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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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은 청청한 마음과 계행 지니는 길
동화사ㆍ본사 계율수행 대법회 여섯 번째 마당


동화사와 본사가 개최한 계율수행 대법회 여섯 번째 마당.
계율은 불교의 윤리와 도덕이며, 부처님의 교육관입니다. 아이의 습관과 버릇을 잡는 가정교육과 같은 것입니다.
계는 행동과 언어로 악을 짓지 않고 방지하고, 율은 부처님 제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으로 허물과 악을 억제하고 조복하여 대중에 수순하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고 행하는 이유는 좋은 습관을 지니고 나쁜 습관을 버려 청정한 마음과 계행을 지니기 위해서지요.

계율은 불법이 오래 세상에 머물기를 바라는 사리불의 청으로 시작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명예와 이익에 끌리게 되면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잘못된 일을 범한 것이 없다. 떨어지지 않은 새 옷을 미리 꿰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여래는 때를 알고 있으니, 모든 비구들은 이 게송을 의지해서 수행하라.” 하시고 ‘입으로 말조심, 생각과 나쁜 짓 하나 없이 세 가지의 하는 짓이 모두 깨끗하면 이렇게 닦는 것이 열반의 길이로다’라는 게송을 읊었습니다.

<능엄경> ‘제6 수도분’ 가운데 섭지궤칙과(攝持軌則科)에 출가자와 재가자가 지켜야할 율의로써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음란하지 말라. 둘째 훔치지 말라, 셋째 살생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자가 몸으로 외형적인 행위에만 국한하지 않고 뜻으로 범하는 것까지 금하셨습니다. 출가자에게 있어 몸과 마음으로 모두 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가 불음(不?)인 것입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는 정해진 배우자 외에는 부정한 남녀의 애정관계를 갖지 말라는 불사음(不邪?)입니다.

불사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을 물질로 바라보는 물질화입니다. 인간의 존귀함도 잊어버리고 인간 자체가 물질화된 것이지요. 가장 적나라한 예가 성의 상품화입니다. 인간이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성의 노리개로 전락되어 금전으로 매매되는 세상이 된 거에요. 따라서 이 계는 재가자에게 문란한 성관계를 금지하는 개인의 수신 차원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법문하는 철우 스님.
그러나 성문제에 국한시켜서는 해결책이 구해지지 않아요. 궁극적으로 인간 심성의 존엄성을 회복하여 상호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간관계를 형성해 내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일체의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녀야 할 계율이 불음·불사음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입니다. 이는 불교인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전생의 업보 때문에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는 <능엄경>의 부처님 말씀은 이 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측면보다도 오히려 사회적 윤리성이 강하게 나타나므로, 이것도 역시 사회적인 가치로 인식해야 합니다.

욕심내어 내 것만을 고집한다거나 다른 이의 공을 훔치는 것 등도 투도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함께 힘을 합쳐 만들고 고루 나눠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일으키고, 이 욕심이 만족되지 않을 때는 성을 내고 훔치고 빼앗게 됩니다.

정당하게 나누어야 할 것을 나누지 않는 것, 다른 이의 곤궁을 외면하고 혼자만 살아나가려는 탐욕 등도 투도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이란 나 하나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는 무수한 중생이 직·간접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일한 만큼 정당한 몫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일하지 않고도 남보다 잘 사는 사회라면 올바른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 계목인 불살생(不殺生)은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개인 차원의 소극적 금계가 아니라, 일체 생명의 가치가 제한 없이 발휘되는 세계를 이루라는 적극적인 면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자각하여 보다 큰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가르침이지요.

그러나 작은 나에 탐착하여 일체 생명의 고귀함을 망각하는 것이 중생의 삶입니다. 부처님은 “살생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한 생명이 다치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이 상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즐기기 위하여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맛을 위하여 도살을 하는 등 인간의 횡포는 끝이 없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온갖 살상용 무기가 양산되고 이윤을 위해 몸에 해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고, 공해산업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일체 생명의 내부에 깃든 부처님 성품에 대한 가증스런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불망어(不妄語)는 대망어라 하여 깨닫지 못 한 이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깨달았다 거짓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의 노자는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라고 했습니다. 즉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하여 말로써는 진실을 드러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닌 것입니다.

말은 하나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온갖 언어를 매개체로 삼아 우리의 뜻을 전하지요. 그러면서도 말이 가진 한계를 느끼지 않고 전능의 권위를 부여하거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합니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온갖 정보의 홍수를 가져왔으나 진실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어요. 오히려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을 말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은 자신이 말에 책임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말로써 폭력적인 언어를 정화해야 하고, 진실된 말로써 부처님의 말씀과 뜻을 닮아나가야 합니다. 신구의(身口意)의 삼밀(三密)에서 구밀(口密)이 바로 이 뜻입니다. 진실된 말이 가득찬 세상, 서로 믿을 수 있는 세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불자들은 계율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율은 어렵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아요. 바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있습니다.

많은 불자들의 동참 속에 치러진 계율수행 대법회.
계율을 지키는 일은 불자 모두의 일입니다. 일부 전공자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자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릴 이유가 없지요. 언제 어니서나 몸과 마음으로 실천해야 살아있는 계율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잘 지켜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을 범하지 말라. 계율은 도에 들어가는 기초요 번뇌를 없애는 묘한 길이며, 열반의 안락한 곳에 이르는 평탄한 길이니라. 그러므로 계율을 가지는 이에게 큰 공덕이 있느니라.”라고 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경전의 곳곳에 드러나 있어요.

또, 경전에는 계율을 잘 지키면 열 가지 이익이 있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첫째 승가를 거두어 주고, 둘째 승가를 기쁘게 해주며, 셋째 승가를 안락하게 해줍니다. 넷째 믿음이 없는 이는 믿게 하고, 다섯째 믿음이 있는 이는 더 깊게 하고, 여섯째 조복하기 어려운 이를 조복하여 수순하게 하고, 일곱째 부끄러워하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여덟째 현재의 번뇌를 끊고, 아홉째 미래의 번뇌를 끊고, 열째 정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열 가지 이익을 통해 개개인의 수행을 위하여, 교단을 청정을 위하여, 또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정법이 영원히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계율이 제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법을 영원히 머무르게 하고 더욱 증장시키기 위해서는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계율이 지켜지지 않고 지키려는 노력조차 없다면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실천하는 가운데 진정한 지계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지요.

요즘, 계율을 현대사회에 맞게 고쳐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1결집때 이루어진 율장정신을 모르는 말이에요. 계율을 바꿔서는 안됩니다. 만약 율장에 없는 것이라면 청규를 만들면 됩니다. 율장정신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시대에 맞는 청규를 만들어 시행하면 되는 일입니다.


법회 내용을 정리하는 불자들.



◇ 철우 스님의 제안

삼귀의와 오계는 불자의 기본조건입니다.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하지 않거나 계를 지킬 자신이 없다고 하여 가려서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모든 계를 받으려면 계체(戒體), 다시 말해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계를 지니기에 앞서 불교 입문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믿음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삼귀의가 이루어지면 다음에 오계를 받아 지녀야 합니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가 그것입니다. 불자들은 오계가 행동을 제약하는 규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계의 의미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현재의 삶에서 한걸음 나아가 진정한 불자가 되라는 것이에요.

오계를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불자들이 적지 않아 계목을 적극적인 행으로 옮기기 위해 제가 임의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첫째, 불살생(不殺生)으로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자비종자(慈悲種子)가 끊어지고 사람들이 보면 싫어하는 과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자비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 불투도(不偸盜)로 ‘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지 말라’ 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복덕종자(福德種子)가 끊어지고 박복한 과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셋째, 불사음(不邪?)으로 ‘간음하지 말라’ 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청정종자(淸淨種子)가 끊어지고 역겨운 외모를 받는 과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청정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넷째, 불망어(不妄語)로 ‘거짓말 하지 말라’ 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진실종자(眞實種子)가 끊어지고 신용을 잃는 과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불음주(不飮酒)로 ‘술을 마시지 말라’ 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혜종자(智慧種子)가 끊어지고 바보가 되는 과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 철우 스님은
1957년 청도 적천사에서 출가, 67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으며 68년 해인총림 율원을 수료했다. 90년 자운 스님으로부터 계맥을 이었다.

현재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이며 조계종 계단위원회 위원, 단일계단 구족계 존중아사리, 제18회 단일계단 유나, 법계위원회 시행위원, 의제실무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분율> <사미율의> <사미니율의> <승갈마> <식차마나니계본> 등 다수 있다.





◇논찬

질문하는 안양규 교수.
덕문 스님(파계사 강원 학감)

질문1 : 계사 스님들은 ‘앉아서 계를 받고 서서 파할지라도 계를 받는 데 무한한 공덕이 있다’며 수계를 권합니다. 가능하면 계를 범하는 사람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계율을 엄정히 지키게 하는 것이 계율의 목적일 것입니다. 환계법(還戒法)에 대해 일러주십시오.


철우 스님 : 계율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가정교육을 함으로 해서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할 때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아요. 계율은 죄를 짓기 위해 받는 것이 아니고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계를 어렵게 보지 말고 생활 속의 수행으로 이해하세요.

만약 계를 범했다면 그 즉시 참회를 하고, 다시 계를 받으세요. 계는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겼을 때 진정한 참회와 함께 지계를 재다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이 지계수행입니다.

환계라는 것은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환계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를 받을 때 행하는 연비는 계를 지키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는 계를 받았다가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환계를 합니다. 절에서 단기출가하는 날 계를 받고 집에 돌아갈 때는 환계를 하는거지요. 그러니 평생 계를 어기는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5박6일 수련대회를 할 때 회향하는 날 계를 줍니다. 속세로 계를 어기러 가는 사람에게 계를 주는 셈이지요.


질문2 : <4바라이>에서 말하는 불살생과 <능엄경>의 4종율의에서 언급된 불살생의 의미, 그리고 4바라이에서 말하는 불망어와 사종율의에서 언급된 불망어의 차이점에 대하여 지적해 주신다면 수행자들이 율장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철우 스님 :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4바라이의 불살생은 재가자가 지켜야할 계율로, 내가 내 손으로 죽이지 않고 시켜서 죽이지 않으면 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의로 죽이지 않아도 그 또한 계를 어기는게 아니지요.
그러나 4종율의에서의 불살생은 몸으로 짓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살생까지도 금하는 확대된 의미의 계율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율의 목적입니다. 계율은 범했다고 해서 벌을 받는 식의 단순한 데 뜻이 있지 않습니다. 계를 받아 지키도록 하는 것이 계율의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3 : 법주 스님께서 직접 계율을 공부하시고, 수지하시는 과정에서 체험하신 부분 가운데 후학들의 신심과 정진에 도움이 될 내용을 들려주십시오.

철우 스님 : 스님들에게도 권태기가 있습니다. 출가한지 10년 쯤 되면 ‘내가 무엇을 했는가’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오지요. 나의 첫 번째 권태기는 구족계를 받을 때였습니다.

해인사에서 계를 받았는데, 자운 스님이 비구계본 책을 주시면서 그것을 외우라고 하셨어요. 권태기여서였는지 안외웠지요. 그랬더니 자운 스님이 계를 받고 싶으면 3천배를 하라고 해요.

나는 계를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동기인 도반도 못받게 생겼어요. 어쩔 수 없이 3천배를 해야 했는데 할 일이 막막해요. 처음에는 정신없이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밥때를 알리는 종소리가 가장 반가운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 날은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였어요. 그렇게 코를 꿰는 것처럼 계를 받았습니다.

해인사 율원에서 공부하면서 율장을 접하게 됐습니다. 율장을 보지 않았으면 부처님의 자비를 알지 못했을거에요. 우리는 조그만 모임을 만들어도 먼저 규약부터 만듭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계를 제정하면서, 계를 제정토록 만든 이들을 자비롭게 용서했습니다. 중생의 자비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니까 그런 것이란걸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계를 받지 않았다면 중노릇 못한 것을 후회하며 평생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하는 덕문 스님.
안양규(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질문1 : <범망경>에서는 출가자를 중심으로 하여 불사음, 불투도, 불살생, 불망어 등의 순서로 살펴보고 있는데, 오계와 비교해보면 약간의 차이가 납니다. 오계의 마지막에 있는 불음주가 <범망경>에는 빠져 있고 나머지 네가지 계의 순서도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부연설명해 주십시오.


철우 스님 : 제 말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공부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완전한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범망경> 보살계는 대승계이고, 재가오계는 기본적인 수행덕목입니다. 차이가 없을 수가 없지요. 대승보살계를 엄정히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을 때 가능합니다. 재가불자가 지키기에게는 무리가 있어요.

오계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목이 있는데, 대승보살계는 술을 팔지도 말라고 했어요. 경전에 술 한 잔 권했던 인연으로 오백생에 손 없는 과보를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승보살계는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술장사까지 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범망경> 계목이 우리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이해하길 바랍니다.




질문2 : <범망경>에서는 육식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반면, 초기경전에서는 조건부(3정육, 5정육)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철우 스님 : 부처님이 5정육을 허용한 것은 병자에 한해서입니다. <사분율>에 병든 비구를 제외하고는 안 된다고 돼 있어요.
극단적인 견해를 지녔던 제바달다의 식견으로는 5정육을 취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깨달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계율이 어떻게 제정되었는가를 보면 이해가 쉬울거에요. 계는 중생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제하고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질문3 : 붓다는 살생과 관련한 직업은 갖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불자 중에는 횟집을 하는 등 생업으로 그런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활의 방편으로 이런 직업을 갖고 있는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철우 스님 : 생업으로 횟집을 하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과를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살생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눈빛이 다릅니다. 5년 정도 살생을 하면 눈에서 살기가 돋아요. 자신도 모르게 눈빛이 변하고 맙니다.

악연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어 있어요. 과보를 좋게 받는 수행의 방편이 바로 지계입니다. 다시 말해 양심적으로 사는거에요. 생업을 하되 항상 자비한 마음을 가지세요.

단, 스님들이 고기를 먹어서는 안됩니다. <사분율>에 의하면 안 먹는 것이 맞아요.
재가불자도 오계는 어떤 경우가 있어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 수행입니다. 재가불자들은 스님이 계를 어기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지계정신을 늘 가져야 불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글=박봉영/ 사진=박재완 기자 | bypark@buddhapia.com
2005-09-15 오후 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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