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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화두를 들고 있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이뭣꼬’ 하고 있는지, 어떻게 스스로 알 수 있을까요?”
“‘화두를 들었다’ 생각하면, 놓칠 때가 많아요. 의심을 늘 챙기는 것이 중요해요. 사실 ‘이뭣꼬’ 자체가 의심이죠. 그 의심이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야 해요.”
“그 의심이란 어떤 것인가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바로 그것이 의심이죠. 자기도 모르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화두참구지요.”
제자는 간절하게 묻고 스승은 거침없이 답했다. 방선 시간이든 가부좌를 틀든 문답은 즉석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일까? 지도점검에는 ‘띄엄띄엄’이 없다. 두루뭉수리 넘어가지 않는다. 엔간해선 스승이든 제자든 빈틈을 내어 보이지 않았다. 가열 차게 몰아칠 뿐이다.
10월 18일, 서울 성북동 전등사 전등선림. 선원장 동명 스님과 한 재가자가 지대방에서 수행문답을 하고 있었다. 곧장 재가자가 다시 물었다.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놈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찾으려 해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 놈을 찾는 것이 이 공부지요. 그 놈을 꾸준히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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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禪林)’이라 이름 지은 까닭은?
상설 재가참선도량인 전등선림은 현대의 선지식인 해안(海眼, 1901~1974) 스님이 “재가불자들이 수행해야 한국불교의 희망이 있다”며 1967년 만든 ‘불교전등회’에서 그 전통이 시작된다. “7일만 공부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며 재가자에게 깨달음의 확신을 심어준 해안 스님의 가르침이 전등선림의 가풍에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등선림은 통도사 경봉 스님과 함께 ‘동(東) 경봉, 서(西) 해안’으로 불리며 선풍을 떨쳤던 해안 스님의 유지를 이으면서, 지금도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있다.
원장 동명 스님은 “나무가 혼자 크면 삐뚤어지고 제멋대로 성장하지만, 나무 하나하나가 모여 숲을 이루면 옆에 있는 나무를 자기 경계로 삼아 곧게 크게 된다”며 “선원 이름이 선림인 이유도 나무가 홀로 성장할 수 없듯이, 수행자도 도반들과 함께 정진해야 큰 선지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깨달음의 숲’이란 뜻을 지닌 전등선림. 그래서 선림에서는 재가자들의 대중정진을 중시한다. 스승 없는 정진은 독불장군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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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한번 죽는다, 그래야 깨닫는다’
해안 스님의 선풍이 이처럼 깃든 전등선림에서 정진하고 있는 재가선객들은 어떤 자기경험을 하고 있을까? 10년 넘게 ‘이뭣꼬’ 화두를 들고 있는 고경성(77ㆍ서울 정릉동)씨에게서 먼저 체험담을 들었다.
“정진을 하다하다 안 되고 화두는 천리만리 도망가면, 억울함에 눈물만 줄줄 흘렸죠. 그러다가도 화두가 순일하게 잡히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좋고 싫음이 없어지더군요. 그저 화두만 잡고 있는 나를 확인했죠. 심지어 그런 나조차도 느낄 수 없게 되니 한없는 편안함을 느꼈어요.”
올 여름안거 때, 찰중(察衆:안거 대중의 잘못을 살피며 경책하는 역할) 소임을 맡았던 김명자(66ㆍ서울 수유동)씨는 ‘크게 한 번 죽는다’는 각오로 수행에 매달리다보니, 웬만한 일은 접어두고 놓고 가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매일 3~4시간씩 가부좌를 틀고 ‘이뭣꼬’ 하는 그 놈을 찾고 있지요. 그러면서 내 인연의 소치(所致)를 알게 됐어요. 온갖 경계와 부딪칠 때마다, 내 업장의 두께를 절감했지요. 참회가 저절로 됐죠. 그러니 망상도 화두를 드는 것도 바로 그 놈이 하는 짓이라 깨닫게 됐죠.”
화두참구 3년째인 허화정(50ㆍ서울 목동)씨도 ‘크게 한 번 죽어라’는 해안 스님의 말씀을 통해 해태심을 경계했다고 말했다.
“화두참구는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었어요. 마치 내 마음과 술래 잡이를 하는 것 같았죠. 그러다 해안 스님의 육성법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뜨였죠. 찰나 찰나 느끼는 나태함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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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다 깨달을 수 있다’
전등선림의 수행은 ‘누구든지 다 깨달을 수 있다’는 해안 스님의 가르침에 있다. 선림은 스님들만의 수행처가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가 수행하는 곳이란 것이다. 그래서 선림은 이 같은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 일정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
동ㆍ하안거는 기본, 안거를 제외한 기간에도 선방의 문을 열어 개인별 자유수행이 이어진다. 하루 일과는 오전 8시부터 두 번의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 저녁 9시까지 꼬박 좌선 시간으로 진행된다. 특히 선림에서 상주하는 재가선객들은 새벽 3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15시간 이상의 가행정진을 한다.
전등선림은 또 초심자의 근기와 인연에 맞게 다채로운 수행법을 동시에 지도하고 있다. 참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명 스님은 “무조건 선방에 들여보낸다고 화두참구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행자의 근기를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 지도점검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를 위해 초심자들의 경우, 항상 상담을 한다. 상담 이후 참회기도를 거쳐 선방에 입실하게 한다. 면담을 통해 재가자에게 맞는 기도, 간경, 염불 등을 권하며 발심의 기초를 다지게 위해서다. 또한 매년 3개월 과정의 불교대학을 운영해 참선에 앞서 불법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02)762-0643
▥【박스】해안 스님이 “7일안에 깨쳐라” 한 연유는?
‘사람들은 정진을 오래 해야만 깨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견성은 단시일을 두고 결정내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은 아무리 미련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7일이면 도를 성취한다고 했다. 만일 7일안에 깨치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공부하는 사람의 정신자세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기간이 짧아서 깨치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아님을 알아야 한다.‘
“7일 안에 깨우치라”며 단기출가와 용맹정진을 강조했던 해안 스님(사진)은 ‘7일 정진’을 강조한 이유에 대해 <해안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님은 특히 ‘크게 한번 죽는(大死一番)’ 용맹심을 절대적으로 강조했다. 수행자는 오직 화두 일념에 사로잡혀 옆에서 뇌성벽력이 쳐도 듣지 못해야 하고, 찬 바람이 뼈 속에 스며들어도 추운 것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죽기로써 대들어야 영원한 살 길이 열리지 어설피 살려고 버둥대면 오히려 죽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결심으로 한다면 7일간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며, 생사 일대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