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염불선 수행법이 뜨고 있다. 기존 선수행을 해온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그 이유와 배경을 놓고 불교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본지가 단독 보도한 ‘염불선 소의경전 <염불선경> 발굴(536호 18면)’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큰 호응에서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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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은 △왜 염불선 수행에 관심이 뜨겁나 △염불선 수행의 장점과 매력 △기존 간화선 묵조선과 무엇이 다른가 △염불선, 과연 선인가 염불인가 등의 소주제로 나눠 진행됐다.
紙上 좌담참석자
●덕산 스님(청원 혜은사 주지)
●일우 스님(경주 다담선원 회주)
●정목 스님(양산 정토선원장)
●배광식 교수(서울대 치대 교수ㆍ청화 스님 유발 상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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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 불교인들의 수준이 높아져 기복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적으로 수행가능한 수행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또 출가 수행자들이 염불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았다는 점도 한 이유다.
일우 스님 : 바로 ‘소리’ 때문이다. 불교가 크게 융성하고 널리 퍼져나간 것은 오직 염송가(念誦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염불선은 염송에 따라 번뇌망상을 녹아내리게 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고 본다.
덕산 스님 : 수행에 대한 재가불자들의 높아진 관심에도, 선을 직접 체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처음 선택한 길이 염불선 수행법이라 본다. 염불은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이미 익숙해져 있는 수행법이기에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염불선에 관심을 갖지 않나 생각한다.
배광식 교수 : 정보화 사회를 맞이해 기존의 다양한 불교수행법이 다시 소개되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드러나지 않았던 염불선 수행자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전해지고 있고, 복잡다단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병행 수행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염불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본다.
기복 탈피 등 불교수준 향상…생활 수행 가능
자ㆍ타력 겸비, 어려운 간화선 기피도 원인
'본래 부처’ 확인한다는 점에서 선과 동일
▶일반적으로 염불선 수행을 선택하는 불자들은 “‘간화선은 수승한 수행법이고, 염불은 차원이 낮은 수행법’이라는 수행법상의 우열을 따지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이러한 견해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이유로 불자들은 염불선을 선택하는지 궁금하다. 또 염불선 수행법만이 갖고 있는 매력과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배광식 교수 : 천 사람이 모이면 천 개의 개성이 있다. 의심하기 좋아하고 참구적인 사람은 간화선이 좋은 수행법이 될 수 있고, 의지적인 사람은 묵조선이 좋은 수행법일 수 있으며, 지정의(知情意)를 고루 갖춘 사람은 염불선이 좋은 수행법일 수 있다. 염불선 수행은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을 겸비하는 것이고, 건조하고 마른 이치로만 추구하지 않고 생명으로 추구하는 점이다.
덕산 스님 : 화두, 염불 모두 생각이전의 자리인 진여당체에 마음을 두고 정진한다면 조금도 차이가 없다. 특히 온갖 능력이 다 갖추어진 이 자리에 마음을 두고 염불을 하면 맑은 에너지가 발생돼 탁한 기운을 정화해준다. 그러므로 일반 재가자들이 가정에서 이런 방법으로 정진하게 되면 스스로의 업이 맑아짐은 물론 세상도 맑히고 우주도 맑혀지게 된다. 염불선 수행법이야말로 재가수행자들에겐 가장 이상적인 수행법이다.
일우 스님 : 수행법의 우열을 가리는 것, 수행법의 매력과 장점을 따지는 것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어떤 수행이든지 수행은 쉬운 것이 없다. 선종사에 나와 있는 조사 스님들께서도 깨닫기 위해 생사를 초월한 수행을 했다. 수행에는 묵조든 간화든 염불이든 목적은 같다. 다만 수행하는데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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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 선수행은 일정한 장소와 한가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염불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실천할 수 있다. 자력이라고 말하는 선수행은 반드시 깨달아야 생사해탈 한다고 말하지만,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힘입는 염불은 진실한 믿음으로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수행의 난이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일우 스님 : 수행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이지 수행의 법도는 같다.
덕산 스님 : 간화선과 묵조선 염불선의 수행방법은 화두를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의 차이, 염불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본래성품자리에 마음을 두고 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배광식 교수 : 본래면목을 드러내 견성성불하는 것을 궁극목표로 하는 것은 간화선, 묵조선, 염불선 모두가 최상승선으로서 같다. 그러나 염불선은 본래면목 곧 실상을 생명으로 추구하며, 수행자의 지정의(知情意)를 고루 조화적으로 충족시킨다는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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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식 교수 :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며 부처를 깨달아가는 공부가 바로 염불선이다. 구체적인 수행법으로 아미타불 염불로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에 들어, 실상삼매(實相三昧)와 보현삼매(普賢三昧)를 실증하도록 하면 된다. 깨닫기 전까지는 실상(實相)을 모르기에 아미타불 염불을 한다.
덕산 스님 : 현생과 극락의 수행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바르게 알고 수행을 해야 한다. 내가 본래 부처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해오던 정토염불이 아닌 내 안의 부처님을 마음에 두고 염불을 해야 한다. 아미타불 또는 지장, 관음을 입을 움직이지 않고 아주 빠른 속도로 염불하되 우주의 주인인 ‘염불하는 그 놈’에 마음을 두고 정진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염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잠자리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빠른 속도로 속으로 정진하면 스스로 삼매 체험을 하실 수 있다.
일우 스님 : 어떠한 수행법을 따르던지 번뇌망상을 여의고 삼매에 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염불선도 또한 쉽지는 않다. 염불선 수행의 핵심요체는 당연히 ‘소리’다. 천차만별의 소리가 천태만상의 조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멸하기도 한다.
정목 스님 : 명호를 부르는 공덕으로 본원력에 힘입어 정토에 왕생함으로써 윤회를 벗어난다는 진실한 믿음으로 안심(安心)을 얻는다. 칭명염불로 믿음을 성취하면 관상염불(觀相念佛)을 행하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관상염불은 <정토삼부경>에서 드러내 보인 정토의 경계를 관찰하는 지관(止觀)의 수행이다.
▶질문이 직접적일 수 있겠지만, 염불선은 선인가 염불인가?
정목 스님 : 관상염불에 들어가면 자력수행이라 말하는 선수행과 다를 것이 없지만 아미타불의 광명으로 이미 보여주는 경계를 관찰한다는 의미에서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힘입는 타력이라고 말한다.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은 관점을 달리한 해석일 뿐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연기법을 믿는 것, 부처님 혹은 조사의 지혜에 의지하는 것 등 깨달음 이전의 수행이란 모두가 타력에 의지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우 스님 : 선이다.
덕산 스님 :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선이 될 것이오, 극락세계에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염불일 것이다.
배광식 교수 : 염불선은 염불과 선을 겸한 것으로, 염불이면서 선이다.
▶정토관에 따라 염불과 염불선 관련 단체들이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정토를 보는 입장을 ‘서방정토’와 ‘유심정토’로 나뉘면서 파생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들 염불과 염불선 관련 단체들이 조화할 수는 없는지 등 그 해결법에 대해 견해는?
배광식 교수 : 칭명염불, 관상(觀像)염불, 관상(觀想)염불도 지성으로 수행하면, 염불삼매에 들 수 있고, 곧 견성성불할 수 있으니, 우리가 본래 불성을 지니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의 면에서는 서방정토와 유심정토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덕산 스님 : 서방정토 극락세계 또한 실존하는 세계다. 극락세계는 수행근기에 따라 수행처가 다르다. 극락세계 또한 성불을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는 곳이지 특별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부처이며 이 우주가 본래 부처다. 그러므로 유심정토와 서방정토의 근본은 다르지 않다. 우주는 생명이다. 즉 마음이다. 둘이 아닌 하나의 도리에서 그대로 부처 세계다.
일우 스님 : ‘서방정토’와 ‘유심정토’를 달리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토염불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기 때문에 달리 나눌 수가 없다.
정목 스님 : 경론과 뛰어난 조사의 어록에 의지하면 다툼을 화해할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하나의 명호 아래 판이하게 다를 것이 없다. 처음의 범부는 서방정토요, 깨달으면 유심정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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