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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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핵심 '보시와 지계'
동화사ㆍ본사 주최 계율수행법회 -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율장정신’
각묵 스님.


“율장정신을 바로 알아야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문제점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다.”

9월 24일 사부대중 7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깨달음으로 가는 길-계율수행대법회’ 일곱 번째 논주로 나선 각묵 스님(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은 율장정신의 중요성을 이 같이 강조했다.

스님은 “율장정신은 ‘시(施)ㆍ계(戒) 생천(生天)’으로 압축된다”며, 이는 불제자로서 봉사와 보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 청정성을 회복하는 ‘계’가 삶의 방식에 있어 근본이 된다고 법문했다. 즉 보시와 지계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핵심 실천론이 된다는 것이다.

각묵 스님은 법문에서 앞서 “율장정신이 무엇인가를 규명한 뒤에 현대사회의 특징은 무엇이고, 그 문제점을 어떻게 율장정신을 통해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단초를 찾으려고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각묵 스님은 먼저 “부처님 당시에는 법과 율을 부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며 “불자들은 이를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문하는 각묵 스님.

동화사 계율수행 대법회 장면.


이어 스님은 “법의 해석이 대ㆍ소승과 남ㆍ북방불교 등에 의해 다양하고 복잡한 반면, 율장의 내용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고 전제한 뒤, “적어도 율장정신은 이렇게 구분하는데에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계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남방과 북방의 출가자들은 부처님의 일불제자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 같은 율장정신을 승가공동체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불교의 궁극적 이상인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승가공동체 유지의 기본 정신이 바로 율장이라는 것이다. 먼저 건전한 삶으로서의 ‘도덕성’, 소욕지족과 무소유의 청빈한 삶, 더불어 나누는 삶, 존중, 화합, 평등, 자발성, 믿음, 절차중시, 징계를 통한 청정성 회복을 설명했다.

특히 스님은 율장정신의 첫째 덕목을 ‘도덕성’이라고 강조했다. 계의 의미는 바로 눈 귀 코 혀 몸 의식 등 ‘육근(六根)의 문(門)’을 단속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님은 “율장정신의 기본은 도덕성에 있으며 건전한 삶은 단속에 있고 그 단속의 출발은 마음청결에 있다”고 말했다.

각묵 스님.

법회 장면.


스님은 이어 “단속은 마음을 챙긴다는 의미다. '마음챙김'은 불교 수행의 기본이 된다”며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챙기는 단속에 있기 때문에 '마음챙김'은 율장정신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율장정신에 대해 ‘징계를 통한 청정성 회복’도 강조했다. 초기율장과 경장에서의 바라이목차 어휘를 설명한 스님은 “율장은 마치 설사약과 같다.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거북하게 끌어안고 있지 않게 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참회하게 한다”며 “처음에는 힘들어도 나중에 몸과 마음이 가뿐하게 되기 때문에, 율장은 마치 통변을 유도하는 설사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현대사회의 특징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었다. 스님은 현대사회의 근본이념이 율장정신의 핵심과 같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자유 평등 박애 등의 현대사회 정신은 율장정신과 대동소이하다"며 “불교의 자유는 건전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율장정신으로 본 현대 승가공동체의 문제점에 대해 참가대중들에게 “우리에게 엄격한 지계정신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 “오늘의 승가에게 과연 무소유 정신이 있는가”란 질문도 던졌다.

무엇보다도 스님은 오늘날 한국불교계에 거의 전통이 사라진 포살과 자자법회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안으로 스님은 교구본사 중심으로 결제와 해제 등 1년에 3-4번은 포살과 자자법회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님은 포살과 자자법회의 중요성에 대해 "만약 승가가 포살과 자자법회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이는 승가공동체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스스로 출가자임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스님은 율사스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님은 “현재 율사스님들이 선사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출가자들의 소의율장이 없게 됐고, 제대로 된 율장공부가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스님은 이를 위해 율사스님들이 시급히 소의율장을 종단 차원에서 정하는 한편, 정확한 번역서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리 말해, 율사스님의 역할은 소의율장을 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방안으로 스님은 자운 스님이 번역한 <사분비구계본>을 소의율장으로 제안했다.


▥ 각묵 스님은?


1979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82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제방선원에서 8년 정진하다가 빠알리 삼장을 한글로 옮기려는 원을 세워 10여년간 인도와 미얀마 등지에서 산스크리트와 빠알리를 배웠다. 인도 뿌나대 산스크리트 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역서로는 <금강경 산스크리트 원전 분석과 주해> <아비담마 길라잡이> 등이 있다.

현재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를 맡고 있으며, 지리산 실상사 화림원에 머물며 빠알리 삼장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우경 스님과 허남결 교수.


<논찬>

현대사회 문제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를

■ 우경 스님(동화사 강원 강사)

질문1 : 논주스님은 율사스님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데, 사실 이 같은 제안은 한계성이 있습니다. 가령 종단에서 사미의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율원은 율장에 위배되기에 반대의견을 제시했지만 힘 있는 기관에 의해 무시된 적이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마치 사회에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됐는지를 헌법재판소에서 가리듯이 종헌ㆍ종법이나 종단의 행정이 율법에 어긋나는지를 가리는 힘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각묵 스님 : 근원적인 문제는 종단의 승가공동체에 대한 불신에 있습니다. 승가공동체가 종앙종회, 종무행정을 보는 스님들에 대한 불신이 해소돼야 해요. 또 율사스님들이 율장에 기초한 소신 있는 지적을 할 수 있게 종단은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만약 율장정신에 벗어난 것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하고 필요하다면 종헌재판소 같은 것도 만들어서 고치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질문2 : 부처님 법에서는 폭력뿐만 아니라 성내는 것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을 낸다는 것조차 폭력의 길을 열어 놓은 짓이 되기 때문에 ‘의로운 분노’마저 허용하지 않습니다. ‘정의의 분노’란 단지 증오에 씌워 놓은 가면에 불과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만약 의로운 분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법이 너무 무기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설명해십시오.


각묵 스님 : ‘의로운 분노’란 표현은 불교적이 아닙니다. 불자들은 연민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량심이 바로 불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입니다. 분노보다는 연민의 마음을 갖고, 내 문제로 받아들여 승화시켜야 합니다.



질문 3 : ‘스님이 승용차를 차고 타고 다니면 되는가’란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기 막막합니다. 각묵 스님께서는 ‘우리에게는 무소유의 정신이 있는가?’에서 한국 승가공동체의 재물의 사유화의 심각성을 지적했는데,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있습니까? 또 삼보정재가 힘 있는 몇몇 일부스님에게 집중돼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스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각묵 스님 : 율장에 나와 있지 않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합니다. 초기율장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맞는 청규를 제정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지요. 그 구체적인 모델로 불교권 국가마다 제정된 청규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태국 승가는 원로스님들이 정한 청규를 율장으로서 받아들입니다. 출가자가 담배 피는 것과 커피마시는 것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출가자가 경험하는 지계실천상의 갈등을 풀어줬습니다. 즉 ‘소유는 종단에서 하고, 사용만 출가자가’ 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출가자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계율에서 일어나는 찜찜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출가자들이 당당하게 정진할 수 있게 돕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삶, 율장정신 비춰 반성해야
■ 허남결(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질문 1 : 논주스님께서는 현대사회의 근본이념을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로 압축하고 이를 불교의 율장정신과 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컨대 서양철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자유의 경우 사양적 의미에서는 ‘~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와 ‘~에로의 자유’인 적극적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깨달음의 경지에서나 향유 가능한 불교적 차원의 자유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식의 논리전개 방식은 자칫하면 모든 것을 불교적 사유방식을 대체,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우월감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는데요, 스님의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각묵 스님 : 출가자로서 초기불교 원리주의자로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워낙 폐쇄적이고 현대사회의 격리된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실정으로 보고 있어, ‘이것은 틀렸다’는 점과 불교정신이야말로 현대를 대표하는 자유 평등 박애 등을 대변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 2 : 율장의 기본 정신에 비춰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과 해결책을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윤리적 차원의 접근이란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직이나 제도 단위의 논리와 힘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묵 스님 : 집단적 도덕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결국 승가 국가 가정 기업이든 집단적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권위에 승복하고 감복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율장은 권위에 대한 승복을 정리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인격성과 고귀한 권위 등에 감복된 것이 바로 율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 없이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전제국가형태로 가는 유혹의 길이 열리는 것으로 봅니다. 불자 스스로 자기 삶을 율장정신에 비춰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3 : 생명윤리문제는 요즘 관심이 큰 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일고 있는 생명공학의 이상열기 분위기에 적지 않은 우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보는 불교계의 시각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적 의미의 생명은 수정란 단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각묵 스님 : 사실 이 문제는 내 능력 밖에 일입니다. 초기불교를 전공한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어머니의 뱃속에 입태(入胎)하는 순간부터 생명으로 봐야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상좌부의 아비담마에서는 심장사(心腸死)를 사망으로 봅니다. 그래서 뇌가 죽어도 심장이 뛰고 있다면 아직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제 상식으로 본다면, 수정된 지 14일, 죽기 전의 14일을 따로 떼어내 그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인 생명윤리 논쟁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화사=글 김철우/ 사진 고영배 기자 |
2005-09-25 오후 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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