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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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참사람)의 눈으로 세상으로 보라"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에게 듣는 <임제록> 선공부법
임제 스님의 '참사람' 되는 3단계

1. 無位(부처와 중생이 본래하나)
2. 無依(본래부처님에 기대지 않음)
3. 無衣(본래부처임도 벗어버림)



금강선원 홍천 선문장에서 행선 수행중인 재가불자들.
【전문】‘주인으로 살 것인가, 종으로 살 것인가?’
임제 선사가 이 세상에 던진 화두다. 스승 황벽 선사에게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세 번 찾아가 세 번 물었다가 30방만을 맞았던 임제. 이 같은 질문을 왜 했을까?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사진)은 임제 선사의 물음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우리들 모두는 부처와 다르지 않다. 부처도 볼 줄 알고 우리들도 볼 줄 안다. 부처도 들을 줄 알고 우리들도 들을 줄 안다. 이 사실을 알면, 달리 부처다 조사다 할 것 없다. 순식간에 부처와 같게 되는 이치가 바로 이것이다.”

대답은 명쾌했다. ‘내가 부처고 주인인데, 왜 종으로 살려고 하는가’다. 그럼, 어떻게 이 해답을 확인할 수 있을까? 혜거 스님은 “먼저 시비와 차별을 끊은 무위(無位)의 경지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부처와 조사 어느 누구에도 의지하지 않는 ‘무의(無依)’의 단계가 되어, 결국 부처와 조사란 옷도 입지 않는 ‘무의(無衣)’진인의 경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8월 9일, 불교계에서 드물게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임제록>을 강의하는 혜거 스님에게 들었다. (02)445-8484



#<임제록> 모르면, 아예 할과 방도 쓰지 말라


<임제록> 공부는 선풍(禪風)을 이해하는 데에 있습니다. ‘할’(喝:깨우쳐주기 위해 ‘억!’하고 큰 소리를 지름)과 ‘방’(棒:죽비나 손으로 일격을 가해 깨우침을 주는 행위)에 대한 연원을 임제록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사실 선방의 선풍은 할과 방에 있습니다. 만약 그 선풍의 연원을 알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몽둥이로 때린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임제록>을 통해서 그 까닭을 분명히 알고 할과 방을 해야 그것이 살아있는 할과 방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흉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임제록>을 소홀히 하려면, 아예 할과 방도 쓰지 말아야 해요. 할과 방은 쓰고 <임제록>은 등한시 한다면, 그야말로 본말이 바뀐 꼴이 됩니다.

특히 할과 방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중생은 자신의 육근(六根)에 변화가 오면, 몽둥이로 자책해야 합니다. 방의 상징적 의미가 여기에 있는 거지요. 상대방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행을 위한 자책이자 철저한 자기 몸부림이 바로 방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 뜻을 확실히 이해했을 때, ‘조사들의 공부법이 이랬구나’를 배울 수 있는 거지요. 몽둥이는 폼 잡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채찍이자 방편인 거죠. 그런 면을 <임제록>은 구체적으로 선수행을 하는 데 길잡이가 됩니다.

그럼, 가혹한 매질(棒)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임제 스님이 황벽 선사에게 30방을 맞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임제록>은 수행자가 공부할 수 있는 자세, 즉 대기(大機)를 갖출 수 있게 해요. 몽둥이로써 수행자 스스로 ‘내가 있느냐(有我) 없느냐(無我)?’를 관찰한 것입니다. 임제 스님은 황벽 선사에 30방을 맞고서도 “굵기가 얇은 가지로 살짝 스치는 느낌만 있었지, 아픈 것은 못 느꼈다”고 회고했지요. 그 말에서는 무아의 경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와 조사의 옷을 벗어 던져라


임제 스님이 강조한 선수행 공부법은 무엇일까요? 불교와 중국 전통사상인 ‘무위진인(無爲眞人)’ 사상과 접목한 ‘무위진인(無位眞人)’에 있어요. 그럼 무위(無爲)와 무위(無位)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임제 스님은 무위의 ‘위(爲)’를 ‘위(位)’로 바꿨습니다. 여기서 ‘자리’ 위자는 임금과 백성, 너와 나, 피차가 없는 자리를 의미해요. 자리 즉 분별이 없는 그 경지에 가야 진인이 된다는 거지요. ‘할 일없는’ 진인은 분별에 얽매일 수 있는 진인이란 거죠. 정말로 시비와 분별이 끊어진 참사람이 무위(無位)진인이라고 임제 스님은 강조했지요.

때문에 <임제록>의 핵심 키워드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의도인(無依道人)’이란 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임제 스님은 순차적으로 ‘자리 없는’ 진인, 즉 무위진인을 ‘의지할 곳 없는’ 무의(無依)도인으로 바꿨습니다. 한 단계 의미가 더 깊어진 거죠. 무의는 부처와 조사 어느 누구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처음에는 차별과 분별을 끊고, 무의에서는 기대려는 마음을 거둬내라는 거지요. 그 다음에는 ‘의지할’ 의(依)자가 ‘옷’ 의(衣)자로 바꿔집니다. 여기서 무의(無衣)는 부처와 조사의 옷을 입지 않고, 부처와 조사의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경지가 최고의 진인이라는 거지요. 임제 스님의 핵심 사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대로 ‘주인노릇’을 하려면


내가 부처이고 주인인데 왜 종으로 살려고 하는가 라고 강조하는 혜거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그럼, 현대를 사는 재가불자들은 ‘무위진인’ ‘무의도인’ 등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은 지성인의 시대입니다. 그럼 지성인은 어떠해야 할까요? 가식적인 지성인이 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지성인운동으로 이 말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임제 스님의 ‘무위진인’ ‘무의도인’ 등의 가르침은 지성인이 가식을 버리는 법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의지해 남의 것을 모방해내는 지식인, 시비와 분별을 조장하는 지식인의 병폐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겁니다. 가식의 옷을 벗고 자신을 반조하는 거울이 되는 거지요. 즉 임제 스님은 가식적인 지성인 모습(有爲), 차별하는 마음(有位), 차별성에서 절대성에 의지하려는 마음(有依), 그 절대성에 옷을 입으려는 가식(有衣)의 실체를 여실히 알면, 일상생활 속에서 참사람(진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임제록>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살불살조(殺佛殺祖)’이지요. 재가불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이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살불살조는 무의도인(無依道人)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모든 부처와 조사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수처작주입처개진은 ‘부처와 조사의 옷을 벗어버린다’는 무의진인(無衣眞人)의 경지에 이른 상태를 일컫는 말이지요. 임제 스님은 ‘주인노릇하라’고 강조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입니다. 주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안 보이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요. 때문에 주인의식이 바로 ‘한 생각’입니다. 정말 한 순간에 주인의식을 생기는 것입니다.



▤<임제록>은 어떤 선어록?


<임제록(臨濟錄)>은 당나라 선승 임제의현(臨濟義玄,?-867)의 법어집. 중국 선종사상 가장 독창적인 견처를 확립한 임제의현의 선의 안목을 간명직절하게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선어록이다.
흥화존장(興化存奬)이 비교ㆍ검토하고, 의현의 제자 혜연(慧然)이 편집했다. 책머리에는 북송 말기 진주장관(鎭州長官)이었던 마방(馬防)의 서문이 있고 상당(上堂:대중 공식법회 법문)·시중(示衆:문하의 선승이나 신도를 위한 긴 설법으로 선의 정수를 설함)·감변(勘辨:깨달은 견처를 헤아리거나 나타내보이는 구절)·행록(行錄:임제 스님의 대오수행과정과 입멸 등의 행장) 등 4부로 이루어져 있다. 행록 마지막에 전기(傳記)가 있다.

관련 링크 : 부다피아 수행법 메뉴 가기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5-08-11 오전 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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