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자들이 '개차법'악용해 변명삼아선 안돼…지현 스님(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 : 오늘 법주인 종진 스님은 제가 출가하면서부터 늘 존경하던 스승으로 저를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새롭게 하면서 유지시켜준 힘은 삼보님의 힘과 청정계율의 힘이었습니다. 계율의 힘은 욕심 많고 어리적은 제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는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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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인도에서 맨 처음 5비구를 제도한 것을 시작으로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이후 부처님 열반 500년이 지나 용수보살 등이 주창한 대승불교운동이 번성합니다. 그러나 불법이 가장 활발하게 꽃필 무렵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집니다. 제 개인적으로, 대승불교운동이 승가와 재가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인도에서 불교를 사라지게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승보살운동의 핵심은 출ㆍ재가자를 가리지 않고 보리심의 발하는 정도에 따라 누구나 비구 비구니 보다 높은 지위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단에서 승속의 구분이 약해지고, 계율조차 흐려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출가자은 재가자에게 법을 보시하고, 재가자는 승가에 물질을 공양하는 본질적 역할을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의 삶에 너무 깊이 간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령 참여불교재가연대 같은 경우 절의 수입이 늘면서 생기는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재가자들이 종단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스님의 부정적인 면을 언론이나 인터넷 등으로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불성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차별이 없습니다. 하지만 업성(業性), 수행력, 신분은 조금씩 다르고 그에 따라 역할도 다릅니다. 출가와 재가가 서로를 도우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계율대법회가 출·재가자가 공감할 수 있는 계율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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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진 스님 : 지(持)는 계율을 지킨다는 뜻이고, 범(犯)은 못 지킨다는 것인데, 반드시 지킬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이를 허용하는 것을 개(開)라 합니다. 그러다 상황이 개선되면 그것을 다시 막는 것을 차(遮)라 합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 걸식하라는 계율이 있었지만 어느 해 극심한 기근이 들어 도저히 걸식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풍년이 들어 형편이 나아지자 다시 제자들에게 걸식을 하도록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계율을 지킬수 있도록 유연성을 인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계를 지키지 못한 이들이 이 개차법을 악용해 변명의 구실로 삼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제자라면 계와 율의 근본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율은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不可”…이자랑(동국대 강사·인도철학)
이자랑 : 계와 율은 방비지악(防非止惡), 즉 잘못된 것을 막고 악을 멈춤으로써 올바른 행을 몸에 익히고 이를 기반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계율이란 자기 자신을 얽매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심신이 더 이상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잘 지켜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두려움 없는 평온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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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 평소 율사스님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것이 어떤 점이 좋은 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율을 지키는 것이 어떤 공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종진 스님 : 저는 출가한 뒤로 잠잘 때를 빼곤 거의 행건(行巾ㆍ무릎아래 단을 쳐서 묶는 천)을 차고 있습니다.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살지만 다른 이들은 불편한 모양입니다. 일찍 배워 익히면 나이 들어도 불편함을 못 느낍니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한다면 차차 익혀나감으로써 계와 율이 몸에 배여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질문2 : 부처님은 잘못이 발생할 때 마다 그것을 규제하는 수범수제(隨犯隨制)를 원칙으로 율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반직전에 소소계(小小戒ㆍ중요하지 않는 작은 계율)는 버려도 좋다고 하신데서 보아도 율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요.
종진 스님 : 원칙적으로 수결(隨結ㆍ계율을 제정해 죄를 막는 것)과 수개(隨開ㆍ계율에 예외를 두어 완화하는 것)는 모두 부처님만 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여기저기서 율을 고치자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經)에 대해서는 고치자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부처님 친설(親說)이 아닌 경들이 많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율에 대해서만 유독 시대가 바뀌었으니 고치자 하는데 저는 절대 동의하지 못합니다.
계율 때문에 수행에 방해가 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리 저리 고쳐서 근본 가르침을 훼손하다보면 원형은 사라지고 원칙도 없이 혼란만 가중될 수 있어요. 계율을 만들고 없애는 것은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우리주변에 걸식하는 이가 있습니까? 부처님은 걸식하라 했지만 한국에서 걸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걸식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만 다 형편에 따라 맞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계율 때문에 수행에 지장을 받는다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야지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탓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질문3 : 부처님은 재가불자들의 의견은 물론이고 때로는 외도들의 비판까지 감안해 계율을 제정했습니다. 이는 승단이 교단 내부는 물론 다른 종교와 일반사회로부터도 존경받는 공동체이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겁니다. 화합을 위해 승단이 재가신자들의 제언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종진 스님 : 부처님 당시에 비구 비구니에 대해 재가자가 여러 가지 충고를 하거나 조언, 때로는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 외부 사회의 건의에 따라 정해진 계율도 많아요. 그러나 그 당시 재가의 요구는 승단을 보호하고 불교를 지키려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재가신도가 요즘처럼 종단의 이러저런 사안에까지 간섭을 하겠다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스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교도 없습니다. 재가신도들은 스님의 신분의 무엇이고 재가신도의 신분은 무엇인지 공부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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