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타이(東台) 오르다 삼보일배하는 구도자와 인사
쫑타이(中台)서 내려본 우타이샨 감동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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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라정에서 내려다본 우타이샨 사원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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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땅이었다. 반야의 자궁이었다. 다섯 봉우리는 부처의 스승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500여리에 걸친 산 능선은 보살의 어미처럼 부드러웠다. 그래서 일까? 7월의 민둥산은 두 가지 선물을 내어 보였다. 이름 모를 야생화로 수놓은 대지를 밟게 했고, 짙푸른 하늘은 순례자의 낯빛을 물들였다.
우타이샨(五台山)! 문수신앙의 고향이다. 관음성지 저지앙(浙江)성 보타산, 미타성지 쓰촨(四川)성 아미산, 지장성지 안후이(安徽)성 구화산 등과 함께 중국불교 4대 명산 중 하나다.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우타이샨을 예로부터 ‘금오대(金五臺)’라 부르면서 나머지 산들을 ‘은보타(銀普陀), 동아미(銅峨眉), 철구화(鐵九華)’라 일컬으며 우타이샨을 첫손에 꼽았다.
한국불교와의 인연도 지중한 곳이다. 평창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 율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의 혜초 스님은 여기서 마지막 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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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장율사가 삼칠일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자오위치((澡浴池)사. 흔히 태화지라고 일컫는 이곳은 쫑타이(中台)와 뻬이타이(北台)사이에 위치해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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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거산의 면모는 남달랐다. 샨시(山西)성 성도(省都) 타이위안(太原)시 북쪽 약 200km지점 중심에 위치한 우타이샨은 평균 해발 2,400m를 훌쩍 넘는 다섯 봉우리가 꼿꼿이 서 있었다. 엽두봉의 뻬이타이(北台)가 해발 3056m로 가장 으뜸이 되고, 금수봉의 쫑타이(中台)가 2936m, 망해봉 똥타이(東台) 2880m, 게월봉 시타이(西台) 2860m, 취암봉의 난타이(南臺)가 2757m로 가장 낮다. 한국의 백두산보다 높은 봉우리들은 높다고 해서 거만하지 않았다. 평원 같이 완만한 곡선을 그려 보이며 뭇 계곡과 생명들을 품고 있었다.
우타이샨에 불문(佛門)이 열린 지는 후한 명제 영평연간(58~75년). 한나라 명제가 사신을 천축에 파견해 불경을 구해오게 한 후부터 우타이샨에 사찰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당나라 때는 사원이 360여개에 달하며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후 문화혁명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현재는 108개의 절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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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보살의 발자국이 새겨졌다는 문수각인석각(文殊脚印石刻).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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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타이샨(五台山)에서 제일 큰 슈시앙(殊像)사의 문수보살상. 높이가 12m에 이른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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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쫑타이(中台)에 위치한 문수보살 사리탑.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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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이샨 순례 첫날은 사하촌 격인 타이후아이(臺懷鎭)에서 시작됐다. 이곳은 중국정부가 4년전부터 집단시설지구로 지정하면서, 수십 개 사찰이 마치 연립주택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우타이샨의 중심 사원인 시안통(懸通)사를 비롯해 타위안(塔院)사, 슈시앙(殊像)사 등이 밀집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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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순례객이 쫑타이 산기슭에서 우타이샨을 내라보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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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쫑타이에서 내려다 본 우타이샨. 수많은 돌탑이 쫑타이 능선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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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타이샨 쫑타이는 금련화 등의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사진은 야생화 사이로 보이는 문수사리탑.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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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라마교 색채가 짙은 타위안사의 따바이(大白)탑은 타이후아 순례의 백미였다. 원나라 대덕 5년(1301년)이 세운 이 탑은 높이만 56.3m나 돼 우타이샨의 중심이 됐다. 마침 회칠을 벗겨내고 금박을 입히는 보수공사로 그 당당한 위용은 파란 장막에 가려 보진 못했지만, 탑 아래 마니륜을 돌리며 수행 중인 스님들을 통해 따바이탑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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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쫑타이에서의 돌탑과 대웅전. 푸른 하늘이 순례객에 낯빛을 물들이고도 남을 정도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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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위안(塔院)사에서 어느 스님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생동하는 중국불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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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타이샨에서 제일 오래되고 큰 사찰 시안통(懸通)사. 동 10만냥으로 지은 문수보살전이 단번에 눈에 안긴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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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시안통사로 옮겼다. 우타이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동한 영평 10년(68)에 세운 시안통사는 4만 3,700㎡ 규모에 관음전, 문수전, 대웅보전, 나한당, 선방 등 전각이 400여 개가 들어서 있다. 이에 우타이샨에서 가장 큰 문수보살상이 모셔진 슈시앙사로 이동했다. 문수보살이 1만 명의 제자를 데리고 슈시앙사 뒷산 토굴에서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 이곳은 1500년 전에 창건됐다가 소실된 것을 600년 전에 복원한 사찰로, 대문수전에는 12m의 문수보살이 조성돼 있다.
순례 이틀 째, 타이후아이를 벗어나 쫑타이와 똥타이로 향했다. 10인승 승합차로 1시간 가량 산을 타고 올라갔다. 산능선은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까마득히 먼 계곡 곳곳에는 사원들이 줄지어 서있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초원에는 말과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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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타이(東台)에서 만난 순례자. 3일간 3보1배하면서 똥타이까지 오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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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타이에 위치한 왕하이(望海)사 벽. 짙푸른 하늘이 우타이샨을 감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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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라간 쫑타이. 자장율사가 삼칠일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그곳에 이르렀을 때,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에게 가사와 발우, 부처님 진신사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머리에 스쳤다. 쫑타이 오르자 순례객을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문수사리탑이었다. 순간, <화엄경> ‘보살주처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문수보살이 1만의 보살 대중을 거느리고 살면서 법을 설했다”는 말. 문수보살의 자취를 어렴풋이 문수사리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수보살의 체취 찾기는 자연스럽게 쫑타이와 뻬이타이 중간에 있는 자오위치사로 옮겨졌다. 흔히 문수보살이 목욕을 했다고 해 ‘태화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국불교와 인연이 깊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오위치사는 자장 율사가 기도 후, 문수보살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을 깨달아보니 / 자성이 있다는 것은 없다 / 이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성을 이해하면 곧 비로자나부처를 보리라”란 4구게를 받고 돌아온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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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타이 왕하이사에서 수행중인 중국 스님들. 사진=김철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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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자장율사도 자오위치사 대웅전에 있는 문수보살의 발자국이 새겨진 돌을 밟았을까? 자오위치사 주지 더시(德世) 스님의 설명은 흥미로웠다. “글쎄요. 이 돌이 발견된 지 11년 밖에 안 됐는데….”
자오위치사를 뒤로 하고, 똥타이에 올랐다. 꼬불꼬불 난 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왕하이(望海)사의 향로가 눈에 들어왔다. 연신 피워 오르는 향, 순례객들의 발이 끊이질 않았다. 경내는 공덕비 조각으로 분주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대만, 홍콩, 중국 29개 성시 등의 지명이 새겨진 비에는 수많은 시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출가한 지 4년이 된 챵쥬(昌住) 스님은 “왕하이사는 문화혁명 때 대부분 소실됐는데, 문수보살상 만큼은 당시 어느 노보살이 땅에 묻어놓는 바람에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며 “그 보살님이 문수보살이 아니겠느냐”고 웃음을 지었다.
1시간가량 똥타이를 참배하고 돌아 나오는 계단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우타이샨 초입에서 똥타이까지 꼬박 3일 걸려 3보1일하며 순례하는 재가자였다. 내리쬐는 햇빛, 뜨거운 복사열, 땅바닥에 얼굴을 대보았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숨이 꽉 막혔다.
그런데 왜? 그 같은 고행을 하는 걸까? 곧장 물었다. 잠시 후, 짧은 말 한마디가 돌아왔다. “즈시환(只希歡)!” “그냥 좋아서”였다. 사실 타위안사에서도 생동하는 중국불교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체투지하면서 지극히 진언을 외는 스님들의 구도열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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