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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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과 지족,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지상백고좌]운산 스님(아산 능인정사)


사진=박재완 기자
산중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참 많습니다. 세속과 담을 쌓고 있는 듯하지만 끊고 맺음에 걸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지요. 이들은 저마다 깨달음을 향해 쉼 없이 정진을 이어가기 위한 수행의 지표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60여년의 산중생활을 지탱해 준 가르침이 있습니다. 먹물 옷을 입게 해 준 평생의 스승 석봉 스님의 가르침이 그 것이지요. 석봉 스님이 수행할 때의 일화와 평소 강조했던 가르침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석봉 스님은 산중에만 머물던 기인이었습니다. 만공 스님 문하에서 공부하던 스님은 어느 날 참선을 하겠다며 도반과 함께 금강산 마하연을 거쳐 오대산 상원사로 갔습니다. 금강산에서 마가목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찾아간 상원사 선방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보니 문제가 생겼어요. 바로 전날 짚고 온 지팡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화가 난 석봉 스님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오늘 밤 안으로 지팡이를 가져다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다시 하룻밤을 묵고 나니 지팡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선방에 방부를 들이려 해도 함께 간 도반은 받아주면서 스님의 방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석봉 스님은 분통이 터졌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함께 간 도반스님이 “정말로 이유를 모르는 것이냐”면서 답을 일러주었습니다.

이유인즉슨 “화를 낸 스님의 모습이 사천왕처럼 무서워서 함께 살기를 꺼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스님의 태도가 수행분위기를 해친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석봉 스님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어요.

그 길로 석봉 스님은 상원사 조실로 있던 한암 스님을 찾아가 삼배를 올렸습니다.

“절대로 진심(嗔心)을 내지 않겠습니다. 방부를 받아주십시오.”
한암 스님은 “진정 인욕할 수 있단 말이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한다면 합니다.”

그 후 이전의 석봉 스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인욕 보살’만이 가부좌를 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선방의 납자들은 갑자기 치열한 수행자가 되어버린 석봉 스님의 태도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상원사를 찾던 첫 날 온 절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있었으니 그럴 만했을 것입니다. ‘인욕보살’이 된 석봉 스님은 다른 괜한 트집을 잡아 욕을 해도 미소를 지을 뿐이었어요. 나중에는 ‘깨달음의 방(棒)’이라며 때리기까지 했지만 석봉 스님의 인욕수행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정진을 이어가는 것이었어요.

그 때 이후 석봉 스님은 40년 동안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처음 문하에 받아줄 때도 이렇다할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스님이 즐겨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섯 가지 ‘제일법문’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팔대인각경(八大人覺經)>에 나오는 말인데, 부처님 말씀에 평소 스님이 강조했던 인욕을 추가해 일러준 가르침입니다.

인욕제일장(忍辱第一壯)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
무병제일리(無病第一利)
선우제일친(善友第一親)
열반제일락(涅槃第一樂)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장사요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고
병 없음이 제일의 이익됨이며
좋은 벗이 제일 친한 이요
열반이야말로 제일의 즐거움이니라.

이 중에서도 인욕과 지족은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모름지기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스스로 족할 줄 알고 마땅히 참을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참을 줄 모르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쉬어지지 않아요. 오직 참음이 원망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욕을 행복의 열쇠라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인욕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도 지려하지 않으며, 내 행복을 위해 남을 힘들게 합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문제는 다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일어나는 탐심과 진심과 치심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거든요. 평생을 삼독심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러나 인욕이라는 것은 바로 탐·진·치 삼독을 여의는 것이고, 이는 곧 생활 속의 수행인 것입니다.

지족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만족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부자라고 할지라도 지족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재물과 돈을 쌓아놓고도 더 많은 이익을 바라는 것이 과연 행복이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재화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에 있어요.

자연을 보세요. 산에는 새가 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새는 숲에 둥지를 트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고, 물고기는 연못을 유유자적 노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숲에 있으면서 연못을 얻으려 하거든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앞세우면서 만족에 있다한들 만족할 수 있을까요?

자연은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어떤 작용을 하더라도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에요. 달라지는 것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욕심입니다. 자연이 스스로 만족을 알 듯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면 웃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족을 모르는 이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이가 나누며 살리는 만무합니다. 자기만 잘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과연 옆에 있는 거지가 눈에 보일까요? 그러나 지족하면 보시의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게 됩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재산 많은 것을 부자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재산이 많아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많은 재산을 모을 생각만 하기 때문에 불쌍한 것입니다. 이롭게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진짜 부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하면 진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재물의 부자는 아니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부자는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지족제일부’라고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부자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라면 모름지기 인욕과 지족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이유는 인욕과 지족에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청정한 마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힘도 인욕하는 가운데 지족을 알아야만 생기는 것이지요.

저는 은사스님이 주신 이 가르침을 인생의 지팡이로 삼고 평생을 걸어왔습니다.


운산 스님

출가생활 60여년 동안 산중에만 머무른 운산(云山) 스님.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에 매스컴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다. 거처에 장식물을 하나도 두지 않을 정도로 소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스님은 평소 인욕과 소욕지족의 삶이 최선의 수행이라고 강조해왔다. 모든 일을 대할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경책으로 삼을 뿐이다. 지금도 은사를 모시겠다는 제자들에게 “네 공부나 하라”며 홀로 정진하고 있다.

192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운산 스님은 12살 때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을 친견한 뒤 불교에 귀의했다. 25세 때인 1948년 입산했으며 1952년 수덕사에서 석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9년 부산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출가 직후부터 은사인 석봉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대구 동화사, 남지장사, 서산 개심사, 공주 갑사, 서울 법수원을 따라 다니며 시봉, 인욕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의정부 망월사 선방 등지에서 화두를 들다가 터만 남아 있던 진천 영수사를 재건, 운수의 길을 접고 30년간 수도했다. 현재는 아산 능인정사에서 손수 입은 옷을 빨고 공양을 지으며 화두수행을 하고 있다. 운산은 법호이며, 법명은 혜철(慧哲)이다.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2005-11-10 오후 2:11:00
 
한마디
큰스님의 가르침이 雲深不知處에 계시듯 하나 가슴 뛰는 감동을 어찌하지 못하겠읍니다 自愧感에 다만 감사드릴 뿐입니다
(2005-11-11 오전 9: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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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가 꼭 새겨야 할 실천의 가르침입니다 제 선근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11-11 오전 8: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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