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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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지상백고좌 - 가평 청오사 주지 무공 스님


30여년이 넘게 군 포교에 매진해 온 가평 청오사 주지 무공 스님. 사진=박재완 기자
올해도 역시 더위가 기승이다. 해마다 맞는 여름이고, 계절의 변화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더위에 지쳐 쉽게 짜증을 내며 산다. 더위를 잊기 위해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은, 막 길어 올린 차디찬 우물물 같은 감로법문을 듣고자 경기도 가평 청오사를 찾았다. 곧게 뻗은 경춘가도를 따라 달려간 청오사는 작은 법당 하나와 요사채 하나,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숙소 하나가 전부인 단촐한 암자였다.

청오사에는 올해 여든 한 살의 무공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30여년 넘게 군포교 활동에 매진해 온 스님은 지금도 매달 첫째ㆍ셋째 일요일에는 맹호부대를, 그 외에는 자매결연 맺은 부대와 초청법회를 여는 군 법당을 수시로 찾아가 군인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기자가 연신 땀방울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스님은 직접 부채를 손에 쥐어준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더운 것도 마음이 덥다 하면 덥고, 마음이 안 덥다 하면 안 더운 것 아닙니까? 자꾸 덥다, 덥다 하니까 더 더운게지. 다른 일에 빠져 있으면 더위 느낄 새가 있던가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스님은 최근 군 관련 사고와 관련해 군인들에게 인화단결을 강조한다. 사진=박재완 기자
“부처님은 <보왕삼매론>에서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어요. 병이 없으면 사람이 교만해지고 탐욕이 생기거든요. 병이 있으면 겸손해지고, 삶의 가치를 알게 되요. 그리고 설사 내 몸에 병이 없다고 해도 스님들은 유마 거사의 말씀처럼, 중생이 고통 받는 한 출가자도 늘 아픈 겁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병잡니다, 병자.”

오랜 세월 군인들과 만나온 스님이기에,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고에 대해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스님을 찾아 뵌 날은 총기 탈취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이라, 가평까지 이르는 길에도 수없이 검문을 당했던 터였다.

“최근 들어 군 관련 사고가 많이 일어나 군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그 어느 때 보다 큽니다. 군대란 곳이 정신적으로 힘든 곳이라 더욱 부처님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저는 군인들에게 늘 인화단결과 올바른 국가관 정립, 그리고 삼사일행(三思一行)을 강조합니다. 조직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인화단결이 잘 되어야 합니다. 서로 믿고 화합하고 단결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군인들에게 늘 불교에서 말하는 ‘육화경(六和敬)’의 가르침을 일러줍니다. 입으로는 다툼이 없이 화합하고, 같이 일하며 도와가며 뜻으로 화합하고, 바른 행실을 함께 닦으며 화합하고, 바른 견해를 함께 깨달으며 화합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며 화합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군인들이 국가관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인이라면 자신의 본부사인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전쟁에 임해서도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법입니다.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를 지치겠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싸운다면 생사를 초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삼사일행(三思一行), 즉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라고 이릅니다. 세 번 생각하면 세 번 참게 됩니다.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잖아요? 늘 무엇이 올바른지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오늘날 같은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수가 없죠.”

스님이 이렇게 군 포교에 애정을 보이는 것은 자신이 군인 출신이라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 스님은 1950년 부산 동아대 정치경제학부에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돼 62년 대위로 전역, 출가한 이력을 갖고 있다. 사실 출가자에게 출가의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스님의 출가 이력이 좀 남다르기에 넌지시 출가 당시의 이야기를 여쭈었다.

“제가 군에서 살생을 많이 했어요. 매일같이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봤지요. 그때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무모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제대 후 살생참회를 하고 전쟁 없는 불국정토(佛國淨土)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출가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살상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종교나 문화,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현대인들은 부처님의 비폭력정신과 생명존중사상을 깨우쳐야 합니다. 내편이냐 네편이냐, 이것이 옳으냐 혹은 저것이 옳으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나와 남을 나누고 적과 동지를 나누고 내 것이나 내 편이 아닌 것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게 만듭니다. 불교는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선업이 좋고 악업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선업도 내가 짓는 것이고 악업도 내가 짓는 것이라고 가르치죠. 선인도 한 순간 잘못하면 악업을 짓게 되고, 악인도 한 순간 마음을 바꾸면 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도 스승이고 악도 스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존중과 자비사상을 강조하는 스님은 군인들일수록 깊고 넓은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강한 군인은 자비심에 바탕 한 사람입니다.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깨침을 줘야 진정한 승자가 됩니다.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면 원한이 쌓이고, 그 원한은 다시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푼다면 원한을 살 일도 없고 복수를 부를 일도 없는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부처님은 ‘대영웅(大英雄)’이라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부처님은 상대방을 힘으로 무릎 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진리의 법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상대방을 감화시키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다스리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마음 다스리기가 참 어렵지요. 오죽하면 산 속의 적은 100만 명도 토벌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적은 토벌하기 어렵다고 할까요. 자기 마음에 있는 적, 곧 탐진치 삼독(三毒)을 토벌한 사람이 바로 대영웅,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계정혜 삼학(三學)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이르셨습니다. 견고한 신심과 원력 그리고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갖는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명에 싸인 중생은 그저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에 얽매여 스스로 고통을 받고 번뇌합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살이는 올 때도 빈손, 갈 때도 빈손입니다. 내 소유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죽을 때는 다만 자신이 지은 업만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것만 알면 마음의 적에 끄달려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스님은 이어 충청도의 어느 토굴에서 8년간 혼자서 수행할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겨울이면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숨조차 쉬기 힘든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스님은 한달 보름간 단식을 하며 정진하는 등 치열한 구도열을 내뿜었다.

“산 속에 혼자 있다보니 가끔 등산하러 온 사람들이 들르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엔 사람들을 무시하고 대답도 잘 안하니까 시비를 걸고 때리기도 했어요. 그러니 사람만 보면 피했지. 그런데 생각을 바꿔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나를 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누가 물어봐요 ‘예’, 뭘 하라고 해도 ‘예’라고 대답했더니 사람들이 먹을 것이나 입을 것도 내려놓고 가더라고요. ‘아! 자연이나 의지를 거스르지 말고 살아야 하는구나, 억지로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안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정말 먹을 것도 못 먹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고, 참고 견디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참고 견디는 것을 너무 못해요. 컴퓨터 자판기만 몇 번만 두드리면, 몸 안 움직이고 땀 안 흘려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보니 조금만 힘들어도 자살하려고 합니다. 사이버상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착각하고 있어요. 인터넷 중독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이자 번뇌 덩어리를 안고 있으니 생각이 깊지 못하고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이 번뇌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할 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즘 책이 얼마나 많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아요? 조금만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져도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벼랑의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매달려 있는 것처럼, 생사를 얻고 깨달음을 구해야 합니다.”

때문에 스님은 이 시대 불교는 무엇보다 포교에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만히 산사에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그동안 30여년 군인들하고 어울려 지냈는데, 요즘 되돌아보면 예전에 포교를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엔 법회 때 유식한 말, 경전에 있는 문자를 많이 썼어요. 그래야 유식해 보이는 줄 알고. 그런데 그게 덜 뚫려서 그랬던 거야. 이제는 최대한 쉬운 말로, 군인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이야기를 해요. 알아듣기 쉽게. 그러니 조는 사람도 줄더라고. 불교도 이제 좀 더 대중들의 근기에 맞게 포교해야 합니다. 쉬운 말로 불법을 전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깨달음과 실천은 결코 둘이 아닙니다.”

매사에 신중하고, 항상 옳은 법을 배우려고 애쓰라고 강조하는 무공 스님. 스님께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을 여쭈었다.

“여러 소리 할 것 없이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무명에 싸여 있으니까 생각이 전도되어 있는 겁니다. 항상 잘 먹고 잘 벌고 잘 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만이 가치 있는 줄 알고 있는 것이죠. 일체유심조라, 내 마음을 깨달으면 싸울 일이 없고 번뇌할 것도 없습니다. 좀 더 즐겁게 살고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지금의 굴레를 벗어나십시오.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십시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나고 스님의 안내로 절 곳곳을 둘러봤다. 청오사는 한국전쟁 때 폐사됐던 절을 1970년대 중건한 곳으로 곳곳이 손 볼 곳 투성이었지만, 스님은 사찰 불사대신 다른 원(願)을 세우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뜻 맞는 사람들과 군 법당을 지었는데, 최근엔 가평 66사단에 군 법당을 하나 지었으면 싶어요. 대지는 있는데 건물 지을 돈이 없어 창고를 개조해서 법당으로 쓰고 있거든요. 군 법당 하나만 있으면 장병들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정신수양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인연 있는 불자와 만나 군 법당을 하나 짓는 것이 내 생애 마지막 불사가 아닐까 싶어요.”


무공 스님은?
무공 스님은 1950년 부산 동아대 정치경제학부에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돼 62년 대위로 전역했다. 그해 범어사에서 前 조계종 종정 고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범어사와 송광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으며 충청도의 어느 산에서 8년간 토굴정진 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청오사를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 군불교진흥회 이사를 역임했고 세수 81세인 지금도 매주 군 법당을 찾는 등 30여 년간 쉼 없이 군 포교에 진력해 왔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7-29 오전 11:27:00
 
한마디
정말 위대한 공부를 실천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처럼 타 종교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때에 큰 스님 처럼 젊은 장병들에게 불법을 전하시는 거룩한 포교를 ,...,거룩하신 큰 스님께 귀의하나이다.
(2005-08-04 오전 12: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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