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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여 년간 7대에 걸쳐 흙만 만지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맨발로 흙을 반죽하고 자신의 몸으로 물레를 밀며 나무와 불의 조화를 살펴 가마를 지핀다. 한 줌의 흙은 그의 손을 거쳐 세월의 무게와 진정성을 간직한 조선의 그릇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릇을 빚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나머지는 온전히 자연의 힘”이라고 말하는 김정옥 명장(영남요 대표,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 보유자). 그에게 전통은 당위와 의무로 덧씌워진 형이상학적 개념이나 아스라한 추억의 한 자락이 아닌 현재의 생활이자 삶이다.
“지금이야 명장이니, 장인이니 해서 기술을 인정해 주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쟁이’라고 해서 손가락질 받는 직업이 도공이었습니다. 힘들고 배고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흙을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내 삶이 돼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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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좋아해주는 이유는 바로 이 ‘보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고 소박한 멋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리 선조들의 정성을 담고자 한 노력을 알아준 것이지요. 바로 우리가 전통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고자 하는 마음에서일까. 그의 작업실에는 그의 호를 딴 ‘백산선방(白山禪房)’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비록 몸은 속세에 있지만 그릇을 만들 때만큼은 선방에 앉아 용맹정진하는 스님들과 다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명장의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감히 ‘선방’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무심(無心)에서 탄생하는 것이 도자기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은 그릇을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니만큼, 잡념을 버리고 작품에 몰입하자는 뜻이죠.”
김정옥 명장의 도제 방식에서도 깨달음을 향한 치열함이 느껴진다. 많은 도공들이 오랜 세월 제자를 가까이 두고 가르치는 철저한 도제식 수업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김 명장이 제자를 데리고 가르치는 기간은 1~2년, 길어야 3년을 넘지 않는다. 기초만 튼튼하게 익히고 나면 독립해서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김 명장의 지론이다. 그의 문하에 있을 때도 낮에는 명장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며 기초를 익히게 하고 저녁이면 스스로 만들어보며 문제점을 캐고 해결해 나가도록 한다.
“남의 밑에 있으면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깨달아야 합니다. 스승은 곁에서 제자의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해 주는 보조 역할이죠.”
김 명장과 그의 문하생들의 모습에 화두를 점검받는 수행자와 스승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도자기에서 ‘수식 없는 간결한 곡선’과 ‘순수하고 담백한 삶의 태도’를 읽어낸다. 인간적인 풍모와 수수하고 소박한 형태를 간직한 백자의 전통을 이어 온 ‘백산도자기’에 대해 어떤 이는 “가마에서 나오는 순간 수백 년의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했다. 지금/여기의 작품이지만 거기에는 수백 년 이어져 온 세월의 무게와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는 뜻이리라.
“도자기는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세월에 따라 그 감상이 달라집니다. 오랜 세월 보더라도 싫증나지 않고 정직함과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는 그릇을 굽는 것이 제 평생의 화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겠죠?”
인연을 중시해 사람을 대할 때도 예(禮)와 신의(信義)를 중시하는 김 명장은 틈틈이 충주 미륵사지 마애불을 친견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부처님 앞에서 ‘왜 작품을 하고, 어떤 작품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다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전 제가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욕심 버리고 ‘도자기’라는 화두 하나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 이제 제게 남은 과제인 것 같습니다.”
거짓을 모르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김 명장. 조선백자의 순박함을 닮은 그에게서 전통의 숭고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김정옥 명장의 장인(匠人)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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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정옥 명장은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가업을 이으라고는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좋아해야 배울 수 있지, 남이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 바로 ‘흙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 대위로 복무 중이던 아들 경식(38)씨. 그도 도공의 핏줄을 거스르지 못한 탓일까? 지난 1995년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고향을 찾아 지금껏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8대 도공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160여년 전 5대조 김영수 도공이 지은 망댕이 가마는 현재 경북민속자료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고, 240여 년간 그릇을 품어낸 물레는 여전히 김정옥 명장의 작업실을 지키고 있다. (054)571-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