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먹지 않는다"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것을 선종승가에서는 청규라 말합니다.
청규는 대소승의 경론과 율장에 그 근거를 두고 박약절충(搏約折衷)하여 제정됐습니다. 때문에 청규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먼저 대소승 율장의 성질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중국 선종의 소의 율장인 <사분율>과 <범망경>의 구성, 계율의 정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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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의 <사분율>과 대승의 <범망경> 보살계는 청규의 소의경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범망경>은 보살도를 수행하는 보살이 지켜야할 금지조항인 섭율의계(攝律儀戒), 일체의 모든 선업을 권장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일체 중생을 위해 이로운 행을 실천하라는 섭중생계(攝衆生戒)의 사상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범망경 보살계는 계의 사상을 담은 율장이지 율의 사상을 담은 율장은 아닙니다.
<범망경>의 보살계 사상은 율장의 계율 조항에서 부족한 모든 도덕적인 사상을 보충해 주는 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규에서 소승의 <사분율>과 대승의 <범망경>을 수지하는 것은 보살계의 정신으로 <사분율>을 지키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율장의 목적은 정법구주(正法久住)에 있습니다. 법은 불교입니다. 초기 비구승가는 출가하여 불타의 법을 듣고 성도(聖道)를 완성시켰습니다. 승가는 불도완성의 도량이며 불도실천의 현장입니다. 율장은 승가를 호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청규(淸規)’란 선종의 총림에서 수도하는 청정한 많은 대해중(大海衆)이 서로의 불도 완성을 위해 지켜야할 규구준승(規矩準繩)을 말합니다. 선종사에 있어서 승단의 생활규범을 제정한 청규의 출현은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청규를 처음 제정한 사람은 중국 당나라 중엽 백장산의 대지회해(大智懷海) 선사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백장 선사가 제정한 ‘고청규(古淸規)’는 당말 5대 사이에 모두 없어졌습니다.
북송 숭령 2년(1103) 자각종색(慈覺宗?) 선사는 백장 선사의 ‘고청규’ 사상을 부흥하고자 당시 총림고찰을 방문해 행법격식(行法格式)의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해 진정부 홍제선원에서 청규 10권을 찬술했습니다. 그것이 <선원청규>로서 현존하는 청규로서는 최고(最古)의 청규입니다.
<선원청규>를 비롯해 송ㆍ원ㆍ명ㆍ청대에 성립된 중국의 제 청규 및 청규의 주석서는 9종입니다. <선원청규> <입중일용청규> <입중수지> <총림교정청규총요> <선림비용청규> <환주암청규> <칙수백장청규> <총림양서수지> <백장청규증의기> 등 9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청규는 ‘선원청규’ <총림교정청규총요> <선림비용청규> <칙수백장청규>의 4종입니다.
청규의 내용에 따라 <선원청규>와 같은 호법청규와 <칙수백장청규>와 같은 호국청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협의의 청규는 <입중일용청규>와 <입중수지> <환주암청규> 등 입니다. 협의의 청규는 청규의 내용이 총림의 전반적인 규범이 아닌 어느 특정 선원의 규범이거나 일상의 의식에 범위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광의의 청규는 총림 수행 전반에 관한 종합적인 청규를 말합니다.
청규는 율장과 성질이 같아 총림의 수행자들을 보호하고 선종교단의 유지존속을 위하여 범계자를 처벌하고 재판하는 조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규의 내용은 <사분율>의 바라제목차인 지지계와 건도의 작지계를 의미합니다.
초기 청규의 내용을 가장 잘 전해주고 있는 <선문규식(禪門規式)>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문규식>이란 제목 △율사로부터 선원의 독립과 청규의 제정 △도안자를 장로라고 칭하고 방장에 거주하게 함 △불전을 짓지 않고 법당만 둠 △승당을 설치하여 대중 함께 거주 △장로의 상당설법 △재죽의 법식 △보청(공동작업) △중승의 직무인 십무 설치 △규범을 범하고 승당생활을 어기는 자에 대한 벌칙 △백장회해에 의한 선문의 독립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항목을 참조해 보면 법당 설립과 승당생활의 의한 직무 역할, 보청 등이 율장과 비교해 지범개차(持犯開遮)의 해석에 커다란 변화를 보여줍니다. 청규가 범계자에 대한 징계갈마를 어디에 근거해 시행하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범계자에 대한 벌칙은 오히려 율장의 내용보다 엄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네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청정한 대중을 더럽히지 않고 공경과 신뢰를 내게 하는 것입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착하지 않으면 같이 살지 못합니다. 율장에 의하면 범계자는 계단법으로 다스려서 승원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승려의 품위를 손상치 않고 불교의 체제에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관청이 소란하지 않고 감옥이나 송사 즉 시비가 줄어듭니다. 넷째는 밖으로 허물이 새지 않고 종문의 기강이 잘 보호됩니다. 이 벌칙의 내용은 후대에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청규의 성질이 율장의 바라제목차와 건도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선종의 율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백장 선사는 율장이라 부르지 않고 청규라고 했을까요?
율장의 조문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율장 불개변(不改變)의 원칙에 의해 고칠 수 없습니다. 초기 교단에서는 지범개차에 합법적인 응용을 위해 정법(淨法) 정어(淨語) 정인(淨人)의 방편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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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 선사의 기본사상은 후대에 성립된 제 청규에서 그 전승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종색은 “참선문도는 계율을 첫째로 삼는다”라고 하며 엄정한 계율의 수지 없이는 삼계의 모범인 불조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계율의 강조는 선 수행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계학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총림을 유지하기 위해 중승이 청규의 근본인 계율을 잘 수지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 조계종은 명칭 자체가 6조 혜능 스님의 사상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려 시대를 거쳐 종파가 다양하게 번성했는데 조선조에 와서 종파가 통폐합됩니다. 자의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의한 통폐합이었습니다. 태종 때는 11종을 7종으로, 세종조로 가면 7종을 선교양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선교양종으로 바뀌지요. 일제시대 때 조선불교 조계종으로 이름을 찾은 것이 광복 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청규가 전해진 것은 보조 스님 무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보조 스님이 송광사에서 정혜결사했을 때 <계초심학인문>의 내용을 보면 <선원청규>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태고 보우 선사 때 백장청규를 간행했다고 하나 서문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총림의 운영과 청규의 시행은 없었으며 선종이 주도한 한국적인 선원 청규가 유통됐습니다.
우리나라 조계종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선종 교단이 독립유지된 것이 아닙니다. 여건상 중국과 같은 총림 청규를 시행할 수가 없어 규약 정도로 제정되어 시행된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계학 정학 혜학의 3학을 치우침없이 하는 중국 총림청규의 기본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늘날 조계종 총림의 설치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현행 총림의 규정은 본사 규모에 따라 종무소를 포함해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등을 별도로 설치하고 있습니다. 수계를 위한 기본 교육을 받은 후부터 수행진로는 선택 사항입니다. 선객을 수행하거나 경전 연구를 하거나 종무행정 또는 율장 연구 등을 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선원청규’에는 개인의 선택 사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총림 대중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해탈과 총림의 유지 발전을 위하여 계율의 수지는 승가 본연의 의무입니다. 선정을 익히고, 부처님의 성교를 수호하고 그리고 맡은바 소임에 충실하여 종무행정 계율 선정 교학 염불 등이 하나가 되는 통일된 수행을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중국 청규에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경전을 보지 않고 참선만을 한다든가 참선을 하지 않고 경전만을 연구하는 등 임의적이고 편파적인 수행은 없었던 것입니다.
청규에는 선(禪)이다 교(敎)다 하는 선교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화엄이나 반야를 전공한 수행자는 재가인들에게 강의를 했는데 그들을 ‘화엄두(華嚴頭)’ ‘반야두(般若頭)’라고 불렀습니다.
불멸 직후 오백결집 때에 장로들이 승원을 수리했던 것처럼 백장 선사의 보청 정신에 의해 총림 대중은 나무를 베고 장원에 나가 일을 하고 물을 긷고 자급자족을 위한 정신으로 노동과 수행의 일체를 몸소 체험하여 왔습니다.
조계종 종헌에 보면 청규는 하나의 의식으로 취급되어 있습니다. 너무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헌종법이 아무리 상위법이라 할지라도 근본사상은 율장을 우선할 수 없습니다.
종헌종법이 율장과 청규의 근본사상을 벗어난 별개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청규사상을 위배하게 되어 교단의 정체성에 문제가 야기됩니다. 이러한 내용의 성격에 의하여 현재의 종헌 종법을 검토해 보면 조계종의 종헌 종법은 조계종의 청규로서 모두 청규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혜 스님은
1961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63년 해인사 승가대학, 72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2003년 일본 대정대학 불교학박사를 취득했다. 동국대 정각원장,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 중앙종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
2004년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지관 스님으로부터 율맥(律脈)을 전수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교수, 대구 대각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고려판중첨족본선원청규> <고려판선원청규역주> <율장> 등이 있다.
■ 논 찬
시대 변한다 해도 근본사상 잊지 맙시다
유진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질문 1:기존의 어떤 율장과 법규가 선원생활에 방해가 되었기에 청규를 제정하게 되었는지요?
법혜 스님:저는 율장의 어떤 조항이 산승생활에 많은 방해가 되었는가를 고민했을 때 처음 백장 청규 제정 배경과 조건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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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사회상황에 맞게 자급자족을 위해서 노동을 하게 됐습니다. 율장에서 금하고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스님이 직접 노동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청규가 제정됐다고 생각합니다.
질문2:지금 승단에서 쓰고 있는 계율과 청규가 이 시대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법혜 스님:상당히 심각한 질문입니다. 저는 율장과 청규라는 것은 승단과 총림 유지 존속 발전을 위한 금율과 준수조항이라 생각합니다. 변할 것이 있고 변하지 않을 것이 있는데 부처님과 조상이 남긴 근본사상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율장은 대장경 안에 남아 있습니다. <사분율> 수계의식 근본사상 계율조항 등을 승가의 귀감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대변화에 영향을 받는 청규는 시대에 따라 묻혀서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장은 정법을 쓰는 것입니다. 조계종에서는 기존의 청규를 보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다 안 맞다 판단은 내리지 않겠습니다.
질문3:강원이나 선원에서 정진하다가 몸이 아파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14~15시간씩 참선하다보니 오온의 부조화로 병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자들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기존의 계율이나 청규가 바뀌어야 될 것은 없는지요?
법혜 스님:출가자가 오온의 조화를 잘 다스리지 못해 병을 얻었다는 것은 출가수행자의 실수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자기 실수뿐만 아니라 공업(共業)의 상태에서 사고나 음식물 공해로 많은 사람들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선원청규>에 보면 연수당이 있습니다. 연로한 스님이 수행을 못하고 병나면 연수당주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항상 수행으로써 자기 몸을 간수해라, 시봉하는 사람은 항상 자애로써 잘 보살펴라’라는 연수당 규약이 있습니다.
부처님도 나중에 편찮으셔서 아난존자에게 가사를 외겹으로 접어 펴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로병사 속에 살지만 생로병사를 초월하라는 것이 불교의 건강 유지법입니다.
“마음하나 잘 챙기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선원의 험한 수행을 말했는데 부처님은 ‘위법망구(爲法忘軀)’라 해서 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을 잊으라 했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위해 ‘위구망법(爲軀忘法)’ 하면 부처님이 뭐라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하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선원에서 좋은 수행 방법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종권에 끄달리지 않으려면 계율 더 알아야
신성현(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질문 1:스님께서는 청규가 <사분율>과 <범망경>을 근본사상으로 제정됐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즉 보살계의 정신으로 사분율을 지키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살계와 <사분율>이 배치되는 경우 청규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법혜 스님:보살계의 정신으로 사분율 지키라는 말의 뜻은 <사분율>은 율이고 <범망경>은 계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율장에 비구는 자율적인 계의 정신으로 타율적인 율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율적인 계의 정신이 없으면 타율적인 율을 피해나가면서 저지를 우려가 있습니다. 계의 사상이 아니면 율을 보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의 정신이 결여된 율은 한갓 법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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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님들도 먹는 음식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것 같은데 절에서 수행 중에 건강식품을 찾거나, 건강을 핑계로 한 육식은 안 된다는 것이 <범망경>에 맞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질문 2:청규가 ‘규범을 범하고 승당생활을 어기는 자에 대한 벌칙’을 율장보다 엄하게 다스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법혜 스님:제 대답이 완전한 정답은 아닙니다. 저도 공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장에는 범계조항과 처벌조항이 있습니다. 청규의 처벌법과는 달리 참 부드럽습니다. 율장은 ‘죄는 무겁지만 벌은 가볍다’라고 말합니다. 율장 처벌법에 비하면 청규는 사회법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청규 제정당시 교단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법보다 엄한 규칙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법난을 겪으면서도 선종은 강력한 청규 속에 생활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영향 받은 한국불교는 통불교이며 호국불교입니다.
숭유억불정책을 썼던 조선조 500년, 일제 36년 등은 계율의 암흑시기였습니다. 이 시기가 한국불교를 망쳤습니다. 비구 대처를 나누고 그 후유증이 불교정화로 이어졌습니다.
율장을 변조하고 청규를 무시하면서 만든 것이 사찰령이고 말사사찰법입니다.
율사들은 목숨 걸고 율맥을 전수하고 청규를 만들어 전수해 왔습니다. 선종은 법칙을 세워 잘못을 미리 방지해왔습니다. 대중을 가벼이 보고 법칙을 파괴하면 그 손상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아 율장보다 강한 벌칙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3: 율장에서 하면 안 되는 조항을 청규에서는 허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율장과 청규가 대치되는 경우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법혜 스님:백장 선사가 살았던 당시 중국 선종에서 율장대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계율에 대한 것을 박약절충해 불교사상 유래 없는 청규를 만들었습니다. 종교개혁이라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정법’을 쓰지 않고 청규를 만든 것은 청규 자체가 정법이라고 봤던 백장 스님의 견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율장과 청규가 배치되는 경우에 우리는 청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율장은 근본대죄로 받아들이고 참회 받을 수 있는 죄는 청규에 의해서 따라야 처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청규가 아니고 율장에 따르면 저만 해도 동화사에 오는 것을 포기했을 겁니다. 차도 금전도 지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제한적으로 허락된 청규 속에서 살기 때문에 제가 동화사에 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청규에 따라서 살고 있다고 하여 근본사상을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질문 4:조계종 종헌종법이 율장에 위배된다고 보시는지, 미래의 한국불교를 이끌기 위해 새로운 청규가 필요한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법혜 스님:현 조계종의 종헌종법은 국가법에 따라 청규를 참조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구계 보살계의 전통, 청정 승가교단을 유지하기 위해 방대한 법령은 조계종을 최대 불교교단으로 만들어왔습니다.
현 종헌종법이 율장에 위배됐다는 것이 아니라 사분율장의 근본사상을 흐리게 했을 경우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상위법이라 해도 묵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현재 승가는 율장이 아니라 청규에 의존하고, 거기에 국가의 법률이 상위에 있습니다. 청규에 이렇게 살았으면 해도 종헌종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종헌종법보다 상위법이 국가의 법률이지요. 스님도 군에 가야하고 예비군 훈련 민방위 훈련 나가야 합니다.
종헌종법은 부처님의 근본사상, 사분율장의 정신, 보조적인 범망경의 정신을 살려 독신출가 교단을 만들어 나가도록, 스님들이 수행하는데 여법 원만하게 수행하는데 좋은 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종도들은 종단과 힘을 합쳐 총림 등 전반에 대한 것을 수렴해야 합니다. 율장에는 중앙기구가 없습니다.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지방분권체제였습니다. 출가 시에 학력 구분, 연령 제한 등도 율장 정신에서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선교육 후득도제는 율장을 더 참조해야 합니다. 율장은 20살이 되면 비구계를 주고, 은사스님 밑에서 3-7년 계율을 배운 후에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배되니까 당장 고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 교단은 이판사판을 겸해서 수행해야 하는데 너무 사판화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권력에 끄달리는 종단이 되지 않도록 계율을 더 알아야 하고 계율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