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곳 반월당, 하루 종일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이곳에서 수십년 세월과 세속의 번잡함을 뚫고 재가선객들을 깨어있게 하는 수행도량을 찾았다. 동화사 직할포교당 보현사(주지 원일)가 운영하는 시민선방 보현선원이다.
탁! 탁! 탁!
무더위가 시작된 7월 18일 오전 9시, 보현선원에는 입승보살의 죽비 소리에 이십여 명의 재가선객이 일제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온 속에 들어갔다. 푹푹 찌는 더위도 세상의 시끄러움도 이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 50여년 역사와 전통 속에 다져진 곳
보현선원은 한암, 만공선사와 더불어 당대 3대 선사였던 보문 선사(1906~1956)가 세운 재가선방으로 50여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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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선원의 최고령 수행자인 이진보행 보살은 92세의 세수에도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수행력을 보인다. 여기에 후배 보살들을 슬며시 이끄는 모습에서 오랜 삶의 여정 속에 벤 어머니의 넉넉함과 지혜가 엿보인다. 다음 고령자는 91세 박무생월 보살. 자그마한 체구에 비록 허리가 굽어 활동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진리를 구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박 보살은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수행정진에 한시도 흐트러짐이 없다.
25년 전 입승을 맡아 보현선원을 이끌고 있는 문선덕화 보살(86)은 “30년 전 보현선원에 처음 방부를 들일 때도 선배 수행자들이 지금처럼 수행정진을 하고 있었다”며 “선이란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승가와 똑같이 동안거 하안거를 철저히 지킨다
보현선원은 재가불자들의 선방이지만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의 동안거와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하안거를 철저히 지키고, 산철에도 2월 초하루부터 3월 보름까지 8월 초하루부터 9월 보름까지 수행정진기간을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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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하안거 결제와 해제 때는 동화사에서 조실 진제 스님의 결제 및 해제 법문을 듣고, 안거기간이 끝나면 동화사로부터 안거증을 받는다. 연초에는 진제 스님을 찾아가 점검의 기회를 갖고, 산철에는 사찰 순례나 선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하루하루 수행정진이 너무나 즐겁다는 보현선원의 재가 선객들에게서는 세월을 뛰어넘은 듯 젊고 환한 미소가 그득하다.
#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엄한 수행체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보현선원은 오랜 세월동안 정착된 엄격한 체계 속에 수행정진을 이어간다. 특히 보현선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몸가짐부터 정갈히 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보현선원에서는 누구나 정갈하게 법복(수행자의 의복)을 갖춰 입고, 한걸음 한걸음을 수행의 연속으로 생각한다. 묵언은 흐트러진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챙기는 수행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 웬만한 일에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웃는 법이 없다.
시간도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다. 정진시간, 공양시간에는 그 어느 누구도 선방에 들어 올 수 없다. 이렇게 보현선원에서 지켜지고 있는 엄한 규칙들은 일일이 설명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다. 새로 방부를 들인 선객들이 선배 수행자들의 여법한 몸가짐을 본받아 자연히 따르게 돼 있다. 즉 보현선원의 하루일과는 엄한 전통 속에서 자율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보현선원의 수행정진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고, 한 시간마다 포행을 한다. 오전 11시에 사시 예불을 봉행한 뒤 발우공양을 한다.
# 사과 맛은 먹어봐야 안다
보현선원에서 수행정진을 하면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포행 시간 공부과정에서 느낀 변화들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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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보살의 단호한 한마디에 선공부에서 자주 닥치는 경계에 대한 주의도 곁들였다.
“그래도 실생활 속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다시 방향을 바꿔 물었다.
“선 공부의 으뜸이 하심(下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수행에 몰두하다보면 어느 샌가 매사에 부드러워진 자신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는 힘도 얻게 됩니다.”
이보현심(67)보살이 말을 이었다. “공부를 하다보면 모든 것이 다 나의 스승이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습니다.” 손대선행(77)보살도 거들었다.
이어 전기석(57) 거사는 “퇴직을 하고 마음이 복잡해 3주전 보현선원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한보산(65) 거사도 “선방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행복은 사회생활을 통해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그런 것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 재가선객들의 결론은 ‘사과 맛은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이었다.
# 선배는 이끌고, 후배는 따라 배우고
그렇다면 누구든지 보현선원에 방부를 들일 수 있는 것일까? 오랫동안 수행정진을 이어온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초심자가 함께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입승보살은 “누구든지 큰스님께 화두만 타 오면 방부를 들이고 함께 수행 정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초심자라도 먼저 수행을 시작한 선배불자들을 따라하다 보면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방부를 들인 젊은 보살들이나 거사들을 보면 반갑고 감사하다”는 문선덕화보살은 이제 40대인 무념해 보살의 정진하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다. 또 얼마 전에 방부를 들이고 참여한 거사들의 수행정진도 눈여겨보고 있다.
보현사 주지 원일 스님은 “보현선원 운영에 있어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재가불자들이 수행정진을 잘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잘 알려진 선승을 초빙해 소참(小參)법문을 듣고 점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053)254-5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