됐다. 또한 6m의 석가모니불과 4m의 문수 보현 협시불은 법당의 장엄함을 더한다.
6m 높이의 주불과 닷집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지붕의 돔을 이중으로 조정했으며 불상을 중심으로 가로 18m, 세로 12m의 입체 목조각으로 부처님 십대제자와 신중을 봉안했다. 설계를 맡았던 박건 소장(건축사사무소 GA 대표)의 안목과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카노교수의 조언이 만들어낸 또다른 ‘법계’는 언제봐도 새롭다.
# 수행자들 마음과 정진에너지 고스란히 담아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그것이 던지는 물음은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일맥상통한다. 집은 사람과 그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크게는 우주 법계의 에너지가 드나드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국선원은 선원에서 생활하게 될 수많은 수행자들의 마음과 그 정진의 에너지를 수용하는데 충실했다.
이제 불사를 마쳤지만 안국선원의 진정한 불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처 담아내지 못한 것들은 채우고 가꾸어 나갈 사람 불사가 남겨진 까닭이다. 남산동에 세워진 우주의 눈 세 개가 그 미래를 지켜보고 있다. 부산 안국선원(051-583-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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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 스님(안국선원장)
“공부위해 지은 도량이니 언제든 찾아 오십시오”
“우주의 눈을 형상화해서 우주의 기운과 우리의 기운이 합치하도록 고려한 도량입니다. 사람과 자연, 우주가 어우러져 수행하기 좋고 편안하게 정진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11월 6일 개원법회를 가진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 밝힌 불사의 핵심이다. 역사속에 남을 불교 건축을 짓겠다는 원력 하나로 150억이라는 불사비를 마다하지 않았다.
스님은 이번 불사를 통해 “한국불교도 건축 양식의 답습에 그치지 않고 21세기에 걸맞는 창조적인 사찰 건축을 시도해 볼 시점이 되었고 그런 시도를 수용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가 역량을 잘 발휘하도록 지원만 했을 뿐”이라는 스님이지만 간화선을지도하고 있는 스님의 기본 철학이 선원 불사의 뼈대를 이뤘다.
“참선하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었으니 참선 수행을 원하시는 분들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공부를 위해 지은 건축이니 이 도량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