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씨의 이 같은 경험은 본지가 조사한 불교계 출판사의 계율서 출간 현황에서도 그대로 확인됐다. <사분율> 등의 5대 광율, <범망경> 등의 대승율장 번역서는 동국역경원과 율원, 계율전공자 등에 의해 50여권 발간된 반면, 재가자를 위한 계율해설서는 <재가불자를 위한 계율 강좌>(여시아문) <계율학 개론>(장경각) 등 몇몇 권에 불과했다.
계율해설서의 출간이 부진한 것은 최근 대구 동화사 ‘계율수행법회’, 가산불교문화원의 ‘근대한국불교율풍 진작과 자운율사’ 심포지엄 등이 잇따라 개최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재가자의 지계행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전통의 한국불교계 현실에서 재가자를 위한 대중적인 계율서의 부재는 ‘느슨한 지계행’에 불씨가 되고 있다.
재가자를 위한 계율해설서는 왜 없을까?
파계사 영상율원 율주 철우 스님은 “한국불교계는 ‘깨달음 지상주의’에 빠져있어,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반면 깨닫는 과정에는 방점을 두지 않는다”며 “그러다보니 계율을 가르쳐 줄 스승도 읽을 책도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철우 스님의 지적은 전국의 율원 현황과 계율전공 출가자 수에서도 확인됐다. 현재 율원이 있는 곳은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파계사 등 단 4곳뿐으로, 율장을 공부하는 학인 수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계율을 지도할 율사도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해, 재가자의 지계수행에 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불교계 출판사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내놓는 지적도 대동소이하다.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계율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관련 서적이 출간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필요성’을 못 느끼니 수요가 없고, ‘중요성’을 간과하니 공급도 없는 셈이 됐다.
한국불교출판문화협회 윤창화 부회장(민족사 대표)은 “한국불교의 계율전통이 거의 없어진 현실에서 대중적인 계율서가 출간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며 “출ㆍ재가 모두 계율을 일상생활의 규범으로써 인식해야만 관련 서적이 출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율사와 불교계 출판사 관계자들은 대중적인 계율서 발간활성화를 위해서도 △종단 차원의 재가불자용 ‘계율지침서’ 발간 △계율지도 율사(법사) 양성 △한글 계율용어 해설집 편찬 △계율 관련 법회 및 교육 상설화 △율학연구소로서 율원 위상 강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은 “율장을 절대화ㆍ신비화해 인식하는 계율관이 출ㆍ재가자들이 일상에서 계를 지키는 데 갈등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경전 곳곳에 흩어진 계율 관련 내용을 정리ㆍ요약해 일종의 ‘지계 세행(細行)’인 계율지침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혜능 스님은 그간 개별적으로 활동됐던 계율 관련 종단 기구의 통합운영을 강조했다. 총무원 계단위원회, 교육원 불학연구소, 포교원 신도교육위원회 등이 재가자를 위한 계율지침서 발간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열 운주사 대표는 “율장에서의 일방적인 계율 제시가 지계실천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며 “계율을 현대적 언어로 ‘융통성’ 있게 표현한다면 재가자들도 쉽고 편안하게 계율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철우 여수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