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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룡(巨龍)’의 품에서 가부좌를 틀다
【탐방】‘도심수행도량을 찾아서⑮’ - 동화사 비로암 보광시민선원
한국 최고령 선객 범룡스님 주석, 매주 토 철야참선정진
<서장> 등 선어록, 마음공부 ‘거울’ 삼아 병행




재가선객들이 선원장 수련 스님의 지도로 10월 1일 비로암 보광시민선원에서 토요철야참선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대구 동화사 초입의 비로암. 범천(梵天)을 누빈 ‘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세수 아흔 둘의 범룡(梵龍) 스님은 ‘문 없는’ 조실 방문을 열고, ‘말없이’ 말했다. ‘이 놈들, 이 놈들!’ 토요철야참선정진에 들어간 재가선객들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천리만리 도망간 화두를 다시 붙잡아 들었다.


#‘거룡(巨龍)’의 품에서 가부좌를 틀다



한국불교계의 최고령 선지식인 범룡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동화사 비로암 보광시민선원. ‘거룡(巨龍)’의 품에서 30여 재가선객들은 화두를 들고 있었다. 정진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밀려오는 망상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화두로 혹독히 달궈야 비로소 자기공부가 된다’는 범룡 스님의 경책. 선방 안을 매섭게 휘감았다.

10월 2일 새벽 2시. 토요철야참선 용맹정진의 열기는 한껏 올라 있었다. 전날 1일 저녁 7시부터 시작한 정진은 ‘50분 참선-10분 포행’을 번갈아가며 가열 차게 이어졌다. 빈틈이 보일 눈치면, 선원장 수련 스님의 죽비가 재가선객의 양 어깨를 어김없이 두들겼다.

“말이 필요 없는 공부입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 화두참구지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툭 던진 수련 스님의 말 한 마디. 여지없이 구부러진 재가선객들의 등줄기가 곧게 펴졌다. 다리의 통증도 순간 사라졌고, 무겁게 가라앉은 눈꺼풀은 이내 가벼워졌다. 그래서 일까? 망상에 치인 화두는 곧장 오롯해졌다. 그렇게 50분이 지나자 입승 거사의 죽비 삼성(三聲)이 재가선객들의 치열함을 잠깐 멈춰 세웠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보광시민선원 전경. 사진=김철우 기자



#‘근본’ 깨달으니 어딜 가나 자유로워



침묵을 깨고 대중들에게 “무엇 때문에 사무치게 철야용맹정진의 가부좌를 틀었느냐”고 어렵게 물었다. 화두참구 2년째라는 이두선 씨(66ㆍ대구 칠성동)부터 말문을 열었다.

“사실 ‘공부하라’는 말뜻조차 몰랐어요. 단지 불보살님들의 이름만 부르면서 기도를 했지요. 그러다 ‘부르는 그 놈을 찾으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화두참구에 끌렸어요. 빼도 막지도 못하면서 의심이 나더군요. 그러면서 토요일마다 철야정진을 하게 됐어요.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지만, 용맹정진을 하면서 화두를 꿋꿋이 잡는 힘을 기르게 됐죠. 나름대로 몸부림쳤지요.”

50년 넘게 전국의 선원을 돌며 장판 때를 묻혔다는 홍송근(72ㆍ대구 만천동)씨는 화두참구를 통해 망상을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망상이 아무리 들어와도, 잠깐 들어있다 나가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정진하다가 너무 힘들어 범룡 스님에게 ‘어렵다’고 말하면, 스님은 ‘다 쉬우면 다 성불하지. 부처님 사신 대로 살면 되니까, 다른 생각 말로 화두만 열심히 잡으라’라는 말씀에 힘을 얻었어요. 군더더기 없이 화두공부의 필요성과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셨던 거죠.”

매일 저녁 선원으로 출근(?)한다는 유기태(50ㆍ대구 명오동)씨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다 지방출장이다 하며 사회생활에 치여 살다가, 문득 ‘내가 왜 사는지’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러다 선원에서 화두참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마음속의 미움, 잡념들이 화두 하나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죠. 마음이 순일해지고, 붕 뜬 잡념들이 가라앉게 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내 존재 그 자체로서 행복감을 느꼈고, 모든 것들이 부처님처럼 보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마시고 내쉬는 한 호흡에 모든 것과 한 덩이리가 되는 것을 실감하게 됐어요.”

비로암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상.

보광시민선원장 수련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철야참선정진 중인 재가선객들. 사진=김철우 기자



#‘마음그릇’ 키우는 참선도량



선원장 수련 스님은 지난 1999년 보광시민선원의 문을 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지(正智)ㆍ정견(正見)을 바로 세우는 것이 바른 불교’란 믿음 때문이었다.

“정지ㆍ정견은 팔정도에 입각한 가르침입니다. 수행자가 언제 어디서든 ‘인과(因果)의 두려움’을 깨닫고, 보살로서 대자비심을 얻어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정지ㆍ정견입니다. 열반과 해탈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보광시민선원에서는 ‘부처님 정법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강조한다. 매일 새벽 3시~5시, 8시~11시, 오후 2시~4시 등으로 나눠 자율적으로 정진을 한다. 또 매주 토요일에는 철야로 이어지는 참선용맹정진이 진행된다. 정진은 참선을 비롯해 수련 스님의 <서장> 강의, 다도체험, 108배 예불참회문 독송 등으로 이뤄진다.

특히 선원은 토요철야참선정진을 중요시 한다. 수련 스님은 대중이 함께 하는 용맹정진의 중요성에 대해 “대중의 위신력은 자신의 업도 습력도 녹일 수 있다”며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승인 만큼 대중이 일주일에 한번 모여 정진하는 철야참선은 자기 공부에 점검이 된다”고 설명했다.

1년째 비로암 보광시민선원에서 수행중인 최두봉(73ㆍ대구 남산동)씨는 “대중정진을 통해 10년간 혼자 해온 토굴 생활이 헛공부였음을 깨닫게 됐다”며 “대중정진은 자신의 화두경계를 잘 점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보광시민선원의 철야정진 모습.



#경전과 선어록으로 ‘마음공부 거울’ 삼아 정진



선원 수행 프로그램의 또 다른 특징은 참선정진 이외, <화엄경> <서장> 등의 경전과 선어록 강의도 병행한다는 점이다. 먼저 <화엄경>의 경우, 참선 전에는 <화엄경> 1권씩을 반드시 독송한다. 부처님이 성도한 후에 깨달음을 설한 내용을 담은 <화엄경> 독송이 재가선객들에게 환희심은 물론 신심을 굳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수련 스님은 “<화엄경>은 비록 재가불자들에게 어렵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환희심이 나는 경전”이라며 “신심이 부족하면 화두공부가 잘 될 수없기 때문에 <화엄경> 공부는 신심증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장> 강의도 재가불자들에게 선에 대한 안목을 틔워 주고 있다. 수련 스님이 지도하는 <서장> 강의는 선 수행에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공부법을 알려줌으로써, 재가불자들에게 마음공부를 지어가는 데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선원은 이 같은 경전과 선어록 강의를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서장> 공부가 끝나는 대로, <증도가> <육조단경> <전등록> 등의 선어록강의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 <화엄경> 독송 시간을 늘려 재가선객들의 신심을 더욱 증장시킬 방침이다. (053)982-0223

화두참구는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범룡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범룡 스님에게 듣는 ‘일문일답(一問一答)’



오전 7시. 범룡 스님(사진)은 방문을 열었다.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스님. 최고령 선객의 친견은 그야말로 일문일답으로 진행됐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말씀. 고갱이만 내보였다. 알음알이에 길들어진 기자에게는 청량제였다.

“재가불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화두참구하기가 힘들어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부처님 말씀대로 하면 되지. 지극지성으로 하면 되지.”

“사실 재가자들은 화두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출가자든 재가자든 화두를 놓치는 시간이 있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극지성으로 화두 참구할 뿐이야. 이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거든.”

“재가불자들은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처님에게 매달리곤 하는데요.”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수행이야.”

“화두를 들다가도 잊고 자주 놓치다보면, 퇴굴심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저 잘 할 뿐이야.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야.”

“스님은 <화엄경>을 중시하시는데요, 재가자들에게 <화엄경>공부는 어려워요.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 경전이 어렵지. 그렇게 쉬운가. 그저 많이 읽는 수밖에 없어.”

“재가자들의 공부자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가 하려는 마음을 크게 단단히 먹어야 돼. 뭐든지 쉽게 되려고 마음을 먹으면 안 돼. 남이 하는 것 보면 쉬워 보여도 막상 자기가 해보면 모두 어렵지요. 참선수행자는 화두를 참구하고, 염불수행자는 부처님 명호를 지극정성으로 외야 돼. 그처럼 재가자들도 일상생활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돼.”
글ㆍ사진/대구=김철우 기자 |
2005-10-27 오전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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