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러나 일터불자들은 종단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종단과 동떨어진 운영으로 제도권으로부터 소외 받아온 것이 사실. 게다가 포교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그들만의 신행’에 머무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직장·직능 단체 불자들이 자생적 신행의지를 포교원력으로 회향하기 위한 새로운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 450여단체…자발적 신행모임
1980년대 초반 직장·직능 신행단체가 하나둘 생겨나면서 직장·직능 불교의 태동을 알렸다. 그러나 직장·직능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 직장·직능 불교라는 단어도 이 때 비로소 등장했다.
직장·직능 단체는 전국에 450여곳이 분포해 있다. 이 가운데 400여 불자회가 공무원, 철도, 전력인, 의료인, 경찰, 금융단, 운전기사, 교정인, 산악인 등 분야별 연합단체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은 소속단체를 보유한 단체는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120여 경찰불교회와 중앙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150여 불자회가 연합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정인불자연합회와 대한불교전국산악인연합회, 전국병원불자연합회, 철도공사불교단체협의회, 전력인불자연합회, 금융단불자연합회, 전국교사불자연합회도 적게는 10개 단체에서 많게는 50여곳을 아우른 신행조직이다. 반면 일반기업체의 경우 대부분 상급단체 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방대한 조직의 이면에는 운영 자체도 버거워하는 개별 모임의 어려움이 그림자로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인재 양성, 회원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내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다. 직장·직능 분야의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포교는 없고 신행만 있다
직장·직능 신행단체의 가장 큰 특징은 자발적인 신행모임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찰이 아닌 일터에서도 도반을 만나는, 이른 바 개별적인 신행활동에서 공동체적 신행활동으로 변화하는 중대한 계기가 됐다. 또한 직장·직능 불교는 거사불교를 일으키는 진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성불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 ||||
또한 일터불교는 법회를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신행활동 외에 포교활동을 따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일터불교의 전반적인 수준이 기본적인 신행은 가능하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신심을 필요로 하는 포교는 불가능하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터불교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부 단체에서는 대부분이 초심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승기신론> <구사론>과 같은 어려운 논서를 공부하는 왜곡된 형태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불교와 모임을 ‘악세사리’로 여기는 잘못된 신행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일터포교 지원, 큰 틀이 필요하다
직장·직능 불교 태동 이후 ‘일터불교’라는 큰그림을 바탕으로 이에 맞는 교육·포교 시스템을 갖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스스로 생겨나 일정한 틀이 없이 유지되는 현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따라서 종단에서 개별 단체들의 창립에서부터 법회 운영, 회원 교육 등에 대한 매뉴얼을 갖추어 일터불자들의 활동을 장려하는 종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종단은 일터불자들을 관리하기보다는 지원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법사 없이 열리는 현 직장법회 풍토와 ‘우리 불자회’라는 영역에 갇혀 있는 일터불자들의 ‘그들만의 신행’도 개선돼야할 과제다. 김태영 문사수법회 상임법사는 “직장불자들은 자신의 신심과 신행을 점검할 수 있는 어떠한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그들만의 세계를 활짝 열어줄 수 있는 내적 구성원과 신행을 지도해줄 지도법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터불교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육성하는 종단 차원의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과 일터를 방문해 일터불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순환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올바른 교육과 인재 양성은 인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
불교대학과의 연계교육, 사찰과의 자매결연 등 지역불교와의 연계를 위한 다각도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안양시청 공무원불자회의 경우 인근 사찰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과의 연계로 회원들의 불교적 소양을 심어줌으로써 회원들이 포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효과를 톡톡히 얻고 있다. 윤정택 안양시청 불자회장은 “불교대학과의 연계교육 이후 회원들이 자신의 신행은 물론 포교활동에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 회원이 30% 가량 늘었다”고 소개한다.
◇ 포교시스템·인식전환 필요
일터에도 불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소양을 갖춘 불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조계종 포교사고시를 거쳐 포교사 자격을 품수 받은 이들도 100여명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그들이 포교활동에 나서지 않거나 활동이 미진한 이유는 동기 부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직장전문포교사제도는 좋은 대안이다.
중앙인사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곽임호 포교사는 “직장불자들을 대상으로 전문교육과 고시를 거쳐 직장전문포교사 자격을 부여한다면 지금보다 포교활동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직장전문포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직장·직능 분야의 신행·포교체계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터불자들의 신행마인드 변화는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핵심과제다. 일터불자들은 ‘일터 신행모임’이라는 인식이 강해 법회, 성지순례와 같은 신행 중심의 제한된 활동을 펼친다. 회원 외에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불자회가 없는 현 상황은 이를 반증한다.
최근 가족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 현상은 신행의 범위가 개인에서 가족으로 확대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산시켜 ‘나’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우리’로 신행의 범위를 확대하고 ‘나’를 위한 불교에서 ‘남’을 위한 불교로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은행 불자회 지도법사 법현 스님은 “조직적인 체계와 인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 한 일터불자들의 신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불교계는 일터불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체계를 세워나가고 일터불자들은 스스로 신앙심을 구체화하는 신행혁신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범사례】
▥‘사람’이 중심이다---한국은행 불이회
‘금융계 불자회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한국은행 불이회(회장 하용이). 지난 1985년 금융계에서 처음으로 창립된 불이회의 전통은 20년 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법회를 봉행해온 점이다.
이 같은 불이회의 저력은 단연 ‘사람’ 중심의 불자회 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잦은 인사이동에도 안정적인 불자회 운영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사 섭외, 법회 공지 및 집전, 경전강좌 기획, 참석 독려 등을 40여 회원들이 맡은 소임별로 ‘알아서’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불이회가 이처럼 구축한 인적 인프라는 동종 업계의 불자회 결성에 도화선이 됐다. ‘잘 나가는’ 불자회의 조직력이 포교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80년대 당시 직장불자회가 흔하지 않던 때에 ‘일터불심’을 일으켜, 국내 20여개 금융기관 불자회 결성의 모태가 됐다.
불이회 하용이 회장은 “회원들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먼저 찾아서 척척 해내기 때문에 모임이 잘 굴러갈 수밖에 없다”며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한 결속력이 불이회의 가장 큰 성장엔진”이라고 말했다.
▥‘할 일’을 만든다---서울 성북승무사무소 법우회
| ||||
철도공사 서울 성북승무사무소 법우회(회장 박우락)가 ‘하는 일’이다.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법우회의 조직특징이 드러남을 확인할 수 있다. ‘할 일’을 만들어 놓고, 단위 부서들을 조직한다는 점이다. 이는 ‘관심 폭’을 확대시켜 법우회원들의 활동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다.
이 같은 ‘할 일’ 중심의 인프라 구축은 법우회 활동을 지역 포교, 환경 운동 등으로 이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지역사회복지관 봉사활동을 비롯해 환경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환경법회 봉행, 북한 어린이 및 노숙인 돕기 성금 모금, 열차안전운행 캠페인 전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찬연 교화부장은 “법우회는 신행, 환경, 사회봉사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단위조직을 구성했다”며 “이 같은 구성은 회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