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공부는 일상을 벗어나 호젓한 산사에서 조용히 자신을 관조하는 고상한 수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선(禪) 맛을 아는 것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법인연을 만나면 주어진 현실에서 고뇌가 멸하고 마음과 몸이 밝고 좋아져 하루하루가 즐겁고 희망적이라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참뜻이고 진리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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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 앞에서면 누구나 피교육생이지만, 참선사상을 교원직무연수에 도입시키는 우곡선원의 교원직무연수프로그램은 놀랍고 거침없었다. 불교교리를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대자대비의 위대한 삶과 행복을 재발견하는 직무연수프로그램은 방일을 허용하지 않았다.
처음 맛보는 좌선은 고요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 복잡해지고 영화를 몇 편이나 본 듯한 기분이었다. 또 발은 저려오기 시작하고 허리는 점점 무겁게 느껴졌으며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들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잠은 오지 않는 것일까?’ 좌복 위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란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다. 그만큼 살아오는 동안 고요에 익숙해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순간들을 통해 불교진리의 위대함에 새삼 눈을 뜨게 됐다.
선원에 도착해 보면 소임자와 모든 회원님들의 밝고 아름답게 웃는 얼굴과 친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스스로 행하는 자세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분들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기에 가능한 것일까? 직장에서 정상 근무를 하고 늦은 시간, 한참 나른하고 TV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인데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바른 자세로 좌선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아!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탄성이 나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스스로 정진하는 모습들을 보니 ‘바로 여기 이 순간이 극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교원직무연수가 끝나고 초심자 참선교육에 입문하여 계속 참선공부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난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정(靜)과 동(動)을 넘나들며 마음의 힘과 기상을 북돋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곡선원의 독창적인 참선수행법의 중심에 실상관법(實像觀法)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한참 뒤였다. 소아(小我)에 묶여 번민하는 중생심을 싸잡아 피안의 언덕에 내려놓을 즈음에 어렴풋이 실상관법의 효력을 깨닫게 되는 것 또한 미묘했다. 고답적인 수행방법과 종교행위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자아(自我)를 재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보살의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불연(佛緣)임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게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