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 신행 > 수행
계율은 부처님 삶으로의 생활 길잡이
동화사 계율수행대법회 해인총림 율주 종진 스님
계를 지녀 신구의(身口意)를 깨끗이 하고 / 섭심하여 생각을 바로잡으며/ 다문하여 진실지를 나타내나니/ 계율은 이들의 바탕이 되네.
계율은 미묘법을 간직하는 곳/ 그대로가 출세간의 재보(財寶)가 되고/ 계율은 큰배를 타고 감과 같은 것/ 생사의 저 고해를 건네어 주네.
계율은 청량한 연못이 되어/ 모든중생 열뇌(熱惱)를 모두 식혀주고/ 계율은 두려움없는 이슬이되어/ 중생의 사독해(邪毒害)를 제거해 주네.
(범망경 보살계 ‘계율찬’ 中에서)

계율수행법회의 첫번째 법주 종진스님
사회에서 법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몇몇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불교 계율에도 역시 그런 식의 사고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계율은 그것을 지키고 공부하는 율사스님들만의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오늘 법회의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부처님의 삶을 배우는 법회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계율은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가장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스님들이 지키는 소승계와 재가자들이 지키는 대승보살계가 그것입니다. 스님은 비구·비구니·식차마나니·사미·사미니계가 있습니다. 또 남자신도는 거사라 하고 여자신도는 보살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이 지켜야하는 것은 재가율장입니다.

오늘 출가 5부중(비구 비구니 식차마나니 사미 사미니)과 재가대중들을 모여 법회를 열고 있는데 법문 중에 혹시 뜻하지 않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계율을 설명할 때는 스님과 신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구분되어 있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계(戒)는, 중국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 때 두 손으로 무기를 들고 경계를 선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입니다. 그 뜻을 빌리자면 계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선한 행동, 좋은 습관, 좋은 성격, 도덕적 행위 등을 잘 익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출ㆍ재가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적 지침을 계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율(律)은 우리 세속의 법률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가령 교통법규를 어기면 그에 대한 벌을 받습니다. 출가자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줄때도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제재를 가합니다. 곧 잘못이 있을 때 벌을 받고 그 벌을 받은 다음, 다시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내용이 율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늘 하는 삼귀의(三歸依)도 역시 계율에 관한 겁니다. 흔히 깨달은 분을 ‘부처님’이라 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을 ‘가르침’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아직 승단이 이루지 않았을 때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라 해서 이귀의(二歸依)를 따랐습니다.

종진스님은 계울을 깨달음으로 가는 길잡이로 정의했다
그러나 승가가 이뤄지면서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라는 삼귀의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삼귀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계율이라고 봐야 합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5계를 받습니다. 우리는 주로 5계를 ‘~하지 마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마라, 주지 않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말라, 행실을 바로 하라, 술을 먹지 말라’고 해석하는 데 사실은 ‘제거하라’ ‘떠나라’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도둑질 않고, 거짓말 않고, 헛생각 않고, 죽이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인간의 윤리입니다.

그리고 ‘팔관재계(八關齋戒)’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만 하루 동안 8가지 계(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음행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음주하지 말라, 여섯째 몸에 패물을 달거나 화장하지 말며 노래하고 춤추지 말라, 일곱째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라, 여덟째 제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를 받고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겁니다. 요즘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출가라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거라 보시면 됩니다.

일반 신도가 이러한 계를 어긴다고 무슨 벌칙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부처님은 지계가 청정한 삶을 마음 깊이 새기도록 인과의 법칙을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악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 설명하십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5계를 지킬 것을 약속한 경우에는 반드시 지키는 것이 바른 도리입니다. 수계식 때 받은 5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됩니다. 재가불자는 이것만 지켜도 어김없이 열반이라는 행복의 자리로 갈 수 있어요.

오늘 제가 꼭 당부 드리고 싶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좋은 말만 하라. 둘째, 이치에 맞는 말을 하라. 셋째, 남을 상하게 하는 말 하지마라. 넷째, 늘 진실만을 말하라는 겁니다.

동화사와 현대불교신문이 공동주최한 계율수행대법회의 첫번째 법주로 나선 종진 스님은 8월 6일 동화사 통일대불전에서 "계와 율이 생긴 까닭"을 주제로 법문했다.
제가 1985년부터 율장을 공부했지만 어디서도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모진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을 해치고 가족과 주위를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을 지계(持戒)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계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내 것’이라는 표현 참 좋아하지요. 아무리 계를 잘 알고, 설명을 잘해도 오래 익혀 몸에 배지 않으면 절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속담에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죠? 계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율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저는 늘 재가불자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불자의 기본은 합장입니다. 합장을 단정하게 하고, 신을 반듯하게 바로 벗어놓으세요. 이 두 가지만 바로 해도 나머지 것은 차차로 갖춰집니다. 겉모습을 부처님 같이 하다보면 속도 나중에 부처님처럼 자비심으로 넘쳐날 거예요. 계율이라는 것은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길잡이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스님들에게 계율은 목숨처럼 중요합니다. 이생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돼,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된 스님들은 매우 행복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재가자와는 달리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은 가지수도 많고 상당히 복잡합니다.

처음에 부처님이 승단을 이끌어 나가실 때는 무엇이든 좋은 일만 하라, 그리고 나쁜 일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로만 승단의 문제가 해결되질 않았습니다. 율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 한 지 12년이 지나 어떤 제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계기로 처음 제정됐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승단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4가지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기록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 무렵 부처님은 인도의 빔비사라 왕에게 나라의 중죄인을 다스리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평생 부처님을 떠받들었던 빔비사라 왕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할 때, 남의 부인을 넘볼 때, 대중이나 국왕을 일부러 망령되게 속이고 거짓말을 할 때 사형을 시킨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도 승단이 지켜야 할 4가지 계를 제정하십니다. 그 뒤로 승단의 질서와 스님의 위의에 관련된 수많은 계율이 생겨납니다. <사분율>에는 비구 250, 비구니 348가지의 계율이 나옵니다.

계율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다보니 이렇게 많아진 겁니다. 그런데 계율을 제정하다보면 어떤 계율은 특수한 상황에서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생겨납니다.

오늘도 날씨가 몹시 덥지요. 원래 부처님은 한달에 목욕을 2번만 하라고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 이렇게 땀이 나는데 그 원칙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나 바람을 맞고, 땀을 많이 흘린 환자들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계율은 전혀 융통성이 없이 제정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구 250, 비구니 348가지 계율은 비구와 비구니가 부처님 삶을 배워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스님들에게 계율은 의무이지 자율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족계를 받는 순간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이 세상을 다할 때 까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라고 합니다. 계정혜(戒定慧)는 부처님의 세계, 열반으로 가는 방법입니다. 방법을 배우고 그대로만 하면 틀림없이 부처의 세계, 열반의 세계로 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목마른 이는 물을 마셔야 갈증을 이길 수 있고, 무더움을 느끼는 이는 부채질을 해야 시원합니다. 결론은 실천이 따라야만 한다는 겁니다. 열반이 어떻다 뭐다 백날 떠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계와 율을 배워서 실천할 때라야만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아주 쉽게 정리하면 ‘집을 지을 때 터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터를 잘 놓지 못하면 집은 오래 갈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과 동국대 이자랑 강사의 논찬 기사 보러가기

동화사 계율대법회 일정보러 가기ㆍ부다피아 동화사 홈페이지 가기
조용수 기자 | pressphoto1@hanmail.net
2005-08-13 오전 9:32: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