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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일기는 어떨까요? 살뜰한 고백들이 넘쳐나겠지요. 8월 5일부터 3일간 공주 마곡사 연화당에서 열린 ‘부부’만을 위한 자비명상 템플스테이가 그랬답니다. 무뚝뚝한 남편들의 사랑 속삭임에 아내들은 보석 같은 눈물을 연신 흘렸습니다.
흔히들 마음이 열려야 사랑이 보인다지요.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 말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그동안 바빴다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일기는 훔쳐보는 맛에 엿본다지요. 황금 같은 여름휴가를 이번 템플스테이에 맞췄다는 김용기(52ㆍ서울 도봉구 창5동)-김계희(49) 부부와 정도영(42ㆍ서울 양천구 신월7동)-서미영(42) 부부, 임신 중인 아내와 참가한 요가강사 이강언(38ㆍ서울 마포구 서교동)-송현정(26) 부부 등의 자비명상 체험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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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불법을 담은 그릇입니다’
남편과 아내들은 첫날 서로에게 108배를 올렸습니다. 다들 머쓱해하더군요. 어떤 아내는 “40년 결혼생활에 남편에게 처음 절을 받아본다”고 했고, 어떤 남편은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하더군요. 그 중, 동갑내기 정도영-서미영 부부의 일기를 들여다봤습니다.
“나의 눈이 맑지 못해 당신이 불법을 담은 그릇이고 부처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불상에만 절을 했었죠. 매일 일과 스트레스을 달고 살던 당신에게 ‘더 사랑해달라. 더 아껴 달라’며 당신에게 부담만 주었죠. 그런 제가 부끄럽습니다. 앞으론 당신이 부처님입니다.”(서미영씨)
물론 남편의 일기도 보았지요. ‘사랑하는 서미영!’이란 말부터 글머리에 쓰여 있더군요.
“항상 고맙고 든든하고 미더운 사람. 당신을 힘들게 해도 별 말없이 내게 힘이 됐습니다. 우리 아들 용석에게는 친구였고, 내게는 늘 연인입니다. 여보! 이렇게 살아갑시다.”(정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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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확인하고 싶습니까? 그럼 서로에게 말하세요.’
결혼 22년차 부부 김용기(52ㆍ서울 도봉구 창5동) 김계희(49)씨. TV에서 마곡사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를 본 아내 김계희씨가 먼저 남편 김용기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108배가 끝나고, 곧장 ‘자기 장점 50가지 쓰기’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펜들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왜 내 장점을 찾지 못할까?’ 다들 한동안 상념에 젖은 채 펜만 들고 있습니다. 김계희씨의 일기는 이랬습니다.
“전쟁 치르듯 살았죠. 바쁜 나날은 정작 나를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어요. 시부모와 친정부모,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이 전부였으니까요. 지난 해 가을, 당신이 교통사고 났을 때 이런 상상을 했었죠. ‘당신이 내 곁을 떠났으면’ 하고 말이죠. 그런데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두려움이 거침없이 다가왔어요. 순간 당신을 봤어요. 자고 있는 당신에게서 안심을 얻게 됐죠. 지금도 그 상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눈이 뜨인답니다. 여보! 건강하게 삽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살아요.”
남편 김용기씨의 일기에서도 사랑은 물씬 묻어나 있었습니다. “고맙다고 표현하지 못한 경상도 사나이를 이해해줘요. 그간 섭섭했던 점이야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강물처럼 그냥 흘러 보냅시다. 앞으로는 당신과 나를 위한 삶도 삽시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됐듯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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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상’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맨발 산행으로 진행됐습니다. 신발에 익숙했기에 무척이나 낯선 경험이었지요. 결혼한 지 6개월 된 이강언(38ㆍ서울 마포구 서교동) 송선정(26)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우로 아침공양을 마치고, 15쌍의 부부는 맨발로 마곡사를 나섰습니다.
임신 중인 아내 걱정으로 남편 이씨는 잰걸음으로 첫 걸음을 뗐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아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둘 만의 맨발 데이트에 불청객이 돼버렸지요.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다른 커플처럼 ‘퇴근 후 짧은 연애’ 과정 없이 늘 붙어서 지냈으니, 조금은 심심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우린 부부 같은 연인, 연인 같은 부부로 큰 다툼 없이 사랑의 나무를 가꿔왔잖아. 행복하기 그지없다. 당신의 마음을 다 헤아려주진 못했지만,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감정을 막연하게 다 알아주기를 바랐었지. 그런데 이렇게 함께 걸으며 말을 나누니 당신의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아.”(이강언)
“이번 부부명상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익숙함에서 낯설음을 발견한 거예요. 정작 함께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알거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을지도 몰라요. 이제는 눈으로 말하고, 입으로 서로를 듣기로 해요.”(송현정)
이틀 밤과 사흘 낮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108배’, ‘새벽 숲길 걷기 명상’, ‘자기 장점 50가지 쓰기’, ‘서로에게 사랑을 보내는 편지 쓰기’ 등의 프로그램은 낯설게만 느껴졌던 ‘솔직함’을 익숙한 삶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마곡사 포교국장 마가 스님은 말했습니다. “말 안 해도 ‘알아 줄 거라’란 기대감, 그것에서 오는 섭섭함. 그 과정을 왜 겪으려 합니까? 미세한 간극은 부부간에 독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물으세요. 눈과 입으로 확인하세요. 그래야 서로의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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