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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후에 참여한 두 번째 아비라 기도는 첫 회를 아주 신나게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엔 두 번째 하는 아비라 기도라 역시 다르구나’ 라며 가볍게 했다, 하지만 그 후 내리 9회의 기도는 동안 몹시 지루해 견딜 수가 없었다. 별 고통도 없으면서 지루함을 견뎌야 하니 무의미하게 느껴져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새로 시작한 10명이 포기하지 않아 나도 포기 할 수가 없었다.
이후, 다음 회부터는 ‘진언의 소리를 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이 왔다. 함께 소리를 내며 그 소리의 리듬을 타게 되니 더 이상 지루하지 않고 신나기도 하고 다음 회의 기도가 기대되기도 했다. ‘아비라 지옥’이란 말을 많이 들어 마냥 지옥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도 극락이 있었다. 어떤 분은 진언을 타면서 합창을 하거나 합주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도 하고, 진언을 타며 몸이 가벼워져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다시 3개월 후의 세 번째 아비라 기도도 가볍게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집중이 잘 안 됐다. 온갖 잡념만 떠올랐다. 나중에는 화가 났다. 잡념이나 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기도를 하고 있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회는 또 다시 지옥이었다. 무릎도 너무 아프고,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손도 저려 와 들고 있기도 힘들고, 다시 머리가 상기돼 토할 것 같았다.
아비라 기도를 오래한 선배 보살들이 “아비라 기도는 할 때마다 다르고, 또 한 회 한 회마다 희비(喜悲)가 엇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비라 기도는 한 회씩 사는 기도’란 말에 수긍이 갔다. 어느 보살은 아비라 기도 때 아픔을 견디고 난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벼랑에서 낡은 새끼줄 하나를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치며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고.
그 후론 법신진언을 할 때 잡념이 들면 그 횟수를 세었다. 그랬더니 잡념 드는 횟수도 줄었고 특히 잡념이 들자마자 그걸 인식하게 돼 잡념에 든 시간이 아주 짧아 효과가 있었다. 그랬더니 처음 10분이내로만 잡념이 들다가 그 후로는 거의 잡념 없이 진언에 매달릴 수 있었다.
스님은 “아픈 것에 관심이라는 자양분을 주지 말고, 내가 집중하려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마음도 나고, 좋구나 하는 마음도 난데 둘 다 나를 속이고 있는 가짜 나이니, 그 좋고 힘든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 상황을 담담하게 별 굴곡 없이 받아들이고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비라 기도는 이렇듯 나를 단기간에 나의 집중력을 높여줬다. 어느 보살은 아비라 기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평상시의 기도가 조롱박으로 옹달샘에서 우리의 의식의 물을 뜨는 것이라면, 아비라 기도는 두레박으로 깊은 샘에서 우물물을 퍼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난 늘 절과 능엄주로 수행을 한다. 평소의 기도가 ‘매일 매일의 비질’이라면, 1년에 4번 하는 아비라 기도는 내 ‘마음의 대청소’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난 매번 성장해 있는 날 확인하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