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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이들이 낯선 공간에서 밤을 지새운 모양입니다. 3학년 성율이는 떠들고 얘기하는 형들 때문에 잠을 설쳤답니다. 여자아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 그러나 남자아이들은 고양이 세수로 뚝딱. 아직 잠에 취해 정신도 차리지 못한 아이들은 이불을 개고 큰법당으로 향합니다. 새벽 3시 기상은 아무래도 무리였나 봅니다. 어쨌든 3시 30분 사물(四物)이 울리고 문수반 아이들은 청정한 모습으로 천년고찰 마곡사 대광보전으로 모였습니다. 곧 기도스님의 목탁소리에 예불이 시작됩니다.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반배)~” 아이들은 서툴지만 곧잘 따라합니다.
예불이 끝나자 마가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108배를 시작할겁니다. 힘들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따라하세요, 힘들다고 느끼는 내 몸이 무슨 생각을 하고 말하는지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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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에 맞춰 무릎을 꿇고 ‘접족례(接足禮)’를 받듭니다. 내 주변에 가장 가까운데 있는 고마운 분들을 위해 절을 합니다. 첫 번째 절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어 “할머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며 5번씩을 정성을 다해 엎드리고 일어납니다. 큰소리로 “할머니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고두례(叩頭禮)를 올린 뒤 108번째 절을 올립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이겨냈습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마운 생각들을 고스란히 내의식속에 담아내려 눈을 감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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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따라 아직 새벽의 미명이 밝아 오기 전 마당을 가로질러 숲길걷기명상에 나섭니다. 숲길명상은 자연과 하나 되어 이런 저런 내안의 생각을 놓아 버리는 일입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떠들던 아이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한걸음씩 발길을 옮깁니다. 묘운 스님 뒤로 그렇게 아이들은 뒷짐을 진채 천천히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침이 밝아오자 아이들은 발우공양을 마치고 차도 마셨습니다. 다도체험 시간은 누구나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개구쟁이 2학년 홍규는 “맛은 몰라도 차 마시는 게 좋아서 6잔이나 마셨다”며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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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미술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저학년들은 부처님 그리기를 하러 야외로 나가고 고학년 형들과 누나는 연화당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점토를 준비해오셨습니다. 연주호 선생님(동국대 강사)은 점토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6명씩 조를 만들어 저마다 생각의 주머니를 풀어 점토에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떠드는 아이들의 입에 사탕을 물렸습니다. 안경잡이 동호는 초록색 안경을 만들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이미지가 완성되자 점토를 한데 모아 다시 조별 이미지를 만들어 봅니다. 떠들면서도 선생님의 지시에 맞춰 모두들 정성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이 흐뭇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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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선생님은 “점토놀이는 공격성이 있거나, 자기 고집만 앞세우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들이 집단에 섞이는 과정을 살펴보는 미술치료의 일종”이라며 “처음엔 남자아이들이 많아 과연 지도에 잘 따를지 걱정했는데, 의외로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고 아이들끼리 마음을 맞추고 잘 따라줬다”며 흐뭇해했습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아이들은 마곡사의 암자를 향했습니다. 짧은 거리지만 더운 여름날씨는 아이들을 금방 지치게 합니다. 목어반은 은적암으로, 연꽃반은 백련암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4학년 소현이는 막내 동생 효상이의 손을 꼭 잡고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오릅니다. 딸만 셋인 집안의 귀여운 막내 효상이는 응석 부리지 않고 말없이 잘도 걷습니다. 일현교(一玄橋)를 건너 개망초가 흐드러진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금세 백련암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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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하고 3년간 은신하면서 수행했다는 유서 깊은 도량입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마애불이 있어 유명하답니다. 마애불은 불룩한 눈에 투박한 생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가지고간 수박을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고, 귀가 따갑도록 매미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연의 친구가 되고 일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목 놓아 기다리던 물놀이 시간이 되었습니다. 박물관 건너 개울 징검다리를 100명이 되는 아이들이 진을 치고 물을 첨벙입니다. 개울을 하얗게 메운 아이들이 장관입니다. 아이들은 넉넉한 웃음의 묘운 스님을 타깃삼아 신나게 물장구를 칩니다. 묘운 스님은 적삼이 흠뻑 젖었지만 한여름 땡볕은 오히려 상쾌하기만 한 모양입니다. 6학년 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바가지를 가져와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지나가던 어른들도 걸음을 멈추고 부처님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쳐다봅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신나는 한여름 오후,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천진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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