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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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고, 삶고, 뜨고 모두 수행이죠
[산문밖의 선]송담한지 대표 류행영


경기도 용인 수지의 아파트 숲을 헤치고 신봉동 북동쪽 끝자락에 다다르자 구불구불한 좁은 비포장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나타나는 것은 태봉암이라는 작은 암자와 그 앞에 있는 허름한 비닐하우스 두 동. 그 사이로 고희를 넘긴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지난 8월 5일 한지장(韓紙匠)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 예고된 류행영 씨(73)이다.

1400여년을 이어온 전통 한지 제작 비법을 전수한 장인의 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초라한 비닐하우스에서 류 선생은 ‘먹고 자며’ 한지를 뜨고 있었다.

자기만의 노하우 외발뜨기로 떠낸 종이가 앉은 발을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있는 류행영씨.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등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한 번 더 만진다 해서 ‘백지(百紙)’로 불린 것이 한지다. 그만큼 한지를 생산하는 과정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류씨는 이 모든 과정을 전통 방식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여러 과정을 거치는 한지는 만들 때 잠깐 이라도 욕심 부리며 잔꾀를 부리면 여지 없이 원하는 종이가 안 나와요. 수행자가 끝을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 전에 한배씩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리듯이 종이 만들 때도 과정마다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삼매에 들다보면 내 자신이 없어지고 종이와 내가 일체가 됨을 느낍니다.”

양지(洋紙)에 밀려 한지 수요가 줄어든 데다, 가격이 비싸 돈을 번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에서 류씨가 전통 한지를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질 낮은 개량한지는 보존 상태도 짧고 종이의 격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전통 한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무구정광다라니경>이나 <직지>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등의 한지가 1000년 이상 온전하게 보존된 반면, 500여년밖에 되지 않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부식 우려가 심각해 보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양지와 한지의 질적 차이는 뚜렷하다. 전통 한지는 중성지로서 산화되지 않고, 섬유조직이 사방으로 결합돼 매우 질긴 특성을 갖는다.

닥나무가 인고의 순간을 거쳐 하얗고 윤기 흐르는 한지로 태어나는 과정이 마치 그가 전통한지기술 보존을 위해 바쳐온 자신의 인생과 닮아서일까.

한지를 한 번 만드는 데는 강도 높은 노동과 지루한 기다림이 20여일(한지 100근 기준) 지속되지만 류씨에게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류씨의 한지제작 과정은 그만의 전매특허 노하우는 바로 외발뜨기에 있다. 이것을 할 때는 고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하나의 끈에 묶여있는 틀 위에 발을 얹고, 두 손으로 틀을 움직여 앞물을 떠서 뒤로 버리고 옆물을 떠서 반대되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두께를 조절하는데, 이때만큼은 모든 시름과 번뇌가 다 달아나 버리고 비로소 종이삼매에 들게 된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류씨지만 기술보다 그가 더 중시하는 것은 바로 정성이다.

한지 만드는 일은 언제나 정성과 주의가 필요하다. 잠깐이라도 욕심 부리면 원하는 종이가 안나와 과정마다 온힘을 쏟아야 종이와 일체됨을 느낀다는 류행영씨.
“전통한지는 정성이야. 정성 없이는 좋은 종이를 얻을 수가 없어요. 종이를 쓸 사람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질 한번이라도 더해줘야 좋은 종이가 나오지. 대충대충 쉽게 하려다보면 종이의 질이 떨어져”

류씨가 한지 장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그의 나이 19세 때, 개울가에 천막만 치면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생각에서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제일먼저 그는 ‘화선지 잘 뜨는 이’로 통했던 전북 완주의 김갑종 선생(2001년 작고)을 찾아갔다. 점잖고 자상한 스승은 류씨에게 전통 한지제법을 꼼꼼히 사사했다. 하지만 전통 한지 장인으로서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마진이 너무 적어 한때 한지 일을 접고 이화여대 약초원에서 관리인 노릇을 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은 전통 한지의 맥을 잇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경기 마석에 있는 낡은 제지공장을 인수해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는 일본으로 한지 수출 길이 열리는 등 일이 잘 풀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한일관계가 급랭, 수출길이 막히고 공장이 부도나고 말았다.

어려움에 처한 류씨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는 경기도 용인의 태봉암 주지 스님이다. 스님은 속가에서 인연이 있었던 류씨에게 태봉암 앞의 토지를 내주고, 잿물을 만들 수 있는 식물과 닥나무 재배를 도왔다.

독실한 불자인 아내 이경자씨(51) 또한 닥나무 껍질을 벗기는 작업 등을 도우면서 남편의 재기에 힘을 실었다. 이씨는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남편이 전통을 지키겠다고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며 “아마도 부처님 가르침대로 마음 비우고 욕심 없이 살려 노력했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을 도와가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가 돈을 벌고픈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 한지의 가치를 알림으로써 시장을 확대해볼 요량으로 류씨는 직접 박물관과 대학교 등을 대상으로 영업에 나서보기도 했다.

하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대가로 뇌물을 원하거나 일정액을 학교에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세태를 접하고는 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자존심은 전통한지를 이용하려는 이들과의 타협을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그였지만, 그에게는 돈보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먼저였다.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우직하게 평생 돈벌이 안 되는 일을 하며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한지장 분야 최고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류씨는 이제 전통한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는 일에 나설 생각이다. 가짜 전통한지가 판치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서다.

“황촉규로 만든 닥풀을 사용해서 한지를 만든다고, 저마다 전통한지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제대로 된 한지를 만들려면 잿물부터 바로 만들어 써야 해요. 예부터 잿물은 목화대렇賓畇酉볏짚 등으로 만들었거든. 그런데 그게 요즘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보니 양잿물을 사용해도 별 문제를 안 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양잿물을 사용하면 섬유조직이 약해지고, 한지에 독성을 남겨 참다운 전통한지를 만들지 못해요.”

더디고 힘든 길이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디뎌온 그 마음이라면 신라인의 한지를 뛰어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



글=박익순ㆍ사진=박재완 기자 |
2005-09-16 오전 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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