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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고 대화하며 가족 사랑 확인해요"
마곡사-본사 공동주최, 제8차 마곡사 자비명상 템플스테이

눈감고 시냇물 건너기.
가족이란 무엇일까. 개념만으로 보자면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접하는 집단이다. 핏줄로 얽혀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기에 분명 ‘타인’보다 친숙하고 편한 존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가족에게 삭막한 언어로 상처를 주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이게 아닌데, 생각하지만 이미 말은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 뿐이다.

8월 12일 제8차 마곡사 템플스테이는 이렇게 사랑 표현에 서툰 10팀의 가족들이 모였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에서부터 초등학생 자녀가 끼어 있는 식구, 중ㆍ고생이 함께 한 식구 등 구성원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가슴 속에서만 ‘요동치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함께 고민했다. 가족, 또 타인과의 ‘신나는 놀이,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 가족사랑 준비운동-가족의 대화도 훈련이 필요해요


아직 ‘마곡사’라는 절 공간에 적응되지 않은 때, 가족들은 엉성한 품새로 법당에 앉아있다. 이 때 마가 스님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여성학자로 유명한 오숙희씨가 등장한다. 두 딸을 키우며 왕성한 집필ㆍ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오숙희씨는 “요즘 가족들이 ‘정서적 이산가족’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로 얼기설기 앉아 있는 가족들을 향해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설문 조사를 했어요. 상당수의 아이들이 아버지와 1주일에 10분도 대화하지 않는다고 답하더군요. 놀랍지요? 이유가 뭘까요?”

오숙희씨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화의 훈련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 보니 ‘일상의 공유’는 물론 대화의 소재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오숙희씨는 ‘눈을 보면서 대화하라’는 해법을 내놓는다. 이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서로의 감성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화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방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가족관계도 인간관계의 일종인 만큼 서로 차이를 인식하고, 생각의 ‘틈’을 인정하면서 꾸준히 대화하는 훈련이 뒷받침 돼야 한다.

오숙희씨의 강연을 들으며 딸 소현이(16)를 데려온 이정봉(47)씨는 특히 느낀 게 많다.

“딸과 저 사이에 대화가 없어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가했지요. 지금까지는 딸이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한테 문제가 있어 아이가 입을 다문 건 아닐까요?”



* 만약 내가 눈이 먼다면, 내 가족이 그렇다면?


저녁 공양을 마친 시간, 마가 스님은 갑자기 가족들을 마곡사 ‘징검다리’로 데려간다. 여기서 주문은 시작된다.

“이제부터 각 가정의 아버지는 눈이 안 보입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눈이 되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각 가정의 아버지들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지만 이내 스님의 말대로 눈을 감는다. 식구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참이다.

반면 가족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프로그램 표에는 없었던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눈을 꼭 감고 있는 아버지를 부축해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물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징검다리, 아버지들은 자꾸만 헛발이다. 그런 사이 어느 식구는 보폭을 조절하면서 말로 차근차근 징검다리의 위치를 설명한다. 또 어느 가족은 아버지의 다리를 붙잡고 징검다리에다 직접 올려놓는다. 아예 아버지를 번쩍 들어 옮기는 가족도 눈에 띈다.

이런저런 방법이 동원돼 가족들은 눈이 안 보이는 식구를 온전히 책임지고 강 건너편에 데려다 놓는다. 서로에 대한 절대적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없이 참여한 노호상(52)ㆍ노정숙(52)씨 부부도 서로를 믿으며 무사히 징검다리를 건넜다. 평소 남편을 한없이 의지하며 살았다는 노정숙씨는 “처음으로 완전히 나에게 의존한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 이들 부부는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같이 바라보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 엄마가 미안했어, 여보 내가 미안해


미안해요 프로그램.
저녁 법회를 마친 시간, 가족들이 차분하게 수련관 법당으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또 어떤 프로그램일까, 궁금하다. 마가 스님은 이미 마이크를 잡았다.

“자, 이번에는 ‘나’로 인해 식구들을 아프게 했을 때를 생각해봅니다. 어떤 변명도 꾸짖음도 없이 그저 ‘미안함’ 그 자체만 6하 원칙에 의거해 이야기하세요.”

참가 가족들은 이미 마가 스님의 프로그램에 흠뻑 빠져 들었다.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본 적이 없는 가족이지만 마가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무엇을 잘못 했더라’ 생각에 잠긴다.

백현희(38)씨는 큰 아들 자원이(10)에게 먼저 용서를 빈다. 둘째 자성이(8)가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탓에 생긴 스트레스를 큰 아이에게 짜증으로 돌려준 것이 생각나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백현희씨는 눈물이 핑 돈다.

그러자 아이가 오히려 “자성이가 아파도 많이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백씨는 그런 아이를 꼭 껴안는다.

백씨의 남편 구주회(43)씨는 무뚝뚝한 자신의 성격이 아내에게 상처가 됐을까 걱정이다. 그 동안 아내가 이것저것 챙겨준 것을 ‘간섭’이라 생각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한 마디.

“당신의 그 세심한 마음을 미처 못 읽어서 너무 미안해.”

오숙희 씨 강연.


가족은 서로에게 변명을 뺀 미안함만 전하자 그 마음이 오히려 절절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리고 서운했던 감정들이 어느새 녹아 없어졌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마곡사의 하룻밤은 끝이 나고 가족들은 가슴 뭉클한 기분을 간직한 채 잠자리에 든다. 마곡사를 떠나는 순간까지 가족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하는 가족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나’와 ‘가족’의 원초적 유대감을 다시 찾겠다는 각오로.
공주 마곡사=김강진 기자 |
2005-08-13 오전 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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